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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 불황을 메친다] I.L.Creations 최정범 대표

'성공->실패->재기'…이젠 사회봉사 열중
신앙으로 재기…16개 정부기관 식당 운영

‘사업실패, 그리고 놀라운 재기. 인생의 밑바닥에서 주 7일, 하루 17시간씩 일에 몰두하면서 쌓아올린 성공 신화의 주인공.’

워싱턴 포스트가 얼마전 한인 사업가 최정범(Steve Choi·46)씨의 사연을 보도하며 붙인 표현들이다. 포스트는 실패를 경험한 최씨가 굳은 신앙과 가족들의 성원 속에서 다시 일어날 수 있었다며 그의 스토리는 지금같은 경제 위기 상황에서 인간이 더욱 큰 힘을 발휘할 수 있음을 잘 보여주는 것이라고 소개했다.

지난 1974년 초등학교 6학년 때 부모를 따라 미국으로 이민 온 최씨는 이민 초기만 해도 비교적 넉넉한 가정 환경 속에서 미국생활을 시작했다.

하지만 77년 어머니가 권총강도를 당했고 79년엔 뉴욕 맨해튼에서 부모가 운영하던 세탁소에 불이 나는등 악재가 잇따르면서 그의 인생 괘도는 수정될 수 밖에 없었다. 예술고등학교에서 바이올린을 전공하던 최씨는 대학 진학의 꿈을 잠시 접고 가족을 위해 아침 10시부터 밤 10시까지 매일 12시간을 꼬박 일했다.

그러던 중 부모는 워싱턴 지역으로 이주, 워싱턴DC에 작은 요거트바를 열었다. 대학(메릴랜드대-볼티모어)에 다니던 최씨도 부모의 사업을 도왔다. 그는 당시만 해도 워싱턴 지역에 없던 샐러드 바를 설치, 음식을 무게로 팔았다.

워싱턴 지역의 첫번째 샐러드바가 히트를 치면서 최씨는 5~6곳에 분점을 차리고 제법 많은 돈을 벌었다. 그러면서 한국에 돌아가 정치를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90년대 중반 한국에 간 최씨는 친구들과 함께 공연 기획사를 차리고 어린이 합창단을 조직했다. 합창단은 한국과 미국을 오가며 공연을 했다.

하지만 곧 시련이 닥쳤다. IMF 금융 위기가 발생하면서 모든 걸 잃었다. 자살을 생각하며 한강다리를 찾은 것만도 수차례. 그러나 아내와 어린 아이들 생각에 차마 실행에 옮기지는 못했다. 종합병원 화장실에 붙은 장기 매매 홍보스티커에 적힌 전화번호를 수도 없이 수첩에 옮겨 적으며 하루 하루를 살았다.

최씨가 기독교 신앙에 몰두하게 된 것은 바로 그 시절이었다. 스리랑카로 선교여행을 떠난 그는 통역을 하며 자신에게 주어진 재능을 발견하게 된다.

최씨는 “그곳에서 한인들과 미 주류사회를 연결하는 ‘미들맨’이 돼야 겠다는 마음을 먹었다”며 “돈과 명예보다 우리의 아이들이 미국에서 당당하게 살아갈 수 있도록 뭔가 해야 겠다고 다짐했다”고 회상한다.  

긍정적 사고, 굳은 신앙, 가족들의 성원에 힘입은 최씨는 과거 샐러드바 운영 경험을 살려 I.L.Creations, INC 회사를 차렸다. 1999년 해안경비대 구내식당 운영권을 시작으로 백악관과 국회도서관, 법무부, 마약청, 보건복지부 등 16곳의 정부기관 카페테리아 운영권을 잇따라 따냈다. 지금은 종업원 300명을 두고 연 2000만달러의 매출을 올리고 있다.

최씨는 사업과 함께 사회활동에도 열정을 보이고 있다. 현재 워싱턴 정신대 대책위원회 위원장과 워싱턴 독도수호대책위원회 위원장직을 맡고 있다.

최씨는 “사람들은 돈을 벌고 나면 명예를 찾고 나도 그런 부류일 것이라고 말하지만 그렇지 않다”며 “독립운동을 하셨던 외할아버지(고 홍순영씨)로부터 일제의 만행을 많이 들어 정신대 문제와 독도문제에 깊이 관여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최씨는, 지금도 소말리아 등 제3국에선 어린 소녀들이 성폭행을 당하고 성노리개로 전락하는 등 위안부 문제는 한일간의 문제가 아닌 전세계 여성들의 인권과 관련된 중대한 문제라고 강조했다.

최씨는 미국에 사는 한인들이 타인종과의 협조와 화합을 위해서도 노력해야 한다고 역설한다. 특히 한인들이 흑인들을 깔보는 경향이 있지만 우리들이 미국에서 자유롭게 살 수 있는 것도 200년 넘게 흑인들이 당한 고통이 있었기에 가능하다는 주장이다.

“우리가 할 일은 역사를 바로 잡는 것입니다. 우리의 이민 1.5세나 2세, 3세들이 미국에서 당당히 살기 위해선 동해바다 표기 문제를 해결하고 독도가 왜 우리 땅인지를 밝혀야 합니다. 정신대 문제와 관련해서도 일본정부의 사과를 받아내야 합니다. 한국에서는 일본 눈치를 보느라 제대로 하기 힘듭니다. 상대적으로 자유로운 우리 한인동포들이 하나로 뭉친다면 어떠한 문제도 해결할 수 있을 겁니다.”

워싱턴DC= 홍알벗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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