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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뜨락에서] '나이 먹다'와 '나이 든다'

우리는 나이를 먹는다고 한다. 왜 그럴까. 세상에 나서 살아온 햇수를 계산하는 방법이다. 나이의 단위 '살'은 설에서 유래했고 옛날엔 몇 살을 몇 설이라고 했다. 한 '설'을 지나야 한 살을 먹었고 한국나이는 생일이 아니라 설날을 기준으로 센다.

나이의 어원은 '낳'이다. 낳다의 어간이다. 여기에 주격 조사 '이'가 붙어 '나히'가 됐고 ㅎ이 탈락해 '나이'가 됐다. 나이가 많은 사람보다는 나이 많은 사람, 나이가 든 사람 보다 나이든 사람이라는 문장이 더 자연스러운 것도 이 때문이다. 그러고 보니 나를 낳은 것은 어머니이다. 나는 어머니 뱃속에서 나온 뒤부터 나이를 먹는다. 나이를 먹는다는 것은 스스로 성장한다는 뜻이다. 나이를 먹는다고 할 때는 내가 주인이다.

나이가 든다는 표현도 있다. 이럴 때는 나이가 주인이다. 나이를 목적어로 삼느냐와 주어로 삼느냐에 따라 시간의 주체가 달라진다. 나이가 든다는 말은 노화와 관련이 있다. 나이 들수록 세월이 빨라진다는 얘기도 마찬가지다. 1년의 시간을 10세 아이는 생의 10분의1로, 50세 어른은 50분의1로 느끼기 때문에 나이 들수록 시간이 빨리 흐른다고 자각하는 것이다.

포트리에 있는 말콤 노인아파트에서 스튜디오 아파트 입주자 모집 광고가 있어 갔었다. 바로 입주 가능한 아파트가 아니고 신청자들의 접수를 받은 후 로토를 통해 선택한 후 그 사람들이 기다리는 순서에 따라 입주하는 것이다. 선택이 되었다 하더라도 몇 년을 기다려야 되는지 아무도 모른다. 450세대 아파트 중에서 퇴거하는 사람이 있을 경우 해당되는 것이다. 그런데 입주자들이 들어왔다 나갔다 하는 사람들을 보니 아직도 몇 십 년은 기거할 것 같았다. 지금 선택되어도 나 사는 동안은 차지가 어려울 것 같이 보였다. 항상 젊었지 이렇게 나이 먹은 줄 느끼지 못 하고 살았다. 젊었을 때 집 장만이 쉽지 않았다는 것도 나이 먹은 서러움도 뭉클했다.

사람이 늙으면 현실의 시간과 기억 속의 시간이 달리 느껴진다. 우리가 한 살씩 나이를 먹듯이 나무는 나이테를 한 겹씩 늘린다. 세계에서 가장 나이가 많은 나무는 캘리포니아의 화이트 산에 있는 브리슬콘 파인으로 5000살이 넘는다고 한다. 성서에서 969세까지 산 노아의 할아버지 이름을 따 므두셀라 나무로도 불린다. 이 나무는 척박한 고산에서 제한된 양분으로 살아간다. 나이테도 촘촘해서 100년에 3cm 굵어질 정도로 더디 자란다. 이렇게 오래 사는 나무는 어려운 환경에 순응하고 시련을 극복하면서 자란다. 나이 들어 속이 비어가는 동안에도 봄마다 어김없이 새순을 밀어 올린다.

나무가 세월의 흔적을 몸에 새기듯 사람도 살아온 흔적을 얼굴에 드러낸다. 잘 살아온 사람의 표정은 여유롭고 온화하다. 오래 쌓은 연륜과 삶에서 체득한 지혜 덕분이다. 철학자 김형석 교수는 60세가 되면 비로소 자신에게 집중할 수 있는 시기이므로 이때부터 75세까지가 공부하기에 가장 좋은 때라고 했다. 불멸의 업적을 남긴 사람 가운데 60대가 35%, 70대가 23%, 80대가 6%로 60대 이상이 64%나 된다고 한다.

노마지지(老馬之智)라는 말이 있다. 젊은 말은 빠르지만 늙은 말은 지름길을 안다. 우리 삶의 최종 성적표는 나이에 따라 얼마나 내면이 성숙했는지 어떤 나이테를 자기 몸에 새겼는지에 따라 결정되는 것 같다.


양주희 /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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