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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덕경’ 번역책 펴낸 이명재씨

‘이 책을 읽고 도덕경을 논하라’ 출간
재미교포 1세대가 재해석한 도덕경
“젊은 세대에 고전 전하고 싶어”


애틀랜타 커밍에 사는 80대 한인이 노자의 ‘도덕경’ (道德經)을 번역한 책을 펴내 화제가 되고 있다. 15년 이상 노자사상에 대해 천착해 온 이명재(81)씨가 ‘이 책을 읽고 도덕경을 논하라’ (도서출판 자연과 사람들)를 발간하고 고전읽기를 주제로 한 강연에 나서기로 했다.

5일 중앙일보 사옥에서 만난 이씨는 도덕경과의 인연은 우연이라고 운을 뗐다. 1958년 서울대 상대를 졸업하고 테네시 주립대에서 공부하며 미국과 인연을 맺은 그로서는 대학 시절 한 번 정도 읽어봤던 고전에 지나지 않았다고 한다. “전공도 달랐고 특별한 관계가 있는 분야도 아니었어요.”

그런데 한국에 들른 2001년 도올 김용옥과 여류문인 이경숙의 해석 논쟁이 지식인들의 흥미로운 관심을 불러일으켰고 이씨의 지적 호기심도 자극했다. 그는 이 사건을 계기로 관련 서적을 모두 탐독하게 됐다. 그러곤 책들의 번역이 거기서 거기라는 느낌을 받았다고 했다. “동일한 번역이 계속 되풀이되는 것은 어떤 문제가 있는 것이 아닌가 생각하게 된 것이죠. 이길로 고전 해석, 특히 도덕경과의 씨름에 매진하게 됐습니다.”

이명재씨는 도덕경이 난해한 이유를 현재 보편적으로 사용되는 한자의 뜻과는 판이하게 다른 의미로 사용된 것이 많기 때문이라고 본다. 그는 2600여 년 동안 많은 학자들이 주석을 해왔고 그조차 이해하기 어려운 이유를 한자의 시대적 쓰임이 다르기 때문이라고 본 것이다.

따라서 접근법을 달리했다. 오늘날 통용되는 한자의 뜻을 해석에 사용하는 것을 구태의연한 방법이라고까지 지적했다. 본래 노자가 사용하려한 뜻을 찾아내 사용하는 새로운 어프로치를 활용함으로써, 분명하지 못하거나 터무니없는 번역들을 조목조목 잡아내는데 주력했다.

이씨는 노자가 사용한 한자의 뜻이 공자의 것과 다르다고 주장한다. 5000자에 불과한 ‘도덕경’의 주석을 장구한 시간이 흐른 지금까지도 확고하게 정립하지 못하게 막는 한 원인으로 꼽는다.

“숨어져 있는 뜻, 노자 선생의 숨은 의도에 집중하면서 옥편을 한자 한자 들여다봤어요. 노자 선생의 의도한 다른 의미가 (후대에 오면서) 잊혀졌거나 다른 번역가들이 놓치지 않았나 집중하다 보니 의미가 통하는 번역이 나온 것이죠.”

말그대로 한자와의 싸움이었다. 같은 한자라도 문맥에 따라 복수의 의미로 사용된 경우가 허다했다고 한다. 도덕경이 아름답고 간결하게 운이 잘 맞는 시형(詩形)을 갖춘 점도 번역의 고단함을 더했다.

이명재씨에 따르면 노자는 핵심 사상인 도(道) 자를 ‘도덕경’에서 76차례 사용했다. 이것만으로도 ‘도’자의 의미가 얼마나 폭넓게 사용된 글자인지 독자들도 짐작할 수 있다고 그는 강조했다.

도가 품고 있는 넓은 의미를 이해하지 못하고는 도덕경을 제대로 주석이나 번역한다는 것이 불가능하며, 그러기 위해선 적확한 한자 해석이 수반돼야 했다. 때로는 밤에 이불을 덮고 눈을 감은 뒤 한자 의미가 떠올라 번역의 실마리가 풀린 적도 있다고 했다.

“정확한 통계는 아니지만 중국에서 1500편 이상, 일본에서는 300편 이상이 저명한 학자들에 의해 번역됐다고 합니다. 한국도 150편 이상의 번역이 있는데 이율곡, 정약용 선생도 번역했다고 알고 있습니다.”

그의 책이 세상의 빛을 본 것은 2015년 11월이다. 2001년 한국에 다녀온 뒤 12월부터 번역과 집필에 몰두했으니 15년 안팎의 시간이 흘렀다. 풀리지 않는 난제와의 지난한 시간 싸움이었다.

이씨는 이처럼 각기 다른 번역이지만 모든 번역가들의 공통분모는 “누구라도 자신의 번역이 100%라고 할 수는 없다는 점”이라고 했다.

어떤 것이 집필 과정에 가장 힘든 점이었는지 묻는 질문에 이씨는 “난감하기 짝이 없는 일을 내가 하는구나, 어떤 결실을 얻을 수 있는 일을 내가 하는 것인가 의구심이 들 때였다”고 말했다.

그의 번역과 기존 번역은 어떤 차이가 있을까. 이명재씨는 도덕경 1장의 ‘고상무욕 이관기묘’ (故常無欲以觀其妙)를 예로 들었다. 사람이 욕심을 부리지 않으면 사물의 바탕을 제대로 보게되지만, 욕심을 부리면 그릇되게 사물의 바탕을 본다는 뜻풀이라고 이씨는 해석했다. 같은 것도 욕심을 품었을 때와 그렇지 않을 때에 보는 것이 달라진다는 설명이다. 그는 다른 번역들과 비교하며 읽을 것을 권했다.

이씨는 이 책에서 직역과 직역모듬, 의역으로 세 번 풀이했다. 저자의 의역으로 1장을 다시 보면, “인간은 처음 아무런 명성도 없이 태어나서 세상을 시작하는데 무슨 일을 하든 일을 하면서 그 일에서 명성을 얻기를 바란다. 그런데 명성을 얻고자 하는 욕심을 부리지 않으면 세상만사를 바르게 생각하게 되고, 욕심을 부리면 삼가야 할 잘못된 생각을 하게 된다”는 것이다.

과연 노자가 의미한 ‘도(道)’란 무엇인지에 대해 문의했다. 이씨는 “근본적으로 세상의 이치를 말하려 하는 것”이라고 했다. 이것이 노자사상의 핵심이라는 것이다. 이런 면에서 4장 마지막에 있는 ‘상제지선’ (象帝之先)은 이씨에겐 남다른 대목이다. 그는 뜻풀이를 전하면서 ‘사람의 마음은 하느님과 같다’고 했다. 저자에게 하느님은 ‘하늘’과 ‘님’을 합친 신의 영역과 동격이다. 뜻풀이에 따라서는 후왕들을 가리키기도 한다고 했다. 춘추시대에서 전국시대로 넘어가기 전 제왕의 권위가 시들고 후왕들이 세를 부풀리는 시기에 노자는 백성을 불쌍히 여겨 후왕들을 교화할 뜻에 도덕경을 집필했다고 그는 해석했다.

“국립도서관장 격인 노자는 자신의 힘으로 백성을 위해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일까 고민했을 것이고, 글을 써서 후왕들이 갖고 있는 머릿속의 생각을 교화시켜 백성을 착취, 수탈하는 행동을 조금이라도 막아보자는 생각에서 도덕경을 쓰지 않았을까 생각합니다.”


허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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