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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린 광장] 달나라에 휴가 다녀온 친구

송훈·수필가

헌정 사상 첫 대통령 파면이 결정난 지 일주일쯤 지난 어느 날, 거의 1년여 만에 만난 한 친구와 점심을 먹다가 대화는 자연스레 탄핵 이야기로 옮겨갔다. 이 친구는 대통령이 파면당했다는 것도, 삼성그룹의 총수가 구속되었다는 사실도 모르고 있었다.

사실을 알고 나서 그 친구는 상당히 놀랐다는 반응을 보였으나 더 놀랍고 당황스러운 건 오히려 내 쪽이었다. 아무리 미국 땅에 살고 있다고 해도 어쩌면 이렇게 한국 소식에 담을 쌓고 살 수 있을까? 그렇다고 이민 온 지 수십 년이 된 것도 아니고, 여기서 태어나고 자란 2세도 아닌데. 아직 환갑도 안 된 같은 또래며 미국 온 지 십여 년밖에 안 됐다는 공통분모가 있어 같은 공감 영역 안에 살고 있다고 생각했기에 내가 느끼는 충격은 사뭇 컸다.

작년 10월부터 한국 전체를 뒤흔들고 있는 온갖 뉴스를 거의 꿰뚫고 있는 나로서는 참 이해하기 어려운 일이었다. 마치 달나라에 휴가라도 갔다 온 사람처럼 한국 뉴스를 아예 안 듣고, 안 보고 전혀 모른 채 살고 있는 친구가 한편으로는 신기했다.

같은 회사 동료였던 그 친구는 일이 잘 안 풀려 한동안 힘겨운 시간을 보내다가 뒤늦게 한의사가 되었다. 환갑이 다 된 나이에 새로운 공부를 하느라 각고의 노력을 했을 지난날의 과정이 충분히 상상이 된다. 그건 진정 아름다운 도전이었으며 값진 승리라고 말해 주고 싶다. 한국을 떠나 올 수밖에 없었던 아픈 기억도 있고, 새로운 도전으로 이루어 낸 일에 파묻혀 사느라 한국에서 그 난리가 나고 한인사회도 덩달아 요동을 치고 있건만 아무것도 모르고 살 수가 있었던 것 같다.

하긴 한국에서 쏟아지는 온갖 뉴스를 흥미진진하게 보며 듣다가도 가끔 '이게 뭐하는 건가' 싶어 허망해질 때가 있다. 모국이 잘 되기를 걱정하는 마음이 큰 탓에 하루 빨리 안정이 되기를 바라는 심정 때문이겠으나, 코리안 아메리칸으로 한국 선거 투표권도 없는 외국인(?)이 시시콜콜 돌아가는 모든 것을 꿰뚫고 산다고 딱히 달라질 것도 없을 것이다. 정의는 살아있음을 확인하고 일종의 대리만족을 통한 카타르시스를 느끼며 통쾌하기도 했지만.

주말에 골프를 같이 친 네 명의 멤버가 진보와 보수 지지파로 절반씩 극명하게 나눠지는 혼란스러운 판에 차라리 달나라에서 살 듯 담쌓고 사는 그 친구가 더 속 편하고 현명한 건지도 모르겠다. 그런 생각에 빠져 있다가도 한 시간도 안 돼 어느새 스마트폰으로 새로 나온 기사를 훑어보는 걸 보면 나는 역시 '달나라' 체질은 아닌 것 같다. 소란스럽고 정신없어도 이 '지구'가 더 살맛 나는 재미있는 세상인 걸 어쩌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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