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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건강 에세이] 라스푸틴의 등장

러시아 제국의 ‘미친 수도승’으로 알려진 그리고리 라스푸틴(Grigori Rasputin)은 어려서부터 독심술이나 미래를 예측하는 능력을 보였다. 지독히도 추운 시베리아의 겨울, 한 짐마차 주인의 집 식탁에는 여섯 명의 동료들이 웅크리고 앉아 있었다. 그들 중 한명이 말은 잃어서 모두들 걱정이 태산 같았다. 짐 마차꾼이 말을 잃었으면 그것은 밥줄을 잃는 것과 다름없었기 때문이었다. 갑자기 화덕 뒤에서 잠을 자고 있던 이 집 아들 그리고리가 나타나 한 마차꾼을 가르치며 ‘표트르, 당신이 훔친 장본인이다.’라고 외쳤다. 사람들은 그 말을 믿지 않았다. 왜냐하면 표트르는 그들 중 가장 잘사는 부자였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범인을 잡자고 가장 큰 목소리로 주장한 장본인이었다. 아버지는 손님들에게 무례했던 아들의 행동을 변명했다. ‘이 아이는 자기 형이 죽은 후로부터 성격이 변했어요.“ 근자에 형이 얼음물에 빠졌을 때 12살이 된 그리고리는 형을 구하려고 물로 뛰어들었다. 지나가던 사람이 없었다면 형은 물론 그리고리도 물에 빠져 죽을 뻔 했다. 구출된 그리고리는 심하게 열을 내면서 혼수상태에 빠졌다. 그 후 몸이 약해지고 몇 번이나 정신을 잃었으며 성격도 변해 다른 아이같이 되었다. 원래 명랑하던 아이가 사고 후에는 음울하고 말이 없는 소년이 되었고 가끔씩 소리를 지르는 못된 성질까지 나타났다.

손님들은 뿔뿔이 흩어져 눈을 헤치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도 마음을 꿰뚫는 듯 한 소년의 눈길을 머리에서 지울 수 없었다. 그들은 하나씩 표트르 집 근처에 가서 몸을 숨겼다. 이윽고 오랜 시간이 지나자 표트르는 자기네 마구간에서 말 한필을 끌고 나왔다. 도둑맞은 말이었다. 동료들은 표트르를 거의 죽을 만큼 흠씬 두들겨 팼다. 나중에 아버지는 아들에게 무슨 들은 말이 있었냐고 물었지만 아니라고 했다. “나는 그냥 알았어요.”라는 대답이었다.

아들 그리고리는 아버지와 마찬가지로 짐 마차꾼이 되었다. 그는 짐과 승객을 한 마을에서 다른 마을로 옮기는 일에 종사했다. 천성이 쾌락만 추구하고 절제하지 않아서 사람들은 그를 ‘방탕아’란 뜻으로 “라스푸틴”이라고 불렀다. 낮에는 열심히 일을 했지만 밤만 되면 여자를 탐하고 정신을 잃을 때까지 술을 퍼 마셨다.

33세에 그는 한 신참 수도승을 한 수도원까지 모신 적이 있었다. 가는 도중 수도승은 라스푸틴의 종교적 지식이 엄청난 데 대해 감탄했다. 한편 라스푸틴은 수도원의 성격을 전해 듣고는 이 곳에 매력을 느꼈다. 그 곳은 일반 러시아 정교회에 속한 수도원이 아니고 한 극단적이 비주류 종파의 본산지였다. 이에 속한 수도승들은 겉으 로는 러시아 정교회에 속한 것 같았지만 그들이 믿는 것은 사뭇 달랐다. 그들은 죄인만이 예수를 맞이할 수 있다고 믿었다. 예수는 죄인들 안에서 성육신이 되며 그를 통해 새로 태어나기 때문에 죄인이 아니면 구원받을 수 없다. 죄를 지어야 구원을 받고 새로 태어나야 ‘하나님의 인간’이 된다고 주장했다. 라스푸틴인 이런 이론에 심취되었다.

라스푸틴은 이 종단에 가입하려 했고 결국 그 수도원에 4개 월 간 머물면서 수련을 했다. 그곳을 떠난 후 라스푸틴은 떠돌아다니면서 일반인들에게 전도를 했으며 병을 치료하는 수도승으로 알려졌다. 치유 능력에 대한 명성은 입을 통해 차차 러시아 전국으로 퍼져나갔다. 병자와 불구자들은 전국 각지에서 그를 보려고 몰려들었고 그의 명성은 일반인만이 아니라 귀족층에 까지 알려지게 되었다. 귀족들은 그를 초대해 집으로 모셨고 사교 모임에도 데리고 갔다. 여인들은 그에게 매혹되었다. 더럽고 추한 몰골, 조잡한 행동, 몸에서 뿜어 나오는 심한 악취에도 불구하고 이 신비한 사내에게 끌린 것이다.


정유석 (정신과 전문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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