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뜨락에서] 열고 닫음이 누구의 뜻인가
살다가 보면 이런 난감한 순간도 있는 것을 경험했다.어느 날 구역회를 하는 시간이 돼 나가려고 하는데 차고 문이 닫히지 않아서 무척 어려운 시간을 가졌다. 수십 번 시도한 끝에 겨우 닫고 뒤를 여러 번 돌아보며 가기는 했지만 마음은 집 차고에만 멈춰 있었다. 그 다음 날부터 며칠간은 한두 번 재시도하면 잠겼는데 일요일 아침 첫 미사에 참례한다고 나가니 드디어 터질 것이 터졌다. 열리기는 했는데 아주 움직이지 않는다. 문이 열린 채로 두고 나갈 수는 없어서 전기 연결을 다 뽑고 문만 내리고 미사에 갔지만 한 시간 동안 분심으로 죄송한 시간을 보내야 했다.
남편은 무엇이든 자신이 고쳐서 사용한다. 그 날 오후 문제가 무엇인지 찾아서 새것으로 갈아 줬지만 마지막 단계를 어찌 할 수 없어 결국은 전문가를 불러서 오분 만에 몇 백 달러를 줘야 했다. 기술자가 오기 전에 시간이 걸리고 힘이 드는 일은 다 해 놓았지만 당연했다.
어린 시절 우리동네는 어느 집이나 일 년이 가도 삽 작을 닫지 않고 항상 열려 있었다. 많은 가정이 대가족 제도 하에서 살았기 때문에 집에 누구인가 한 사람은 항상 있었다. 기숙사에서도 열쇠는 필요 없었다. 아파트에서 생활 한 경험이 없는 나는 미국에 올 때까지 열쇠를 가진 기억이 없다. 내 생애 처음 아파트로 옮긴 후 어느 날 찌개를 끓이다가 "아차"하는 순간 열쇠를 아파트 안에 두고 쓰레기를 버리러 나왔다가 몇 번 낭패를 보고 고생 한 경험이 있다.
잠금 장치를 인류가 언제부터 사용했는지 찾아보았더니 믿을 수 없지만 보안 역사가 BC 4천년부터라고 해서 놀랐다. 우리나라는 삼국시대부터라고 한다. 물론 처음에는 나무로 만들어 사용하던 것이 시대가 변하면서 종류도 천차만별이다. 지금 세대는 집은 물론이고 컴퓨터와 자동차, 가방, 심지어는 수갑까지도 열쇠가 필요하다. 특히 은행에 가면 비밀번호를 요구하면 나는 항상 잊어버리는 사람이라 황당하다.
세월 따라 열쇠의 종류도 변한다. 나무나 쇠도 지나가고 이제는 얼굴인증, 지문, 눈동자 등이 나왔지만 앞으로 어떤 종류의 열쇠가 나와야 사람들이 안심할지 궁금하다. 열쇠의 소유는 부의 상징이고 잠금 장치가 필요한 만큼 지켜야 할 귀중한 것을 소유하고 있다는 뜻이겠다. 내가 이민 오기 전만해도 의사, 판사 신랑감은 혼처 자리가 나오면 신부와 함께 열쇠 몇 개씩은 간혹 요구한다고 들었다. 부모님이 살기 팍팍해 일 나가시면 초등학교 어린이도 열쇠를 목에 걸고 등교한다는 이야기도 들었다.
아무것도 없다고 하지만 도둑 가져갈 것은 있다는 어른들 말씀이다.
내가 한국땅을 떠나기 전까지도 고향에서는 어느 집이나 항상 대문이 열려 있으니 햇빛도, 달빛도, 골짜기에서 불어오는 바람도 허락 없이 들어왔다 거침없이 나간다. 성주 봉에서 내려오는 바람은 봄소식을 가지고 아랫동네로 내려온다. 여름이면 뜨거운 태양아래서 힘들게 일하고 잠들어 있는 농부들에게 산 위의 시원한 바람이라는 선물을 가지고 내려온다. 가을이면 한 여름 태양아래서 잘 익은 달고 향기로운 오곡백과의 풍요로운 맛을 보러 내려온다. 겨울이면 산꼭대기의 스산한 외로움을 달래려고 내려온다.
바람만이 아니다. 단절돼있지 않고 낮은 토담과 삽 작을 닫지 않는 그 때의 동네에는 사철 꽃과 벌과 새들이 거리낌 없이 들어오고 나간다. 옆집 고양이도 앞집 닭도 언제든지 넘나든다. 보따리 장사도, 이웃의 누구라도 그냥 지나치지 않는다. 스님이 목탁 치는 소리가 들리면 작은 양이지만 시주를 망설이지 않는다.
사람의 마음도 이처럼 열려있다면 좋겠다. 서로 간에 소통이 잘 되어 편안하고 스트레스를 덜 받을 될 테니까.
이 나이가 되어도 장소에 따라서 상대방에 따라서 내 기분에 따라서 마음이 열렸다 닫혔다 하니 나는 아직 멀었나 보다. 때로는 열렸다가도 즉각 닫아버리기도 하고 상대방에 따라 장소나 기분에 관계없이 닫히지 않고 항상 열려 있을 수도 있다. 인생은 한번만 살수 있다는데 가끔은 열리지 않는 내 마음이 원망스러울 때도 있다.
김동주 /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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