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며 살아가며]‘배은망덕’ 유감
윤효연/글렌뷰
‘배은망덕한 놈’이라고 욕을 하게 됩니다.
살아가면서 부모님의 은혜는 물론이고 친척 또는 친구, 그리고 전혀 모르는 사람으로부터도 알게 모르게 많은 은혜를 받고 살게 됩니다.
잘 아는 미국 대학 교수 한 분이 한국에 잠깐 다니러 와서 마침 제가 며칠 서울 시내 여러 곳을 안내할 기회가 있었는데, 하루는 시청 앞 고층건물에 있는 대한석유공사에 만날 사람이 있다고 하여 모시고 갔습니다.
그 분은 미국 미네소타 대학에서 같이 몇년 동안 공부했으며 공학박사 학위를 받고 귀국해 석유공사 이사로 재직 중이었고, 내가 안내하는 분도 같은 대학에서 경제학 박사 학위를 받고 미국 어느 주립대학에서 교수로 있는데 두 분은 오랫만의 해후라고 무척 반가워 할 거라고 했습니다.
두 분이 만나 반갑게 인사하고 바로 하시는 그 분 말씀이 “마침 회의가 있어 미안하다”며 나가 차도 한 잔 대접없이 우리는 그냥 그 이사님 방을 나올 수 밖에 없었습니다.
그 때 건물 계단을 내려오며 하시는 말씀이 “다른 친구들은 몰라도 저 친구는 나한테 저러면 안되는데…”라고 혼자말 비슷하게 하시길래 그사연을 물으니 자기가 먼저 그 대학에 와서 고학으로 고생하며 하숙생활을 하며 살고 있을 때 그 친구도 마침 유학을 왔는데 하루이틀도 아니고 몇년간을 찾아 와서는 공짜로 밥을 얻어 먹은 것은 물론이고 차까지 필요할 때마다 기름값 한 번 내지 않고 얻어 타고 이것 저것 참으로 많은 신세를 졌다는 것입니다.
내가 고등학교 다닐 때 학교는 서울에 있고 집은 인천에 있어 주말이면 가끔 집에 가곤 했는데 한 번은 서울역에 가서 버스를 타려고 보니 수중에 버스값이 없어 서 있는데 마침 같은 학교 같은 학년 학생이 지나가길래 신입생 시절이라 얼굴도 처음 보지만 거두 절미하고 돈좀 꾸어달래서 무사히 집에 다녀 오고 며칠 후 학교에서 만나 돈을 갚으려니 괜찮다고 돈을 안받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그 후로 둘은 가까운 친구가 됐습니다. 그 친구는 육사를 들어 갔고 저는 그냥 대학에 다녔지요. 육사에서는 주말에는 기숙사가 문을 닫아 그 친구는 오랫동안 토요일 아침이면 우리집에 왔다가 일요일 저녁이면 돌아가곤 했는데 저의 어머니는 저한테 하시는 대로 그 친구 한테도 잘해 주셨습니다.
몇년 뒤 고급장교가 돼 월남 파병갔다 돌아올 때는 한국서 구하기 힘든 브리태니커 백과사전ㆍ전집 등 많은 선물도 사다 주었지요. 지금도 여기서는 구하기 어려운 책을 보내주고 제가 한국에 가면 꼭 저는 물론 저의 어머니도 찾아줍니다.
이렇게 사람이 살아 오면서 어렵고 힘들었을 때 남에게 받은 은혜를 기억하고 후일 보답하는 경우가 더 많아 이런 것이 사람이 사는 바른 도리고 흔히 말하는 give & take 기도 합니다만 그보다 더더욱 중요한 사실이 있습니다.
먼저 이야기한 미국 교수님이 그 때 저한테 하신 말씀인데 “언제든지 누구를 도와주든가 좋은 일을 해주고 나면 바로 잊어 버리고, 절대로 후일 은혜를 되돌려 받기를 기대하지 마라. 그리해야 누구 누구는 예전에 내가 어찌 어찌 해주었는데 아직도 은혜를 갚지 않는 배은 망덕한 놈이라는 등의 부정적이고 분한 생각을 안하게 되나, 반대로 이같은 생각들을 자주 하게 되면 자기 건강에 해로운 것은 물론이고 나쁜 뇌세포가 자라는 원인이 된다”는 말씀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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