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서교차로] 북극성을 찾아서
비 오는 날이 나는 좋다. 촉촉히 세월 속에 젖어드는 느낌이랄까. 어릴적 고향집 마당에서 윤이 반짝반짝 나는 놋쇠 대야에 새하얀 손수건 떨어뜨리면 대야 물 속으로 손수건이 젖어 들었다. 역류하지 않고 세월에 젖어 뭍어가면 사는게 좀 편하겠다는 생각이 든다. 이젠 마지막 달력에 남은 날들을 세지 않겠다. 지나간 시간들에 매달리지 않고, 되새기지 않고, 억울하게 뒷통수 치고 간 사람도 잊겠다. 용서하겠다. 용서하는 게 아니라 용서하지 못한 나를 용서하겠다.내 몸에 감긴 사슬은 내 손으로 풀어야한다. 기억 속에 지워진 사람, 아련하게 떠오르지 않는 얼굴들은 그냥 잊을테다. 인연은 가고 오는 것. 보내고 비우면 낯선 얼굴이 그 자리를 채울 것이므로. 새장에서 날아간 새는 돌아오지 않는다. 놓쳐 버린 것들에 애닯파 하지말고, 청춘의 꽃말 흩어진 겨울 바닷가에서, 눈물 뚝뚝 떨어져도 참담해 하지 않고, 신발 끈 다시 매고 새 날 맞을 작정을 한다.
북극성은 천구의 북극에 위치한 별이다. 천구(天球.Celestial Sphere)는 둥글게 보이는 밤하늘의 학문적 명칭이다. 하늘을 쳐다보면 항성(恒星)을 비롯한 천체의 별들이 관측자를 중심으로 커다란 공에 착 달라붙어 있는 것처럼 보인다. 물론 실제로 구(球)는 존재하지 않는다. 다만 천체의 방향과 방향의 시간적 변화를 연구하기 위해 천구라는 가상(假想)의 공을 편리하게 만들었다.
북극성은 작은곰자리의 알파(α) 별을 말한다. 한국과 중국에서는 북신(北辰) 이라고도 한다. 천구의 북극과 1° 떨어져 있으며 북극을 중심으로 일주운동을 하는데 회전반경이 아주 작아 정지해 있는 것처럼 보인다. 안시등급이 2.5 등의 밝은 별로 옛부터 항해자나 나그네의 방향을 잡아주는 길잡이가 됐다.
공자는 논어 위정 제2편에서 '위정이덕, 비여북신, 거기소이중성공지(爲政以德, 譬如北辰, 居其所而衆星共之)' 라고 했다. '덕으로 정치를 하는 것은 비유하자면 마치 북극성이 제자리에 가만히 있는데 뭇별들이 그것을 에워싸고 도는 것과 같다'는 뜻이다. 덕(德.Virtue)이 사람을 모은다. 북극성이 하늘의 길을 알려주듯 힘들고 지친 생의 곳곳에 세상의 길과 사람의 덕을 깨우쳐 준 분들이 있었다.
'모래알 한 톨에서 세상을 보고/ 한 송이 들꽃에서 천국을 보라/ 그대 손바닥에 무한을 움켜쥐고/ 순간에서 영원을 바라보라' 화가이자 시인인 윌리엄 블래이크는 '순수의 전조(Auguries of Innocence)'에서 모래와 들꽃처럼 보잘것 없는 것도 삼라만상의 본질이 응축된 소우주라고 노래한다. 이 시는 생전에 스티브 잡스가 가장 사랑한 시다. 잡스는 스마트 폰으로 우주를 본 사람이다.
우주의 존재 원리를 파악하고, 순간에서 영원을 포착하는 감동적인 순간의 '시간점(Spot of time)'을 찾은 사람은 생을 소진하지 않는다.
나는 여태 누구의 길잡이가 됐던가. 빛 없는 곳에 빛이 되고, 어둔 밤하늘 빛나는 별로 길잡이가 된 적이 있었던가. 그대 아픈 가슴으로 흐르는 눈물 닦아주고, 사랑없는 세상, 메마른 땅에 작은 풀씨 한 알 심었던가.
북극성이 얼마나 먼 거리에 있는지, 그대 기막힌 사랑처럼 영원히 도달할 수 없는 별자리라 해도, 더 이상 애태우지 않을테다. 거리 보다 방향이 문제다. 그대 언 가슴 덮힐 풀잎 같은 사랑 품으면, 길을 잃어도 찾아올 수 있다.
이기희 / 윈드화랑 대표·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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