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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인 함장과 이지스함 타고 태평양 가다-3] 밤낮이 따로 없다

매순간 '파이널 오더(final order)'

14일 오전 1시 30분. 함장실의 전화벨이 시끄럽게 울린다.

함내 기관실로부터 온 전화다. 개스터빈 한 축을 감싸고 있는 베어링에서 회색 이물질이 발견됐다는 보고다. 이물질의 판명 결과에 따라서 기동훈련 자체가 중단될 수도 있는 만큼 중요한 사안이다.

최 희동 함장이 잠에서 깨여 뒤척이고 있는 사이 오전 4시 다시 벨이 울린다. 판명결과 이물질에서 쇳가루가 검출됐다는 내용이다. 즉시 배 뒷편에 있는 기관조종실을 방문한 최 함장은 기관장으로부터 상황 브리핑을 들었다. 장기 출동을 앞둔 채피함의 일정을 고려해 볼 때 시급히 수리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기관장이 건의한다.

오전 9시. 전대장에게 보고를 앞두고 최 함장은 전 장교들을 소집해 현재 상황에 대해 각기 의견을 묻는다. 함장은 별도의 당직 시간이 없다. 다른 말로 하자면 24시간 함내에서 일어난 모든 일에 대해 수시로 보고를 받고 결정해야 하는 게 임무다.

12억 달러짜리 이지스함정에 대한 모든 책임이 함장에게 있기 때문이다. 이처럼 작전부터 항해 보급 인사 업무를 챙기다 보면 신경이 곤두서기 일쑤이지만 최 함장은 언제나 친근한 '큰 형님' 스타일이다.

최 함장은 질책이나 비판으로 권위를 과시하기 보다는 차근차근 알려주고 인간적으로 다가가는 스타일이다. 함내를 도는 동안 최 함장은 경례를 붙이는 하사관 수병들의 어깨를 툭툭치며 개인사를 묻는다. 함장이라는 권위가 무색하리만큼 친근하면서도 다정하다. 장교나 수병 할 것 없이 최 함장의 별명을 '나이스 가이(nice guy)'라고 부르는 이유도 이 때문이다.

사실 최 함장의 권위는 엘리트 코스를 밟아온 전문성과 수많은 경험에 녹아있다.

1990년 해군 소위로 임관한 최희동 함장은 19년간 바다에서 보냈다. 어떤 비상 상황도 이미 겪어본 베테랑 장교이다.

"꾸짖기 보다 도와주고 타이르는 멘토십을 강조하죠. 또 이 배의 주인은 너라는 오너십(ownership)을 강조합니다." 자신이 첫 한인 함장이 될 수 있었던 것은 그동안 모시던 함장과 부함장의 멘토 덕분이라고 공을 돌린다.

중학교 3학년에 미국에 온 최 함장의 한국어 실력은 놀랄만큼 완벽하다. 게다가 한국 해군 용어도 척척 꿰고 있어 한국 해군 함장인지 미 해군 함장인지 구분이 안 갈 정도이다.

밤이 되어 약간 시장기를 느낄 즈음 파란눈의 사관실 수병이 간식이라며 '너구리'를 끓여 온다. 하와이 근해 미 해군 함정에서 함장과 함께 한국 라면을 먹고 있다는 사실이 좀처럼 믿겨지지 않는다.

"아직 사관실 수병이 김치 담글 줄 몰라요. 배울 거라고 하는 데 언제쯤 될지 모르겠어요. 하하." 출항 때는 신라면과 햇반은 꼭 챙겨간다고 한다.

아버지가 목사인 최 함장이 추구하는 리더십은 '서번트 리더십(servant leadership)'이다.

"나라를 지키려고 자원 입대한 장교 하사관 수병들이 제 역할을 할 수 있도록 섬기는 것이 제 역할이죠. 또 납세자들이 맡겨준 값비싼 국가 재산을 손상 없이 다루는 것도 제 임무이기도 하지요."

24시간을 쪼개 바다 생활하다 보니 혼기를 놓쳤다. 집에선 결혼 하라고 수년째 성화다.

이번 출동은 중령 함장으로서는 마지막 항해이다. 내년이면 대령 진급 여부가 결정된다. 대령 함장으로 발령되지 않으면 육상 보직을 받게 된다. 구축함 함장을 거친 중령은 대령 진급이 거의 확실하다. 다만 제독으로 가는 대령 함장이 되느냐가 관건이 된다.

"사실 제독이 될 지는 누구라도 장담하기 어렵죠. 3000명의 대령 가운데 10명만이 별을 달게 됩니다." 300대 1이다. 작전도 꿰고 있어야 하지만 국방부서 재정을 확보하는 능력도 심사 대상의 주요 부분이다.

함장실에 걸려 있는 액자에는 '씨 뿌려 거두고'라는 구절이 적힌 액자가 걸려있다. 어머니로부터 받은 소중한 액자이다.

"사실 제가 하는 행동이나 이미지가 한인 함장에 대한 바로미터이죠. 전문성과 기량을 쌓는 것은 기본이고 가능한 모든 사람에게 성실하고 친근하게 대하려고 노력하죠. 그래야 다음에 한인 수병이나 장교를 만나더라도 좋은 이미지로 대하지 않겠어요."

기자들에게 그렇게 환대했던 함내 분위기가 이해되는 순간이었다.

하와이 진주만=글 최상태 기자, 사진 백종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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