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인 보다 더 한국인' 선종한 양 노엘 신부
한국말·국수 즐겨…전태일 사건 연루 추방 위기 맞기도
아일랜드에서 태어나 25세에 사제 서품을 받고 다음해 한국으로 파송돼 노동자 사목에 헌신했다. 전태일 분신 사건 등에 연루돼 추방위기를 맞기도 했다. 84년 밸리 한인성당 주임신부로 부임한 뒤로는 선종 때까지 25년간 한인 사목에 모든 것을 바쳤다.
이봉환 천주교 성 마리아 엘리자벳 한인성당 사목회장은 "한국 소식에 늘 귀기울이다 어려운 일이 있으면 꼭 기도에 넣으라고 하셨다"고 회상했다.
양 신부는 언제 어디서나 약자와 가난한 사람 편이었다. 노요셉 작은예수회 장애시설 운영이사는 "장애인 회의에 매월 자기 돈을 수백불 기증하셨다. 모두가 오래 오래 기억할 것"이라고 말했다.
25년간 양 신부를 보필한 나 아우실리아 씨는 "신부님은 자기 소유를 만들지 않았다"고 울먹였다. "치과에 안 가셔서 이가 몇 개 없으셨어요. 신자들 집을 일일이 돌아다니며 살림 살피느라 개스비만 있으면 됐고요. 나머진 다 주셨어요."
이봉환 사목회장은 "여유있는 사람들은 인사도 받지 않고 힘들고 어려운 사람만 찾아 다니셨다"고 말했다. "신세 지지 않으려 신자들 집에 가도 물 한 컵도 안하셨어요. 1년간 모신 저도 딱 한 번 함께 식사했지만 그나마 식사비는 신부님이 내셨어요. 신자들이 더러 선물이나 옷 등 드리면 다음 날로 다른 사람 주시고요. 삶 자체가 작은 예수라고 느껴질 정도였어요."
내달 22일은 양 신부가 사제 서품 45주년을 맞는 날이다. 12월 26일은 칠순이 되는 날이다. 사제 서품 이후 생일 파티를 한 번도 안했던 양 신부는 처음으로 생일 파티를 하려 했지만 한 달여를 앞두고 선종했다.
18년간 한 번도 고향에 가지 않았고 단 하루도 휴가를 가지 않고 청빈과 헌신의 삶을 살았던 양 신부는 나 씨에게 유언을 남겼다. "내가 천당에 들어갈지 못 들어갈지 모르니까 비문에 '회개한 자로다'라고 써달라"고.
안유회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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