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 우리말] 바쁘다는 말
조 현 용 / 경희대학교 교수·한국어교육 전공
실제로 교외에 땅을 사기도 하고, 전원주택을 매입하기도 하고, 텃밭을 가꾸고 하며 미리 자신을 단련을 시키기도 한다. 그러나 바쁘게 사는 것은 인생을 길게 사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짧게 사는 것이다. 물론 게으르게 살아야 한다고 이 글을 쓰는 것은 아니다. 부처님께서도 유훈으로 게으르지 말고 정진하라고 하지 않았던가?
세네카 선생의 말처럼 은퇴 이후의 설계는 어쩌면 오지 않은 미래에 대한 확신일 수 있다. 그때까지 산다고 누가 보장을 하는가? 오래 사는 것은 단순히 생존하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바쁘다고 생각한다면 지금 당장 이 자리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찾아야 한다. 그래야 인생이 길어진다.
'바쁘다'는 우리말은 인생을 길게 살기 위한 방법을 역으로 보여준다. 바쁘다는 말은 밭다와 '브'가 합쳐진 말로 보인다. 밭다는 말은 잦다 혹은 짧다는 의미의 단어다. 기침을 밭게 한다고 하면 자주 한다는 의미다. 밭은 기침소리라는 표현도 한다. 어떤 일을 계속 자주 해야 한다면 바쁠 수밖에 없다. 잦은 업무, 잦은 만남, 잦은 회식, 잦은 외출, 잦은 술자리는 우리 모두를 바쁘게 한다.
'바투'라는 부사는 '밭다'와 관련이 있는데 짧다는 뜻이다. 줄을 바투 잡았다는 말을 줄을 짧게 잡았다는 뜻이다. 늘 시간을 짧게 만드는 것은 우리를 바쁘게 만든다. 바쁘면 많은 일을 할 것 같지만 실제로는 시간을 짧게 만드는 일이다. 시간이 짧게 느껴지니 바쁠 수밖에 없다. 짧은 휴식, 짧은 명상, 짧은 기도는 우리를 불행하게 한다.
우리는 시간이 참 빠르다는 말을 한다. '빠르다'는 말도 바쁘다와 관계가 있다. 고어에서는 빠르다는 말이 조급해 한다는 의미도 있었다. 시간이 빨리 가니 조급할 수도 있겠다. 빠듯하다는 말도 바쁘다와 관련이 있다. 된소리는 후대에 생긴 말이다. 원래 빠르다는 바르다, 빠듯하다는 '바듯하다'였다.
'바로'라는 말도 '바르다'에서 왔다. 바르다는 물론 빠르다와 관련이 된다. 기다리지 못하고 바로 일을 처리하려고 하는 답답함이 보인다. 흥미로운 점은 '바로'가 '곧'이라는 말과 바꿔 쓸 수 있다는 점이다. 바르다는 말과 곧다는 말이 유의어이기 때문이다. 바른 것이나 곧은 것이 왜 나쁘겠는가? 단지 참지 못하고 조급해 하는 마음이 답답할 따름이다.
'바싹'이나 '바짝'도 '바쁘다'와 관계가 있는 단어로 보인다. 바싹이나 바짝은 짧다는 의미와 관계가 있다. 짧게, 가깝게 만드는 것이 바싹이고, 바짝이다. 그러다 보면 남는 것이 없이 사라지기도 한다. 바짝 말라버린 논의 모습을 상상해 보라. 뭐든지 빠른 게 좋은 것처럼 이야기하지만 정작 빨리 지나가는 시간은 보지 못한다. 시간을, 인생을, 자신을 찬찬히 들여다보아야 한다.
인생은 짧다. 자신을 돌아볼 여유 없이 달리기만 하는 사람은 숨이 찰 수밖에 없다. 잠깐의 틈이라도 나면 책을 읽고, 명상을 하고, 기도를 해야 한다. 어떻게 살 것인가, 어떻게 죽을 것인가 늘 생각하며 살아야 한다. 그래야 인생이 길다. 미루지 않아야 인생이 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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