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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뜨락에서] 서울이 책이다

곽애리/시인

고국은 애인 같다. 누구나 깊은 마음 속 해와 달 같은 애인은 있을 터. 나의 마음의 애인은 시·음악이다. 가까운데 도달하기에 너무나 먼 어느 지점이다. 고국, 정신적으로 가까운데 시간·경제·물리적으로 다가가기에 결코 쉽지 않은, 가깝고도 먼 하늘아래 땅이다. 큰 맘 먹고 강행한 고국방문, 도착한 거대한 도시 서울이 총천연색 야경불빛에 찬란히 빛나고 있었다. 도착하자마자 동생 집에 짐을 풀고 다음날 대학로 예술가의 집에서 열린 문학행사를 성황리에 끝냈다. 그 다음날 다시 강남의 삼성 아트홀에서 열리는 문학행사에 참여하기 위해 출판계에 몸 담고 있는 시인과 함께 택시를 탔다. 목적지에 도착하기 전 이런저런 문학 이야기를 나누며 간혹 창밖을 내다보다 너무도 많이 변한 서울풍경에 놀라 밖을 가리키며 저것은 무엇이냐고 묻기도 하였다. 매번 친절한 대답 끝에 시인은 “서울이 책이죠!”라고 말끝을 흐리는데, 순간 빛을 담은 듯한 그의 말에 전기에 감전 되듯 온 뇌리와 몸이 진동으로 흔들렸다.

“서울이 책!” 그렇다. 생은 저마다 한권의 소설책이고, 반복되는 사계절풍경 속 수많은 사건과 사연 속에 무수한 사람의 희비극의 이야기를 담고 있는 이 도시는 죽는 날까지 다 읽어볼 수 없는 두꺼운 책이다. 책 속에 길이 있고 진리가 있다는데 나는 이번 여행 중 길동·인사동·한남동·성북동…, 구석구석 거리를 배회하고 사람을 만나며 서울이란 책을 다독 하고 있다. 좁은 남대문 골목 시장, 깡통 의자에 앉자 삼천원짜리 막국수를 먹고, 길 건너편 명품 백화점에 들려 가방 하나에 300만원이 넘는 매장에 꽉찬 손님을 바라보며,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빈부의 괴리에 놀라 체한 듯한 배를 쓰다듬으며 도시의 이방인이 되어 타인의 삶을 들여다보고 있다.

도시인의 삶을 훔쳐보는 것은 마치 슬프고 아름다운 소설의 한 장면 같다. 타인의 삶을 바라보다 생각의 종착역은 나에게 돌아와 반성하고 감사하게 하는 겸허한 또 다른 몸짓을 바라보며 “여행은 책이다”라고 덧 붙이고 싶었다. 독서 삼매경에 빠지듯 나는 온 몸에 피가 역류하는 도시의 탐색에 울렁거리는 마음을 애써 지그시 누르곤 했다. 지금 시인을 만나 문학 행사 쪽으로 가고 있는 나, 문학이란 열독에 빠진 건 아닌가 하는 “서울이 책이다”로 파생된 천개의 생각의 꼬리에 빠져들어가는 나의 속내가 우섭다. 자동차 경적소리에 화들짝 놀라 정신을 차려 보니 기사는 길을 잘못 들었고 행사 시간이 임박해지자 제 시간에 도착하지 못할까 초조해진 옆 좌석 시인은 기사 양반과의 잠시 인연을 서둘러 맺어야 한다며 빨리 내려야 한다는데 해학이 묻어난 재미있는 말의 선택, 말의 운용, 그 시인의 언어의 온도와 말의 품격이 좋아 택시 안에 정체된 그 시간이 지루하지 않았다. 사람의 말이 지적인 충동이 되어 생각으로, 사고로 몰고 가며 그 말이 물이 되어 가슴으로 스며들때 그 만남은 소중하며 향기나는 그 사람은 분명 귀한 사람일게다.

거대한 도시 서울, 이 도시에서 내가 얻어가는 것은 무엇인가. 길가의 자판대의 상인들의 치열한 삶의 의지를 엿보고, 어두운 연극 객실에 앉자 타인의 삶을 엿보며, 길상사의 미닫이 문을 열고 들어간 침묵의 방에서 존재를 찿았던 시간, 그러나 무엇보다 서울이 책이라는 말의 여운을 안고 간다. 서울은 책이었다. 짧은 방문 시간에 쫓기어 어느 부분은 그저 눈으로만 책장 넘기듯 속독하고 어느 장소에 가서는 오래앉아 저녁 놀에 스러지는 물결을 바라보며 정독을 한 시간, 또한 자신을 갈고 닦기에 게을리 하지 않은 인향이 풍기는 사람들과의 만남에서 그 깊은 지성을 애독했다. 서울은 긴 울림이 있는 한권의 책이었다. 이 도시를 읽고 가는 독서의 힘이 한동안 나를 단단히 고무 시킬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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