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넷 만화 '마린블루스' 정철연 작가 '성게군' 하루 1000만번 클릭
미대 그만두고 캐릭터 회사 취직···해산물 주인공 만화 대히트
소심한 성게군 제멋대로 성게양 카리스마 불가사리군 어리버리 쭈꾸미군…. 개성이 뚜렷한 해산물 주인공들의 평범한 일상을 담은 만화 '마린블루스'. DVD를 마구 사들였다 카드 비용에 고민하고 실연에 아파하는 소소한 이야기들이 폭발적인 인기를 모았다.
2002년 2월 홈페이지에서 연재를 시작해 하루 1000만 히트를 기록했고 팬클럽 회원이 6만3000명에 이른다. 독자 만화대상 대한민국 만화대상 대한민국 캐릭터대상 우수상 등 수상 경력도 화려하다. 봉제인형.다이어리 등 관련 캐릭터 상품만 1000여종이다. 연말쯤엔 과자 '고래밥'이 마린블루스에 나오는 해산물 캐릭터 모양으로 나온다. 게임.테마파크 작업도 진행 중이다. 일본.중국.대만에까지 진출했다.
"군대 가서야 e-메일 주소를 만들었을 정도로 컴맹이었는데…."
작가 정철연(28)씨가 인터넷 만화를 그리게 된 데는 사연이 있다. 포항에서 자란 그는 캐릭터 디자이너를 꿈꾸며 1998년 지방의 미대에 진학했다. 하지만 강의실에선 캐릭터 공부 대신 매일 선 긋기나 할 뿐이었다. 1학년을 마치고 군대에 갔다. 제대후 학교로 돌아갈 생각을 하니 막막하기만 했다. 무작정 상경했다. 캐릭터 회사에서 아르바이트라도 해야겠다 싶었다.
"회사에 낼 포트폴리오용으로 컴퓨터로 캐릭터를 만들고 그 성격을 표현하는 만화를 그려서 인터넷에 올렸죠. 포토샵도 홈페이지 제작도 전부 책만 보고 끙끙대며 독학했고요."
편의점 찐빵을 사먹을 150원이 아쉬웠던 그에겐 비싼 종이도 물감도 필요없는 '공짜' 인터넷이 유일한 희망이었다. 어둡고 우울한 바다 사나이인 자신의 모습을 검고 울퉁불퉁한 '성게군'에 담았다. 좁은 오피스텔에서 함께 부대끼며 꿈을 키우던 친구들은 불가사리.주꾸미 등 다른 해산물로 캐릭터화했다.
'정 작가'로 불리지만 그의 공식 직함은 캐릭터 회사 '킴스 라이센싱'의 디자이너다. 꿈을 이룬 셈이다.
"인터넷에 만화를 올린 지 사흘만에 캐릭터 회사에서 관심이 있다고 연락이 왔어요. 캐릭터 계약 같은 건 필요없으니까 취직만 시켜 달라고 사장님께 무작정 매달렸죠.하하…."
입사 소식도 만화로 그렸다면서 크게 웃는다. 그렇게 그림일기 삼아 계속 그렸는데 어느 날 갑자기 500명 2000명… 독자가 기하급수적으로 늘기 시작했다. 만화가 폭발적인 인기를 끌게 되면서 현재 회사 사업의 60% 정도가 마린블루스 관련 일이다. 보조사원으로 시작했던 그의 업무도 이젠 마린블루스 홈페이지 관리가 주다. 바이러스 백신 프로그램 패키지와 아이콘에 마린블루스 캐릭터를 이용하거나 싸이월드 미니홈피를 꾸미는 아이템을 개발하는 등 관련 일은 무궁무진하다. 지난 추석때 경주 엑스포에 부모님을 모시고 갔더니 아이들이 마린블루스 색칠공부를 하고 있었다고 한다.
"마린블루스 일만 5년이 넘도록 하고 있네요. 처음에 시작할땐 이렇게까지 될 줄은 정말 몰랐어요."
일에 파묻혀 살다보니 대학은 자연스럽게 그만두게 되었다. "아마 제적됐을 것"이라고 한다. 한국 애니메이션 고등학교처럼 비싼 장비가 많은 곳에서 공부하고 싶다는 소망이 있다.
요즘도 그는 인터넷에 거의 매일 만화를 올린다. 한번 그리는데 1~3시간 정도 걸린다. 일상생활을 그대로 그리기 때문에 다른 문화들과 달리 소재를 찾는 건 어렵지 않다고 했다.
그의 삶이 변하면서 만화 내용도 달라졌다. 회사 사장님과 동료들도 종종 만화에 등장한다. 무엇보다 회사에서 만난 성게군의 반려자 분홍빛의 성게양이 여주인공으로 자리잡았다. '성게양'의 모델은 그의 아내인 김선영(32) 킴스 라이센싱 디자인 실장이다.
"제 만화에 나오는 캐릭터 설정과 성격은 실제와 같아요. 사건들은 다소 과장할 때도 있지요."
옆에선 그의 아내도 고개를 끄덕인다. 하지만 기자가 본 '성게양'은 만화처럼 동글동글하지 않고 날씬한 미인이었다.
보통 작가와 달리 정씨는 회사 소속 디자이너라 작품판매에 따른 인센티브가 특별히 정해져 있지 않다. 혹시 이렇게 히트할 줄 모르록 저작권을 너무 빨리 포기한 것에 대해 후회하지는 않을까.
"전혀요. 막상 일해보니까 캐릭터는 개발하는 게 전부가 아니더라고요. 오히려 회사에서 체계적으로 마케팅을 한 덕분에 지금까지 올 수 있었다고 생각해요." 사실 책 인세나 연말 성과급 등으로 '실장님'인 아내보다도 수입이 많다고 털어놓는다.
"인터넷이 없었다면요? 으아…그럼 제가 없죠. 누가 제 작품을 봐주나요? 맞아요. 상상도 할 수 없죠."
구희령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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