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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로 읽는 삶] 외로움에 대한 횡설수설

조 성 자 / 시인

문득 아름다운 것과 마주쳤을 때/지금 곁에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하고/떠오르는 얼굴이 있다면 그대는/사랑하고 있는 것이다//그윽한 풍경이나/제대로 맛을 낸 음식 앞에서/아무도 생각나지 않는 사람/그 사람은 정말 강하거나/아니면 진짜 외로운 사람이다//종소리를 더 멀리 보내기 위하여/종은 더 아파야 한다

-이문재 시인의 '농담' 전문

뒷마당에 텃밭을 가꾸는 사람들이 부쩍 늘었다. 여름철이면 어지간한 푸성귀는 직접 길러 먹는다. 그래서 서로 가꾼 채소들을 나눠먹는 재미도 쏠쏠하다. 얼마 전 가깝게 사는 지인이 깻잎과 부추를 주었다. 꽤 많았다. 부추가 야들야들 연하고 좋았다. 살짝 절여 부추김치를 했다. 깻잎은 장아찌를 담갔다.

부추김치가 맛있게 익자 혼자 먹기가 아깝다는 생각이 들었다. 가깝게 있는 누군가라도 불러 맛을 공유하고 싶어졌다.

김치가 잘 익으면 혼자 먹기가 아깝다며 밥 먹으러 오라고 불러주던 옛 친구가 생각났다. 오이소박이 살짝 익으면 보리밥 해먹자고 부르기도 하고 매실 장아찌 맛 들었다고 전화를 하기도 하던 선배도 그리웠다. 예전에는 이런 일들이 귀한 줄 몰랐다. 오랜 타국생활로 외로움을 겪다보니 그런지 잔정을 나누는 삶의 소소함들이 귀하고 새삼스럽게 느껴진다.

문득 아름다운 것과 마주쳤을 때 함께 나누고 싶은 사람이 있다는 건 행복한 일이다. 그러나 누구나 그런 기쁨을 누리는 건 아닐 것이다. 기쁨을 혹은 행복을 공유하고 싶어도 상대가 거리상 너무 멀리 있어 그럴 수 없기도 하고 사는 일의 분주함으로 맘뿐일 경우도 있다.

어떤 풍경이나 맛 앞에서 아무도 생각나지 않는 사람은 진짜 강하거나 외로운 사람이라는 시인의 말은 외로움이 너무 가열되도록 내버려두지 말아야 한다는 말처럼 들린다. 진짜 외롭다는 건 위험한 일이니까.

사람들에게 가까이 가 보면 모두가 외로움을 토로한다. 우리들처럼 이민생활을 하는 사람들은 많은 사람들 속에서 잘 지내는 것 같으면서도 늘 어떤 고독감을 호소한다. 마음을 나눌 만한 사람이 없다고 한탄한다. 잘 지내는 것 같다가도 사소한 일로 갈라서고 이물 없이 던진 말 한마디가 화근이 되기도 한다. 서로의 성장배경을 잘 몰라서일까 괜한 오해가 잦다.

외로움이란 관계의 문제만은 아닐 것이다. 곁에 사람이 없어서 외로운 것이 아니라 함께 희로애락을 진정으로 나눌 누군가가 없다고 느낄 때 외롭다. 나이를 먹어가면서 나남 없이 사고의 폭은 좁아지고 감정의 편차가 점점 심해진다. 그러다보니 변죽이 심하다. 내 문제에만 집착하게 되고 상대에 대한 이해도가 점점 줄어든다.

한때 나는 외로움을 자처하고 싶었다. 외로움 속으로 들어가 한 철을 보내고 싶기도 했다. 외로움이 숙성되면 남다른 세계 하나를 얻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나를 극복하는 일, 혹은 나의 한계를 넘어서는 일은 외로움과의 피 터지는 격전이란 걸 믿고 싶었다.

물론 그런 몰입의 시간을 충분히 갖지도 못했고 외로움과의 정면대결은 하지 못했다. 애벌레가 날개를 달게 되는 우화의 과정은 외로움이 빚어내는 숭고함인데 이를 경험하지는 못했다.

누군가를 사랑하고 있다는 것은 그의 외로움을 수용하는 일이다. 기꺼이 외로움을 내 것인 양 받아들이는 일이기도 하다. 외로움이 상대의 외로움을 불러내 양지바른 곳에 앉히고 등을 토닥이는 일이 종메(종을 치는 나무)의 역할인지도 모른다. 종을 치는 일, 즉 타종을 고래(鯨)와 용(龍)의 한판승부라고 한다는데 몸을 부딪쳐 소리를 내는 일에는 아픔 그 이상의 어떤 것이 있다. 마지막 연의 '종소리를 더 멀리 보내기 위하여/종은 더 아파야 한다'라는 구절은 그래서 질문이다. 종메가 없으면 종은 소리를 내지 못한다. 나는 종메인가 소리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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