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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악마(?)의 바이올리니스트 파가니니

이영은/첼리스트

니콜로 파가니니(Niccolo Paganini, 1782~1840)는 뛰어난 재능과 테크닉으로 관객들을 사로잡았던 이탈리아의 바이올리니스트로서, 당대 유럽을 돌아다니며 가장 대우받고 활발히 활동했던 대 스타급 음악가였다.

꼬챙이처럼 마른 몸, 도드라진 광대와 매부리코, 치렁치렁한 긴 머리의 겉모습, 그리고 자유분방한 행동과 괴팍한 성격은 사람들에게 비호감으로 자리 잡았다. 그러나 그의 연주를 본 사람은 누구나 열렬한 팬이 되었다.

빈 공연 직후 한 평론가는 그의 ‘바이올린 협주곡 3번 E장조’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했다. “그의 연주를 들어보지 못한 이들에게 아무리 열심히 설명한들, 무감각한 철자와 죽은 단어의 나열, 그저 해독 불능의 상형문자에 불과할 것이다.” 그의 연주가 얼마나 현란하고 독보적이었는지 짐작해 볼 수 있게 하는 논평이다.

파가니니는 1782년 이탈리아의 수도 제노바에서 태어났다. 음악에 관심이 많았던 아버지의 영향으로 다섯 살 무렵 만돌린(mandolin, 류트족의 발현악기)과 바이올린을 배우기 시작했다.

그의 재능을 파악한 아버지는 아낌없는 후원으로 저명한 선생님들에게 지도받게 하였다. 14살의 나이에 처음으로 독주회를 열어 공식적인 데뷔를 하였으며, 그 후 이탈리아뿐 아니라 프랑스, 오스트리아, 독일, 영국 등 유럽의 여러 곳을 방문하여 연주자로서의 명성을 떨쳤다.

그는 천재 피아니스트이자 작곡가인 리스트와 함께 낭만주의 비르투오소(Vistuoso, 명인)의 시대를 여는 데 공헌하였다. 그가 작곡한 ‘24개의 카프리스’(24 Caprice for Solo Violin Op.1)는 파가니니 외에 당대 어느 다른 바이올리니스트도 소화할 수 없을 정도의 고난도 테크닉으로 유명했다.

지금도 그의 카프리스는 기술적으로 가장 어려운 곡 중 하나로 손꼽힌다. 파가니니는 바이올린 한 대로 오케스트라 전체의 소리를 흉내 내기도 했으며, 연주 중 현이 모두 끊어져 G선만 남았을 때도 남은 줄 한 개로 협주곡을 완주했다는 일화도 있다.

다양한 주법을 소화하는 파가니니의 현란한 재주는 그가 악마에 쓰였다는 루머를 만들어 내기도 하였다. 인간을 뛰어넘는 듯 한 그의 경이로운 실력은 악마에게 영혼을 판 대가로 얻는 것이라는 소문이 그를 평생 따라다녔다.
 
파가니니는 잦은 순회공연으로 건강이 악화하였고, 요양차 들른 니스에서 58세의 나이로 생을 마감한다. 평생 그를 따라다녔던 소문은 죽음 후에도 그를 괴롭혔다. 임종을 맞이하는 파가니니를 구제하려 했던 사제를 거부한 그의 행동 때문에 그가 악마였다는 루머는 더욱 확산되었다.

그가 죽은 후 가톨릭 교회의 반대로 파가니니의 시신은 무려 36년 동안 안치되지 못한 채 떠돌아다녔다고 한다. 2013년에 개봉했던 영화, ‘파가니니: 악마의 바이올리니스트’는 이러한 파가니니의 파란만장한 삶을 영화 내내 흘러나오는 그의 명곡들과 함께 감상할 수 있게 해준다.

파가니니 역으로 전 세계적으로 인정받은 마에스트로이자 천재 바이올리니스트인 데이비드 가렛이 열연한다. 말로만 듣던 현란하고 독보적인 그의 공연을 영화와 함께 직접 감상할 기회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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