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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일구목사 칼럼] "제사장과 선지자"

구약성경을 보면 두 종류의 종교 지도자들이 등장하게 된다.
제사장과 선지자다.
우선 제사장은 그들의 직책을 유업으로 물려받은 자들이다.
즉, 야곱의 아들 가운데 레위의 후손이라면 제사장이 될 수 있었다.
그들이 제사장이 되기 위해서 레위 족속이 될 필요가 있었던 게 아니라, 레위 족속이기에 제사장이 될 수 있었던 게다.
또한 아론의 족속도 마찬가지다.
그들은 그 직책을 위해서 달리 부름을 받을 필요가 없었던 자들이다.
다만 출생에 의해서 제사장이 될 수 있었을 따름이었다.

그러나 선지자는 가문의 유업으로 그 직책을 이어받았던 자들이 아니다.
다만 하나님으로부터 부르심을 입은 자들이었다.
출생을 통해 선지자의 직분을 자동적으로 상속받은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특별한 소명에 의해 선택되었으며 사역을 펼친 사람들이었다.
이것이 성경에 등장하는 제사장과 선지자의 서로 다른 출발점이다.

선지자로서의 부르심은 때때로 특별한 종교적 경험들을 통해 주어졌는데, 이것은 선지자들로 하여금 그 권위를 깨닫게 하는데 결정적인 도움을 주었다.
모세는 가시덤불이 불타는 것을 보았을 때에 소명을 확인하였다.
이사야는 부르심을 받았을 때에 하나님께서 성전 가운데에 높이 들리신 환상을 보았다.
에스겔은 부르심을 받았을 때에 두루마리를 먹으라는 명을 받았는데, 그가 두루마리를 먹었을 때에 하나님의 말씀이 그에게 가득 채워지게 되었다고 한다.
이러한 놀라운 종교적 경험들을 오래 동안 기억하면서 선지자들은 그들 자신의 소명들을 확인하곤 하였다는 게다.

이렇게 부르심을 받은 선지자들은 이스라엘은 물론 고대 근동 국가들 사이에서도 정녕 독특한 위치를 차지하였을 뿐 아니라, 그들이 남긴 기록으로 말미암아 정녕 세계 역사 속에서도 매우 중요한 영향력을 행사해 왔다.
무엇보다도 그들은 진정 역사 가운데 위대한 거인들이었고, 참으로 용감한 자들이었으며, 백성들의 종교적인 믿음은 물론 올바른 도덕적 삶과 행위조차 단호하게 선도하는 지도자들이었다.

단순히 유업으로 물려받은 제사의 직무들과 종교적 제의들을 통해 사람들을 돌아다보는 사역들만을 반복적으로 수행하였던 제사장들과는 달리, 선지자들은 남다른 성품과 특별한 자격을 갖추고 있어야만 했다.
그들은 우선 그 누구보다도 뛰어난 혜안과 용기를 가진 자들이어야만 했다.
제사장들이 단순 반복적으로 미시적이고 소극적인 돌봄의 사역에만 치중하였다면, 선지자들은 좀 더 거시적이고 적극적인 사역들에 지혜와 용기를 가지고 초점을 맞추었다는 게다.
한 마디로, 선지자들은 이미 출생 시부터 그들에게 부과된 특별한 임무와 섭리로 말미암아 세파를 거스르며 가로 지르는 용기를 필요로 했다.
그런 까닭에 그들은 항상 혼탁한 세대에 시대를 선도하는 자들이 되었고, 어두운 시대에 길을 인도하는 향도가 되었다.
그들은 당시 이스라엘 뿐 아니라, 주변의 모든 국가들에게조차 시대적 사명이 있었던 게다.

이러한 선지자들 가운데 특별히 오늘과 같은 시류(時流) 속에서는 나단 선지자를 더욱 떠 올려보게 된다.
그는 누구보다도 용기 있는 사람이었다.
당시 그가 책망한 다윗 왕은 그의 죄가 백성들에게 드러난 바도 없었고, 오히려 백성들이 그를 칭송하였을 정도로 한 나라의 통치권을 손에 쥐고 있던 무소불위의 권력자였다.
그런 그에게 나아가서 죄를 지적한다는 것은 어쩌면 죽음도 각오해야 되는 상황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단 선지자는 용기 있게 다윗 왕의 범죄를 담대히 지적한 사람이었다.
다윗 왕이 자신의 충성스런 부하인 우리아의 아내 밧세바를 간음하고, 우리아 장군을 오히려 전쟁터에 내보내 죽게 만드는 죄를 범하자, 나단 선지자의 청천벼락 같은 책망이 쏟아졌던 것이다.
특별히 그는 다윗 왕의 죄를 지적할 때에는 더 이상 변명할 수 없도록 만들기 위해 밧세바 와의 사이에 불의의 씨앗인 아이가 태어나자, 죄악을 책망할 수 있는 증거로 삼는 지혜와 명철도 발휘하였음을 본다.

나단 선지자는 부자가, 가난한 자의 유일한 새끼 암양을 불의하게 갈취하였다는 비유를 통해서 우리아의 아내를 빼앗은 다윗 왕의 범죄를 신랄하게 지적하였다.
구약성경 사무엘하 12장에는 이렇게 소개되고 있다.
“한 성에 두 사람이 있는데 하나는 부하고 하나는 가난하니 그 부한 자는 양과 소가 심히 많으나 가난한 자는 아무 것도 없고 자기가 사서 기르는 작은 암양 새끼 하나뿐이라 ... 어떤 행인이 그 부자에게 오니 부자가 자기의 양과 소를 아껴 자기에게 온 행인을 위하여 잡지 아니하고 가난한 사람의 양 새끼를 빼앗아다가 자기에게 온 사람을 위하여 잡았나이다.
..” 이 이야기를 들은 다윗 왕은 나단 선지자에게 “그 사람은 마땅히 죽을 자”라고 일갈하였다.
이때 나단 선지자가 다윗 왕을 향하여 “당신이 바로 그 사람”이라고 지적한 후에 “칼이 네 집에서 영영히 떠나지 아니하리라”는 준엄한 신탁(神託)을 선포하였다.
여기서 우리는 선지자가 과연 어떤 사람이었던 가를 확연히 가름하게 된다.

오늘 우리가 사는 이 시대에는 정녕 제사장들보다는 선지자들이 더욱 필요한 시대는 아닐까 성찰해 본다.
시대가 어지럽고 백성들이 정도(正道)를 이탈하고 있을 때에는 제사장적 직무만을 빙자한 어떤 달콤한 말장난 보다는, 잘못된 것을 잘못되었다고 담대히 꾸짖고 책망할 수 있는 그런 선지자적인 기능이 더욱 더 필요한 게다.
성경의 선지자들은 사람들이 정녕 그들의 생각과 삶이 잘못된 길로 들어설 때마다, 영적이고도 도덕적인 혜안을 통하여 시대를 분별하고, 그 시대를 향한 하나님의 뜻이 과연 무엇인지를 온갖 고난과 고초 속에서도 담대히 선포했던 사람들이다.
선지자라고 함은 그냥 단순히 사람들의 비위나 맞추려는 달콤한 말장난들을 통해 특정한 세력이나 어떤 기득권자들과 야합 또는 타협이나 해서 뱃속이나 채우고 밥그릇이나 차지하려고 하는, 그런 약삭빠른 자들이 아니었다는 게다.
잘못된 것을 잘못되었다고 지적해 주고, 아무리 쓴 말일지라도 올바른 길로 나아가기 위해서라면, 그 누구를 책망하는 데에도 참 말을 서슴지 않았던 용기 있던 그들 선지자들 ... 오늘 이 시대에 그들이 더욱 그리워지고 있음은 도대체 과연 어찌된 일이란 말인가?

조일구(목사, 철학박사, 목회학박사 / 호놀룰루한인장로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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