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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칼럼] “첫 술에 배부르랴”

이기준/논설주간

“장르를 분명히 해서 쓰는 것이 중요합니다.
수필일지, 소설일지, 또 꽁트일지 말이죠. 쓰고 난 뒤 혹시 불필요한 용어를 쓴 것은 아닌지도 검토해야 하구요.”
“이 경우 ‘늙은 집’ 이라는 단어는 어감에 문제가 있을 성 싶네요. ‘고가(古家)’나 ‘고옥(古屋)’이 더 부드럽겠죠. 굳이 한글로 쓰자면 ‘낡은 집’ 정도가 바람직하지 않을까요.”
‘시카고 문인회’가 최근 가진 회원 작품 발표회에서 개개인이 준비해 온 글에 대한 명계웅 회장의 소감 중 일부다.

분망(奔忙)한 이민생활 속에서도 회원 모두 나름대로 이야깃거리를 쏘옥 담아낸 정성들이 무척이나 소담스럽기만 하다.

독일 간호원 시절 30대의 새파란 나이에 담낭이 망가져 목숨을 잃은 환자를 그리는 글 구절구절에 안타까운 애정이 듬뿍 배어나온다.
“내 이름은 ‘겨울’이야!” 하고 이름을 가르쳐주었던 환자는 수술 후에도 끝내 회복되지 못했다던가. 해마다 겨울마다, 그의 ‘하얗게 시린 겨울’은 영영 K회원의 곁을 떠나지 않을 것이다.
그녀 말마따나 그 일은 그녀에겐 내내 ‘인생의 겨울’로 남을 듯하다.

‘노란 봄빛/ 뜨락에 가득 채워져도/ 그가 없는 봄은 봄이 아니기에/ 가늘게 흐느낀다/…아직도 목 마르게/ …뒤돌아보는 나날/ 이 땅에 그는 없어도/ 그는 언제나 내 가슴에 살고 있다’
얼마 전 사랑하는 사람을 떠나보낸 J회원은 그에 대한 피끓는 애정을 이렇게도 아프게 토해내고 있었다.
만물의 소생에 환희해야 할 이 아름다운 봄날도 그녀에게는 ‘잔인한 4월’ 일 뿐일 것이다.
‘춘래불사춘(春來不似春)’이 어찌 무색하지 않으랴. ‘봄이 왔어도 봄은 아니다’ 라며 날씨만 탓한 옛 성현의 소견머리(?)가 원망스럽기까지 하다면 ‘주제넘을 소리’라는 핀잔을 들어도 조금도 억울하지 않을 성 싶다.
평생을 같이 해로(偕老)해야 할 ‘당신’을 먼저 보내고 난 후의 공허,그 아픔을 어디에 비교할 수 있으랴.
‘내 고향 시골 외갓집엔 지금쯤/ 파아란 보리가 무릎쯤 자랐을…/ 뒷동산 소쩍새/…그리운 마음 헐렁해온다/…친구야 보고싶다.

인간의 가장 순수한 세계라면 바로 두고 온 고향, 동심(童心)의 세계가 아닐까. 종달이 지저귀고 송아지 울음소리 아련한 시골 마을이 고향이라면 말이다.
H회원은 그 어릴 적 ‘고향의 봄’에 흠뻑 젖어 있었다.
일리노이의 봄이 지금 우리 곁에 진득하지만 두고 온 ‘고향의 봄’에 어찌 견주랴. 마음 구석구석마다에는 어느 새 고향의 파아란 들판으로 가득 채워진다.

‘두꺼운 이불 솜 같은 구름/…오늘도 바람과 함께 어디든 가겠지/…구름 위 또 푸른 하늘은/ 우리 삶을 먼지만 하다 할까/…우리는 무한한 꿈이 있기에’
60갑자 환갑이 따로 없다.
고희(古稀)를 훌쩍 넘겨 8순을 바라보는 C회원도 이 시간만큼은 어느 결에 꿈많은 17세 여고 문학소녀로 되돌아간다.
문학이란 이처럼 아무리 오랜 세월이라도 훌쩍 시공(時空)을 넘겨주니 얼마나 고마운 일인가.
회원의 시 가운데 “‘보리’는 이른 봄이고 ‘달빛의 호박꽃’은 초여름이라야 가능해 시제(時制)가 적당치 않다”고 지적한 모 회원의 눈초리도 예리하다.

시제는 정말 주의해야 할 요소다.
필자가 하나 더 제기한다면, 역시 시제는 맞지 않지만, 이 경우 ‘호박꽃’보다는 ‘박꽃’이 더 어울리지 않았을까. 호박꽃은 오렌지색이고 박꽃은 새하얀 색이다.
시골 초가지붕을 덮곤 했던 대표적인 박의 꽃은 달빛과 오묘한 조화가 가장 많이 두드러져 가끔 인용되는 꽃이기 때문이다.
밤에 활짝 펴 달빛에 파르라니 비치다가 동 트기 전 오무라드는 꽃이기도 하다.

‘첫 술에 배부르랴’ 는 말도 있다.
회원들 작품마다의 오류도 나날이 갈고 닦이는 인내의 시간 속에 어느 날 마침내 무성히도 성근 구슬로 꿰어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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