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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현일의 세상 보기] 植民과 분단 고통 겪은 에이레를 참고하면…

아일랜드 출신 영화감독 닐 조던의 '마이클 콜린스(Michael Collins)'가 1996년 베네치아국제영화제에서 최우수작품상인 황금사자상을 받습니다. 아일랜드 독립운동가 마이클 콜린스의 삶을 다룬 영화지요. 이에 영국 언론들은 '암살자를 영웅 시 했다'고 일제히 비난했습니다. '중대한 역사왜곡'이라며 상영금지를 요구하는 바람에 세계가 시끄러웠습니다. 리엄 니슨, 줄리아 로버츠 등이 열연한 이 걸작을 한국 영화 팬들 상당수가 2013년 부산국제영화제에서야 맛본 것도 이런저런 사연 때문입니다.

영화를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선 작품의 시대적 상황, 역사적 배경을 아는 게 필수적입니다. 하기야 이는 세상사 모두에 해당하겠지만 말이지요. 그래서 영화 '마이클 콜린스'는 아일랜드에 대한 기본지식을 대전제로 합니다.

아일랜드(Ireland)가 섬을 뜻하는 일반 명사 Island와 헷갈리기 때문에 'Republic of Ireland'라고 부르지요. 그들 고유 언어인 게일어로는 에이레(Eire).

1200년대 이래 이웃한 영국 식민(植民) 통치를 받다가 1921년에야 자유국이 됐고 10여 년간 '에이레'라는 국명을 지니다가 1949년 완전 독립국가가 된 비운의 섬나라입니다. 인구 500만에, 땅 크기는 7만㎢ 남짓합니다. 남한(99720㎢) 보다도 훨씬 작지요. 32개 카운티로 구성된 나라의 북쪽 6개 카운티가 그나마 영국 국토가 돼버린 결과입니다. 1970~80년대 외신면을 장식하던 IRA, 즉 아일랜드공화국군(Irish Republican Army)의 테러 현장이 북아일랜드 바로 그곳입니다. IRA 테러가 본격화 된 1969년부터 20여 년간 2000명의 시민을 포함, 경찰.군인 등 2911명이 숨졌으니 그 치열함이 짐작될 겁니다.

식민시대를 거친 '분단국'…얼핏 한민족과 '딱'입니다.

그러나 엄밀하게 따지면 '한민족'은 이들에 비하면 약과입니다. 무엇보다 일본 제국주의 치하에서 신음한 36년의 식민기간은 아일랜드의 700년과 비교가 안 되니까요(종주국 노릇을 해온 중국 존재를 고려하면 달라지나). 아일랜드를 'potato(감자).peat(토탄).poverty(가난)'을 뜻하는 '3P의 나라'로 기억하시는 게 우연이 아닙니다. 생산된 고기와 밀은 영국이 쓸어가고 먹을 것이라곤 감자, 땔감은 저질 석탄인 나라에 남은 것은 가난이었던 겁니다. 지금은 미국이 된 신대륙으로 몰려간 것은 입에 풀칠이라도 하려는 몸부림이었던 것이지요. 당시 기아와 질병으로 떼죽음을 당하자 수천 명을 한 구덩이에 매장했다고 합니다. 260미터 높이의 해안 절벽이 8㎞나 늘어선 아일랜드의 명승지 모헤어 절벽 입구 마을의, 굶주림에 겹친 질병으로 몰살한 5000명 무덤 구덩이는 당시 참상을 대변합니다. 2008년에도 1200명, 2014년에도 1000명의 유아 등의 시체가 한 마을 땅 밑에서 발굴되는 등 1847~1852년 대기근의 참상은 지금도 생생합니다.

독립 쟁취 막바지 단계에서 생긴 민족 내 갈등으로 1만 명 이상이 숨졌다지요. 수백만 명의 희생자를 낸 한국전과 비교는 안 되지만 한국전이 세계 강대국 간의 대리전 양상으로 진행됐음을 감안하면 이들이 'Civil War'로 명명한 2년의 세월이 얼마나 험악했을지, 이후의 갈등이 어떠했을지 짐작됩니다. 골육상쟁인 내전의 특성 때문에 사상자 집계도 분명치 않아 1~2만 명이라고 추정할 정도입니다. 내부 갈등과 반목이 더욱 극심했던 것은 종교가 뒤엉킨 것도 한 이유라던군요. '압제자' 영국이 개신교를 강제하자 식민지 아일랜드인은 가톨릭 성당을 중심으로 뭉쳤다는 겁니다. 재산 유지를 위해 영국 눈치를 봐야 했던 일부 대지주만이 개신교로 개종해 지금도 90% 이상의 국민이 가톨릭 신자입니다. 아일랜드판 친일 논쟁의 뿌리라고나 할까요.

공식적으론 이들의 고유어인 게일어와 영어가 공용어이고, 모든 문서나 상표 등은 게일어가 앞에 큰 글씨로 표기돼 있으나 실제 게일어 사용 인구는 2%도 안 됩니다. 700년 식민의 결과를 현실로 받아들이면서도 자신을 찾으려는 안간힘이 느껴지는 대목입니다.

영화 '마이클 콜린스'의 주인공 마이클 콜린스는 26세 때인 1916년 독립을 외치며 총궐기한 부활절 폭동을 계기로 혁명가의 길을 걷게 됩니다. 그는 폭동 지도자들이 대거 처형당하자 본격적인 대영(對英) 투쟁에 나서, 1919년에는 비밀무장단체인 아일랜드공화국군(IRA)을 창설합니다. 후일 북아일랜드 테러를 주도한 그 IRA의 모태인데 한국 독립운동의 의열단이나 애국단으로 이해하면 됩니다. 이때 미국 시민권자여서 살아남아 콜린스와 더불어 독립투쟁을 이끈 에이먼 데 발레라(Eamon de Valera)는 국민의회(Dail Eireann) 대통령이 됐지요. IRA 리더로서 도시 게릴라전을 전개한 그는 영국군 합참의장을 암살, 피의 보복전을 촉발시키는데 영국 정부가 영화 장면들이 테러는 미화하고 영국을 무자비한 살육자로 그리고 있다며 반발한 것입니다. 콜린스는 이후 데 발레라 대통령 대신 영국과의 담판에 나서 '영국-아일랜드 조약'을 성사시켰고, 자치정부인 자유아일랜드(Irish Free State)를 탄생시킨 주역이 됩니다. 국민의회가 조약안을 비준, 자유국이 탄생하게 됐으나 데 발레라가 대통령직을 사임하고 당시 IRA 대원의 70%가 조약에 반대하면서 내전이 벌어진 겁니다. 아일랜드는 아일랜드 자유국이라는 이름으로 대영제국 자치령으로 남으며, 의회 의원들은 영국 국왕에게 충성 서약을 해야 한다는 등이 문제가 됐는데, 그러니까 반대파 강경론자들을 나무랄 것만은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데 발레라 대통령도 훗날 인정했듯이 당시로는 수용할 수밖에 없는 대안이라는 겁니다. 쇠퇴했다지만 역시 강대국인 영국을 상대로 받아 낼 수 있는 최대한이었다는 토로지요. 어쨌든 콜린스는 협상안을 반대하는 데 발레라 추종자들에게 암살당하면서 영화는 막을 내립니다. 영구분단의 원흉이자 변절.배신자라는 평가보다는 독립 영웅이란 이미지를 새기면서…. 데 발레리도 결국 협약을 수용, 아일랜드의 수상을 거쳐 초대 대통령이 되니까요. 배역이 정반대(?)로 바뀐 것만 감안하면 대한민국 해방정국의 판박이입니다. 아무튼 뒤늦게 경제개발에 매진해 2015년 기준으로 1인당 국민소득 5만3314달러의 경제성장을 이루고(현재는 후유증이 겹쳐 고전), 또 자신을 짓눌렀던 영국과는 1965년 자유무역협정을 체결해 하나의 경제공동체처럼 살아가는 것도 어디서 본 듯한 모습입니다.

한국을 '꼭 닮은' 아일랜드를 가보겠다고 오랫동안 벼르다가 지난주 결행을 했습니다. 거의 모든 게 '역시' 였습니다. 오랜 식민시대의 자취가 곳곳에 짙게 배어 있습니다. 친절하지만 서구인답지 않은 굳은 표정과 애조 띤 아이리시 가락… 수도 더블린의 주요 건물.거리는 이름부터 비극적인 역사를 웅변합니다. 콜린스가 잠든 글래스네빈 공동묘지를 따로 운위할 필요조차 없이 서울의 광화문에 견줄 더블린 오코넬 거리엔 민족주의자 오코넬을 비롯, 게일어 지킴이 윌리암 스미스 오브라이언. 독립운동가 찰스 스튜어트 파넬 동상이 세워 있습니다. 아일랜드가 낳은 제임스 조이스, 버나드 쇼, 오스카 와일드 등이 무엇을, 왜 말했는지를 저절로 떠오르게 만드는 현장입니다.

아일랜드는 위스키와 맥주로 유명하지만 역시 기네스로 대표되는 맥주를 꼽지 않을 수 없을 겁니다. 그러나 아이리시 위스키도 스카치 위스키에 밀릴 수밖에 없는 운명이었습니다. 영국의 중과세에 시달리다가 18세기 이후에야 숨통이 트였으니까요. 딴 얘기입니다만 입장료 24유로(3만원)를 받고 공장을 안내하는 기네스의 상술은 가히 일품입니다. 선전을 위해 관람객을 돈 들여 초빙하는 여느 회사들과 달리 거금을 받고 PR요원을 거저 양산하니 말이죠.

가슴 깊은 곳에 한(恨)을 묻어두고 내일을 개척해 나가는 아일랜드인들, 오랜 식민 결과로 켜켜이 쌓인 내부 갈등을 삭이느라 고뇌하는 아일랜드에게서 우리가 참고할 것은 많습니다. 자신을 괴롭혔던 이웃 국가와의 관계 설정을 포함해서 말입니다. 해묵은 친일 논쟁 등은 차치하고 당장 북한 핵 문제로 북한, 일본.중국 등과 조율해야 할 게 너무나 많으니까요. 게다가 현 정부의 대북 유화 내지 친밀 노선은 경제정책과 얽혀 이데올로기 시비로 비화돼 세상이 불안, 어지럽고….

꺼내면 한이 없으나 섣부른 진단 등이 불필요한 잡음을 야기할까 저어돼 영화 마이클 콜린스와 그 배경이 된 아일랜드 관련 한담을 거론한 선에서 줄일까 합니다. 그러나 한반도 현안 해결 궁리 방편으로 아일랜드를 곱씹어보자는 제의는 잊지 마시기를 소망합니다. 서울의 상황이 그만큼 심각하다는 지적은 사족이겠지요.


김현일 / 논설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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