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락을 더 이상 타락으로 느끼지 못하는 교계"
종교개혁 500주년 특별 강연회 권연경 교수
인간의 공로사상 깨려던 외침
지금은 종교개혁 정신 왜곡 심해
성경보다 목사의 말이 더 영향력
현재의 구조적 교회는 소멸중
이젠 실천 요하는 비판 필요해"
올해 개신교는 종교개혁 500주년을 맞았다. 교계에서는 이를 기념하는 행사가 종종 열리고 있지만 정작 문제에 대한 직시와 종교개혁의 의미를 사유하고 현실에 적용하자는 자성적 또는 실천적 움직임은 드물다. 기독교의 현실과 미래를 종교개혁 500주년의 정신과 유산으로 집중 조명하는 강연이 열렸다. 지난 13일 LA기독교윤리실천운동은 숭실대학교 권연경 교수(기독교학)를 초빙, '건강한 교회를 꿈꾸고 가꾸는 그리스도인'이라는 주제로 종교개혁 기념 특별 강연회를 진행했다. 권 교수는 "한국 교회는 이제 '소수의 종교(minority religion)'로서 새로운 시대를 준비해야 할 때"라고 말했다.
장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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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개혁은 크게 두 가지 부분의 변화였다.
당시 시대적 사고의 혁명과 권위에 대한 투쟁이었다.
권연경 교수는 "종교개혁 신학은 당시 시대적 상황을 담고 있었다"며 "그 당시 타락한 교회의 욕망을 채우는 신학적 수단으로 인간의 공로 사상이 만연돼 있었다. 면죄부 사건이 단적인 예"라고 말했다. 구원에 대해 인간의 공로와 책임만이 강조되던 당시 사상을 깨기 위해 외쳤던 신학이 바로 '오직 은혜(sola gratia)' '오직 믿음(sola fide)'이었다. 종교개혁은 기존의 생각을 버리고 새로운 생각을 하겠다는 운동이었다.
또 하나의 의미는 권위에 대한 투쟁이다.
그때는 교회에 자신의 신앙을 모두 위임하는 암묵적 신앙(implicit faith)의 시대였다. 문맹률이 높고 라틴어 성경만 있던 때라 교회가 최종적 혹은 절대 권위가 되다 보니 사제 또는 교회가 가르치는 것에만 의존했다.
권 교수는 "종교개혁은 맹목적 위탁이 아닌 깨달음과 지식에 기초한 신앙, 사제의 독점을 벗어나 성도에게 되돌려진 성경, '만인제사장주의'라는 혁명적 발상을 담고 있다"며 "이는 당시 교회의 권위를 넘어 본래 성경이라는 근원적 권위로 가겠다는 투쟁이었다"고 전했다.
지금은 이러한 유산이 잘 계승되고 있을까. 권 교수는 "지금은 종교개혁의 이름으로 종교개혁의 유산을 지우고 있다"며 "그때 당시 교회의 세속적 욕망을 고발했던 신학적 검찰이 욕망의 변호사로 변신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쉽게 말해 한때 교회 개혁을 위해 사용됐던 가치가 지금은 오히려 인간과 교회의 욕망을 방어하는 논리가 됐다는 것이다.
권 교수는 "종교개혁의 유산이 좋은 쪽으로 작용하면 좋은데 인간의 책임이 너무 등한시되는 바람에 인간의 욕망이 오직 은혜, 오직 믿음이라는 틀 안에서 좀 더 편하게 활개를 치게 됐다"며 "종교개혁의 '오직 은혜'라는 구호는 내 잘못을 가리게 하고 새로운 체제 옹호의 이데올로기가 됐다"고 말했다.
욕망의 활개는 교회의 경쟁체제를 촉발시켰다. 교회가 세속적 가치로 작동되기 시작했고 교회를 키우는 데 있어 행정 능력과 언변을 갖춘 목사가 각광받기 시작했다. 이는 교회 크기가 곧 정체성의 가치로 연결되면서 종교개혁 당시의 암묵적 신앙이 재현됐다. 또, 권위에 맹종하고 성경 자체가 담고 있는 의미에 집중하기보다 목회자의 설교를 '하나님 말씀'으로 간주하는 환경이 됐다.
권 교수는 "종교개혁 당시보다 훨씬 더 가톨릭적인 모습을 보이는 게 현재 개신교"라며 "세속문화의 종교적 버전일 뿐"이라고 말했다.
그는 "성경의 권위나 가르침보다 영웅적인 목사의 말이 사실상 더 영향력 있는 시대"라며 "지금은 성경의 본질이 지워지는 시대다. 성경이 담고 있는 뜻보다 '적용거리'가 중요해졌고, 내 생각을 성경말씀으로 껴맞추고 바꾸다 보니 왜곡이 심해졌다"고 지적했다.
어떻게 다시 종교개혁의 유산을 되살릴까. 강연에서는 ▶교회를 지배하는 욕망의 실체 파악과 현실 인정 ▶성경을 다시 이해하려는 용기와 노력이 필요하다는 것이 강조됐다.
권 교수는 "요즘 교회를 보면 타락을 더 이상 타락으로 느끼지 못한다. 문제 있는 목회자들을 보면 대부분 공통점이 잘못을 잘못으로 고백하지 않고 있다"며 "성경을 다시 이해하려는 노력과 용기가 필요하다. 그래서 마틴 루터도 당시 교회로부터 파면당하고 정죄를 받지 않았는가"라고 말했다.
그는 '교회 비판'에 대한 견해도 밝혔다.
권 교수는 "이제는 현상적 비판의 효과가 그렇게 크지 않다. 비판을 듣고 반성할 만한 상황도 아니며, 비판 당해야 하는 사람은 어차피 비판해도 안듣는다"며 "대신 신앙을 회복하고 현실을 파악하기 위한 교육용 비판은 필요하다. 그리고 단순히 '욕'이 아니라 실천을 요하는 비판이 돼야 한다"고 말했다.
종교개혁의 유산을 바탕으로 개신교의 미래를 준비해야 한다는 것도 강조됐다. 권 교수는 무엇보다 교회개혁에 대한 유토피아에서 벗어나야 함을 강조했다. 절대로 이상적인 교회는 있을 수 없으며 현실을 직시하고 지속적 투쟁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그는 "냉정하게 바라보자. 지금의 교회는 자정능력을 상실한 지 오래다. 임계점을 지난 제도적 실체만 남은 상태"라며 "현재의 구조적 덩어리는 소멸하는 과정에 있다. 이제는 앞으로 개신교가 소수 종교가 되는 것을 준비하고 규모와 힘의 신화를 벗어나 선명한 복음의 정체성으로 존재를 드러내는 교회가 돼야 한다"고 조언했다.
신학적 균형도 강조됐다. 종교개혁 당시 인간의 공로사상이 팽배했던 시대적 상황 때문에 이를 타파하기 위한 마틴 루터가 신학적 과장을 통해 행위적 측면을 배제했지만 믿음과 행위의 균형감을 갖고 성경 전체의 메시지를 다시 보려는 노력도 요구된다는 것이다.
권 교수는 "개신교는 이를 통해 개인윤리를 넘어 사회윤리에 대한 감수성의 회복이 필요하다"며 "결국 모든 것의 출발은 죽음이 결론이었던 세상에서 부활과 새 생명의 도래를 선포했던 십자가 복음일 수밖에 없다. 복음 자체에 대한 선명함이 드러나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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