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 우리말] 식은땀을 흘리다
보통 땀은 더울 때나 일을 열심히 했을 때 나옵니다. 체온을 조절하는 기능을 하는 아주 귀한 액체죠. 몸에서 나오는 물이기에 몸 물이라고 했을 수도 있을 것 같은데 '땀' 이라는 새로운 어휘를 만들었습니다. 눈물이나 콧물이라는 단어와 비교해 보면 특이한 어휘라고 할 수 있습니다. 땀은 눈물이나 콧물과는 좀 다르게 본 것 같습니다. 몸에서 나오지만 색깔이 달라지면 피라고 했습니다. 어쩌면 '피'나 '땀'이 같은 것일 수도 있겠습니다. 그렇게 생각하니 땀의 느낌이 더 강하게 오네요.그런데 땀 중에 식은땀이 있어서 흥미롭습니다. 식은땀이라는 말은 땀이 차갑다는 의미일 겁니다. 운동이나 노동의 결과가 아니기에 식었다고 했을 겁니다. 필요 없는 땀이라는 의미일 수도 있겠네요. 사투리에서는 식은땀을 '헛땀'이라고도 합니다. 헛되게 흘린 땀이라는 뜻이겠네요.
식은땀을 흘리고 나면 기분도 그다지 좋지 않습니다. 그런데 식은땀을 그냥 헛된 것으로 생각하기에는 역할이 크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냥 식은땀이 날 리 없겠죠. 극도의 긴장 속에서 나는 땀이 무가치하다고 할 수 있을까요?
예상치 않은 문제는 언제나 두려움을 줍니다. 숨기고 싶었던 나의 잘못이 드러날 때도 참을 수 없는 부끄러움에 등골이 오싹해 지는 두려움을 느낍니다. 내 두려움을 식혀주는 게 식은땀이 아닐까요? 끝 간 데 모르고 뻗쳐있는 내 괴로움을 땀으로 식혀주고 있는 겁니다. 어쩌면 노동으로 흘리는 땀보다 고마운 것일 수 있습니다. 노동으로 흘리는 땀이 육체적 고통을 닦아주는 것이라면, 식은땀은 내 심리적 고통을 어루만지는 땀이기 때문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땀은 눈물과도 닮아 있습니다. 몸이 힘들고 고통스러울 때도 눈물이 흐르지만, 마음이 너무 아플 때도 눈물이 흐릅니다. 견딜 수 없는 고통이 눈물이 되어 흐릅니다. 종종은 육체적 고통보다 마음의 고통이 견딜 수 없습니다. 한없이 눈물을 흘려본 사람이면 마음의 괴로움을 이해할 겁니다. 눈물은 내 몸 속 모든 아픔을 훑고 지나온 액체입니다.
식은땀은 마음이 아파서 흘리는 눈물과 닮았습니다. 두려움과 부끄러움, 답답함은 내 몸을 견딜 수 없게 합니다. 실컷 눈물이라도 흘리고 싶지만 언제부터인가 눈물을 잘 나오지 않습니다. 어쩌면 눈물은 이제 마음으로 조절이 가능한 현상인 듯도 싶습니다. 참으면 참을 수 있고, 흘리려면 흘릴 수도 있습니다. 연기가 가능하다고나 할까요? 우리는 보통 눈물을 흘리지 않는 연기에 익숙해져 있는 것 같습니다. 슬퍼도 아파도 참아야 하는 것을 배운 셈이죠. 그 점이 더 서글픕니다.
하지만 땀은 조절이 불가능합니다. 흘리지 않으려고 애쓸 수도 없습니다. 특히 식은땀은 깨어있을 때뿐만 아니라 잠잘 때도 흘러내립니다. 온몸이 젖어있기도 합니다. 자다가 깨어나면 무슨 일이 있었는지 기억이 안 나지만 괴로울 때가 있습니다. 마음이 힘들면 몸도 약해집니다. 그래서 더 식은땀이 났을 겁니다. 자면서 흘리는 식은땀은 내 속의 무수한 괴로움의 결과이고, 힘든 순간과 힘든 하루의 결과일 겁니다. 저는 자고 일어났을 때 가끔 식은땀에 젖어있을 때가 있습니다. 그 때마다 스스로를 위로합니다. 그러고는 두려움에서 나를 지켜준 식은땀에 감사합니다. 식은땀은 헛땀이 아니라 고마운 땀입니다.
조현용 / 경희대학교 교수
with the Korea JoongAng Daily
To write comments, please log in to one of the accounts.
Standards Board Policy (0/250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