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 우리말] 맛과 멋의 세상

'맛'이라는 단어는 많은 생각을 하게 합니다. 우선 '맛'은 '멋'과 닮아 있습니다. 모음을 약간 바꾸어서 기분 좋은 다름을 만들었습니다. '맛'이나 '멋'이나 다 좋은 말입니다. 그래서일까요? '맛있다'와 '멋있다'는 발음의 규칙에서도 비슷합니다. 잘 눈치 채기 어렵겠지만 '마딛따' '머딛따'라고 해야 일반적인 규칙에 맞습니다. 예를 들어 '옷 있다'라는 말을 '오싣따'라고 발음하지는 않습니다. 중간에 잠깐 쉼을 두어야 하는 겁니다. 앞 말과 뒷말을 구별하기 위한 것이지요. 그런데 맛과 멋의 경우는 매우 예외적으로 '있다'와 구별 없이 한 덩어리가 되었습니다. 반면에 '없다'와는 한 덩어리가 되지 않습니다. '마덥따' '머덥따'로 발음하는 것을 보면 알 수 있습니다. 특이하지요.

이러한 표현은 맛이나 멋은 있는 게 당연하다는 의미도 됩니다. '맛있다'라는 말은 참 재미있고 좋은 말입니다. 맛은 어떤 맛이라도 있기만 하면 좋다는 뜻이기 때문입니다. 달콤한 맛만 맛있는 게 아닙니다. 우리의 맛을 살펴보면 다양한 맛이 맛있게 존재합니다. 씀바귀 같은 나물도 쓰지만 맛있다고 합니다. 불같이 매운 맛도 좋아합니다. 삭힌 음식의 구수한 맛은 말할 필요도 없습니다. 사람의 취향에 따라 다르기는 하지만 삭힌 홍어나 과메기 등은 오히려 별미 대접을 받습니다. 나라마다 있는 이상한 음식은 그 나라에서는 인기 음식인 경우가 많습니다.

어떤 맛이라도 있는 게 맛있는 거라는 점은 많은 위로가 됩니다. 세상에 자기 맛을 지니지 않은 음식은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기에 모든 음식은 맛있는 음식이 됩니다. 단지 가끔 서로의 취향이 맞지 않은 경우가 있을 뿐입니다. 모든 이가 다 좋아하는 것은 애초에 불가능할 수도 있겠습니다. 사람의 관계에서 모두에게 인정받으려고 하는 욕구가 오히려 짐이 됩니다. 일부는 기대에서 털어내야 합니다. 서로의 입맛이 다르기 때문입니다.

달콤한 음식을 정말 좋아하는 사람도 있고, 별로 좋아하지 않는 사람도 있습니다. 아예 몸에서 거부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매운 음식과 신 음식을 엄청나게 좋아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지켜보면 때로는 웃길 때도 있습니다. 땀을 뻘뻘 흘리거나 인상을 쓰면서도 맛있다고 하며 먹습니다, 안 먹으면 될 것 같은데, 매운 게 정말 맛있답니다. 눈치 채셨겠지만 저는 매운 음식을 잘 못 먹습니다.

이렇게 사람마다 식성이 다릅니다. 자세하게 들어가면 좋아하는 음식이 다릅니다. 어떤 사람은 고기를 안 먹고, 어떤 사람은 해산물을 안 먹습니다. 무엇을 안 먹는다고 나쁜 건 아닙니다. 다를 뿐이지요. 그렇기 때문에 서로에 대한 이해가 필요합니다. 저런 음식을 왜 먹는지 이해가 안 된다고 이야기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사실 저는 금방 이해가 됩니다. 식성이 다른 겁니다. 사람이 다른 겁니다. 사람은 모두 다릅니다.

저는 맛에 관한 표현을 볼 때마다 제가 갖고 있는 맛이 궁금해집니다. 제가 지닌 어떤 맛이 사람들을 즐겁게 할까요? 이렇게 사람이 지닌 맛을 우리는 '멋'이라고 합니다. 저마다 제 멋에 산다는 말은 약간 반항처럼 들리기도 하지만 본질적으로는 맞는 말이기도 합니다. 자기의 멋을 발견하는 일은 필요한 일이고 필수적인 일이기도 합니다. 또한 만나는 사람마다 지닌 맛과 멋도 잘 찾아내고 싶습니다. 자기의 맛과 멋만 소중하고 남의 맛과 멋을 무시한다면 문제가 됩니다. 그걸 우리말로는 '제멋대로'라고 합니다. 이 말은 좋지 않은 표현이 됩니다. 왜냐하면 남의 맛을 존중하지 않고 이기적으로 사는 것이 제멋대로의 삶이기 때문입니다.

서로를 존중하면 맛있는 세상, 멋있는 삶이 늘 우리 앞에 있습니다. 다른 사람과 함께 맛있고 멋있는 삶을 살고 싶습니다. 이왕이면 저의 맛을 좋아하는 사람이 많으면 좋겠네요.


조현용 / 경희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