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아침에] 욜로와 휘게, 행복의 기준점을 바꾸다
정여울/작가
이해는 되지만, 난 그렇게는 못 산다며. '욜로'와 함께 '휘게'도 각광받는데, 휘게(Hygge)는 덴마크어로 안락함, 아늑함을 뜻하는 것으로서 바쁨과 붐빔을 거부하고 느리고 소박한 삶을 선택하는 태도를 가리킨다. 성과나 연봉보다는 삶을 천천히 여유롭게 즐기는 라이프스타일을 중시하는 젊은이들의 요즘 세태를 개탄하는 분들의 표정에는 묘한 양가 감정이 서려 있다.
안정된 직장보다는 한 번뿐인 인생을 즐길 줄 아는 젊은이들에 대한 부러움과 질투, 그리고 일을 목숨만큼이나 소중히 여기는 자기 삶에 대한 자부심과 우월감도 함께 느껴지는 것이다.
나는 양쪽 다 불가능한 천성을 타고났다. 욜로족도 될 수 없고, 일에 목숨을 거는 워커홀릭도 될 수 없다. 나는 욜로나 휘게가 다분히 상업적인 유행어임을 알고 있지만, 그럼에도 이 두 단어에는 현대인의 중요한 삶의 가치가 서려 있다고 믿는다. 바로 행복에 대한 우리 사회의 기준을 바꾸고 있다는 점이다. 성과와 연봉, 경제적 안정과 사회적 성공보다는 '내가 선택하고 만들어가는 내 삶'을 중시하는 가치관이 고개를 들기 시작한 것이다.
그래도 내겐 욜로나 휘게라는 단어가 워낙 낯설어 한참 방황했다.
욜로나 휘게가 아닌, 우리말로 이 느낌을 표현할 방법은 없는 것일까. 이런 생각에 빠져 지하철을 기다리고 있는데, 스크린도어에서 아름다운 글 한 편을 만났다. 정약용의 '담박함을 즐기다'라는 글이었다. "담박함을 즐길 뿐 아무 일도 없지만/ 타향에서 산다 해도 외로운 것만은 아니네/ 손님 오면 꽃그늘에서 시집을 함께 읽고/ 스님 떠난 평상 가에서 떨어진 염주를 발견하네/ (…) 우연히 다리 위에서 이웃 사는 영감 만나/ 배 하나 띄워 놓고 취하도록 마시자 약속했네." 바로 내가 찾던 그 느낌이었다. 무슨 일이 있어서 행복한 것이 아니라 아무 일도 없는데 그저 행복에 겨운 것. 행복한 일이 일어나서가 아니라 내 마음에 이미 세상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평온함이 깃들어 있는 상태. 이것이 욜로나 휘게보다 더 높은 경지의 열락(悅樂) 아닐까.
정약용 시의 제목 '담박(淡泊)', 그것이 우리 조상들의 휘게라이프 아닐까. 묽을 담(淡), 즉 짙거나 빽빽한 것이 아니라 싱겁거나 묽거나 옅은 것. 거기에서 진정한 행복의 가치를 찾는 것. 그것이야말로 스마트폰에 길들어 버린 현대인이 잃어버린 행복유전자가 아닐까. 스마트폰은 우리의 두뇌를 '담박'과는 거리가 멀게 만든다. 끊임없이 새로운 자극을 갈구하도록 정보의 밀도를 높여 가는 것이다. 더욱 담박하게, 더욱 소소하고 내밀하게, 우리가 이미 마음 깊숙한 곳에 각자 지니고 있는 행복의 가능성을 발견하는 오늘이 되었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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