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스트푸드의 역사를 살펴본다
패스트푸드 시대의 산물, 햄버거
'통일성' '속도'를 강조하는 음식으로
돼지고기보다는 쇠고기 선택돼
이어 햄버거는 새로운 자동차 시대에 이상적 선택으로 저렴하며 준비가 간단하고 매우 손쉽게 다룰 수 있어서 인기가 치솟았다. 일정한 모양으로 만들어져 대량 생산이 가능하고 햄버거 패티는 다루기 쉬웠다. 햄버거는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눈부신 성장을 하였고 1950년대 중반에 이르러서는 미국 애플파이를 밀어내고 상징적 음식으로 자리잡았다.
당시 햄버거보다 우위에 있던 것은 수백만 교외 거주자가 뒷마당에서 선보이던 바비큐뿐이었다. 야외 바비큐 구이는 쇠고기를 말한다. 햄버거가 널리 퍼지면서 쇠고기가 전국적인 주목을 받기 시작한 것.
돼지고기는 야외 석쇠구이 요리용으로는 부적합했다. 왜냐하면 쉽게 부스러져 석판 위의 석쇠를 빠져 나와 여러 음식을 망치게 했기 때문이다. 인류학자 마빈 해리스(Marvin Harris)는 선모충병의 직접적인 위험 때문에 돼지고기는 쇠고기보다 훨씬 더 오랜 시간 요리 해야되므로 대중의 인기가 떨어진 이유라고 간파했다.
"돼지고기를 완벽한 회색이 될 때까지 , 바싹 말라 딱딱해질 때까지 익혀야 한다'는 경고가 나왔다. 결국 석쇠구이용으로 부적합하다는 판단이 대두됐다. 바비큐용 돼지 갈비가 대안으로 등장해 소스도 잘 흡수하고 육즙이 많이 포함되었다는 장점을 부각시켰으나 먹기 번거롭고 살코기도 별로여서 롤빵 사이에 집어넣어 먹기가 수월하지 않았다.
따라서 쇠고기가 돼지고기보다 훨씬 편리하다는 인식이 퍼져나갔다. 쇠고기 회사는 중앙 아메리카, 호주, 뉴질랜드에서 수입한 목초로 사육된 값싼 쇠고기와 더불어 미국 곡물로 사육된 쇠고기의 불필요한 지방을 섞어 햄버거를 만들었다. 실제 대부분의 '미국' 햄버거의 일정 비율은 수입 쇠고기였으며 이렇게 값싸고 편리한 햄버거는 새로운 식품 형태 시스템인 '패스트푸드'의 탄생을 예고했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미국 생활양식은 많은 여성들의 노동 참여, 새로운 화이트 칼라 산업, 서비스 산업의 다양한 직종이 늘어남에 따라 냉동 디너, 포테이토칩, 파이, 케이크가 인기였다.
1948년부터 1985년 사이 패스트푸드 산업은 외식 산업의 30% 이상을 차지하게 되었다. 햄버거와 패스트푸드 산업이 성공을 거두면서 맥도널드 레스토랑 체인 창업주 레이 크록은 "헨리 포드가 미국 여행 습관을 바꾸듯이 식사 습관을 바꾸어 보겠다"는 의지를 불태웠다. 고속도로 문화가 정착하면서 주간 고속도로 근처에 교외 주택단지, 쇼핑몰, 복합 상업지구가 생겨나고 이는 새로운 생활 방식으로 굳어져 갔다.
1960년대 초 레이 크록은 맥도널드 회사 비행기를 타고 전국을 샅샅이 다니며 쌍안경으로 교통 교차로, 교외 개발 지구, 쇼핑 센터 등을 확인하기 바빴다.
전략적 요충지에는 어김없이 맥도널드 레스토랑이 위치하기 시작했고 의도적으로 교회 근처에 들어섰다. 왜냐하면 주요 고객을 교회에 다니는 교외 가족들을 목표로 했기 때문이다. 맥도널드의 황금빛 아치는 바로 '천국의 문'을 상징하는 것으로 간주되었다. 이로써 새로운 유형의 '마음의 평화;를 제공한다는 마케팅 전략이었다.
결국 맥도널드의 경우, '통일성'과 '속도'가 성공 공식의 결정적 요인으로 드러났다. 맥도널드의 '사내 성경'이라고 불리우는 385쪽의 업무수행 안내서는 매장에서의 모든 과정을 빠짐없이 설명해 준다. 가령 맥도널드 석쇠 위에서 '깜빡이는 불빛'은 언제 햄버거를 뒤집어야 할 지 알려주는 신호이기도 하다. 이는 포드가 '모델 T'를 내세우면서 "그 차가 검정색인 한 사람들이 무슨 색을 원하건 나는 개의치 않는다"고 주장한 것과 너무나도 같은 맥락이란 결론에 다다른다.
이점봉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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