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 우리말] 내가 셀카를 찍는 이유

'셀카'라는 말은 표준어는 아니지만 그야말로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다 아는 어휘입니다. 사전에 올라가 있지 않기 때문에 뜻도 명확히 정의되어 있지 않습니다. 셀카는 셀프카메라의 줄임말입니다. 스스로 자신의 사진을 찍는다는 의미죠. 사진이라는 게 주로 다른 사람을 찍어주거나 풍경을 찍는 것이어서 셀카라는 말은 생길 때부터 이상한 말이었습니다.

셀프라는 말도 좀 이상한 외래어이기는 합니다. 물을 영어로 뭐라고 하냐고 물으면 '셀프'라고 한다는 농담도 있습니다. 왜냐하면 식당마다 물은 셀프라고 써 놓은 곳이 많기 때문입니다. 저는 물을 셀프라고 써 놓은 곳을 보면 불편한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일하는 사람의 수고를 덜어드리기 위해 직접 가져다 먹는 게 아니라 인건비를 줄이기 위해 '셀프'를 써 놓은 것으로 보이기 때문입니다. 잘 가려 판단해야 하겠지만 셀프서비스만 없어져도 고용이 상당히 늘어날 겁니다.

셀카라는 단어는 앞머리만 따서 만든 단어입니다. 이런 어휘를 두음절어(頭音節語)라고 합니다. 단어의 첫 음절을 모아서 새 단어를 만드는 방식입니다. 알파벳을 사용하는 언어에서는 두문자어(頭文子語)가 많습니다. 유엔(UN)이나 유네스코(UNESCO)라고 하는 게 대표적입니다. 우리말에는 두문자어가 없습니다. 한글 자모로 새 어휘를 만드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대신 한국어에는 수많은 두음절어가 있습니다. 특히 단체명은 두음절어가 많습니다. 전대협이나 전교조, 노총이나 교총은 모두 두음절어입니다. 최근에는 심하다 싶을 정도로 두음절어가 남용되고 있습니다. 텔레비전 프로그램이나 영화 제목은 두음절어가 되어 다시 태어납니다. 대학의 수업명도 두음절어가 되었습니다. 저는 '한국어와 한국문화'라는 수업을 하고 있는데 제 학생들은 '한한문'을 듣고 있습니다. 같은 과목을 달리 부르고 있는 셈입니다.

셀카처럼 외국어도 한국에 들어오면 두음절어가 되기도 합니다. 한국식 외래어로 탄생하는 경우도 많습니다. 어떻게 보면 한국 국민이 언어에 관해서는 감각이 좋은 것 같습니다. 수많은 새로운 말을 만들고 있습니다. 표준어를 정리하는 국립국어원도 정신이 없을 듯합니다. 해마다 엄청난 신어가 쏟아지고 있습니다. 제 생각에 셀카도 새로운 단어로 인정이 될 듯합니다.

셀카를 찍는 것은 특별한 재미가 있습니다. 자신이 스스로 찍는 사진이기에 부끄러움도 적습니다. 혼자서 별의별 표정을 짓는다는 점에서 희한한 즐거움도 있습니다. 누가 보고 있다면 절대로 못할 행동이니 말입니다. 셀카로 찍는 사진이 뽀얗게 잘 나오는 경향도 있습니다. 사람들이 자꾸 셀카 사진을 SNS에 올리는 이유이기도 하죠. 잘 나온 사진이니까요?

나이 든 사람은 셀카를 잘 안 찍는 듯합니다. 하긴 다른 사람이 찍어준다고 하여도 잘 안 찍히려고 하는데 셀카까지는 무리일 수 있겠습니다. 그런데 저는 거의 메일 셀카를 찍습니다. 희한한 일이지요? 제가 보려고 찍는 것도 아닙니다. 오늘의 모습을 남기고 있는 겁니다. 제가 셀카를 찍는 이유는 따로 있습니다. 그건 바로 부모님께 보내드리려고 하는 겁니다.

멀리 계신 부모님께서 스마트폰을 구입하신 이후부터 열심히 제 셀카 사진을 보내고 있습니다. 처음에는 무척 어색했습니다만 제 사진 보는 재미로 하루를 보낸다는 부모님의 말씀에 더 열심히 찍고 있습니다. 어떤 때는 하루에 여러 장을 찍을 때도 있습니다. 사진을 자주 보내니 부모님께서는 저와 같이 있는 느낌이라고도 말씀하십니다. 기쁜 일이지요. 자주 못 뵈니까요.

셀카는 의외의 즐거움도 줍니다. 부모님께 보내려고 찍는 사진이다 보니 활짝 웃는 모습으로 찍게 됩니다. 아무리 힘든 일이 있어도 내색은 할 수 없겠죠. 그런데 웃으면서 사진을 찍다 보니 힘든 일도 조금씩 달아나게 됩니다. 마음도 밝아짐을 느낍니다. 하루에 최소한 한 번은 웃는 얼굴이 되었습니다. 나중에 시간이 오래 흐른 후 그동안 찍은 셀카 사진을 보면 더 웃음이 나면서 한편으로 아릿하겠지요.


조현용 / 경희대학교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