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이제 나이가 들어간다는 증거 중에 하나는 여러가지 염려와 걱정이 생기기 시작 할 때가 아닌가 싶다. 부모님들께서 조금씩 아프시기 시작하고 주변의 친구들의 부모님들이 병환으로 고생하시거나 돌아가시는 것을 보고 조금씩 걱정이 생기기 시작한다.
내가 치료하는 환자중에 나이가 지긋하신 분이 계신다. 너무나 신사이시고 조금 기다리시더라도 절대 부르기 전까지는 짜증내는 법이 없으신 분이시다. 그 분은 자식들을 다 키워 시집장가 보내고 편안한 삶을 보내고 계셔서 전혀 걱정이 없을 것같아 보이는 그 분도 나름대로의 걱정이 있으셨다.
"닥터 김 난 요즘에 걱정이 되는 것이 있어서 담배를 피우면서 그 스트레스를 풀어요. 아이들이 조금만 더 여유있게 살면 좋겠는데 힘들게 사는 것을 보니까 마음이 안좋아서 말이에요.
내가 뭘 도와 주지도 못하고 말이야"하면서 이야기를 하셨다. 그렇다. 우리가 이 세상을 살아가는 동안에는 어느 나이나 어떤 상황에 있든지 걱정과 염려를 떠날 수는 없는 것 같다.
며칠 전 큰 아이 프리스쿨에서 예찬이가 다른 아이들보다 조금 잘 하니까 하나 높은 반으로 올라가는 것이 어떻겠냐고 원장 선생님이 말씀하셨다. 별 것도 아닌데 그 얘기를 듣고 나서 그냥 지금 반에 있어야 하나 아님 올라가야 하나 고민을 하게 되었다.
비록 올해 킨더가든을 가지는 않지만 먼저 올려 보내서 큰애들 사이에서 조금 더 빨리 습득하게 해야 하나? 아님 올라가서 잘 적응하지 못하면 어쩌나? 지금 있는 반에서 같은 학년이 되는 애들과 같이 잘 지내고 있으니까 그냥 놔두어야 하나? 등등 말이다. 별 것도 아닌 문제인 것 같은데 저녁부터 마음이 무거워서 와이프와 상의를 하면서 걱정이 되었다.
결국에는 그냥 편하게 지금 있는 반에서 아이들과 같이 올라가는 것이 좋겠다는 결론을 내렸지만 그 다음날 얘기하기 전까지는 마음 한구석에는 염려가 자리잡고 있었다. 한편으로는 '야 학교도 가기 전에 이런 일로 걱정이 되면 정말 큰일이 나거나 학교 가고 나면 어쩔려고 그러냐' 하고 을가 참 한심하게 느껴졌다.
애굽에서 수많은 기적들을 경험하고 홍해를 건넜으며 40여년 동안 물과 음식이 없는 광야에서 200만명을 먹이신 하나님을 너무나 쉽게 잊고 조금을 참지 못해서 불평을 하고 원망을 하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옛날에는 비난만 했는데 이제는 나의 모습을 거기서 찾게 된다.
병자들을 고치는 기적들을 옆에서 보았으면서도 풍랑이 오자 두려워서 옆에 계신 예수님을 두고도 호들갑을 떨며 "우리가 죽게 되었는데 별 걱정이 안되시나보죠?" 하며 원망했던 제자들이 바로 나임을 알게 된다.
나이가 들면 들수록 나의 마음을 뒤흔드는 걱정과 염려가 있는 이 세상에서 어떻게 하면 정말 능력있는 크리스천으로서 살수 있을까? 모든 것을 송두리째 삼키는 무시무시한 태풍이지만 그 안에 태풍의 눈은 고요하듯이 어떻게 하면 고요한 심령을 유지하며 삶을 살 수 있을까?
우리는 세상의 걱정과 염려들이 우리의 생각과 마음에 들어오는 것은 그냥 놔두고 묵상하며 그것들을 곱씹는 경우가 허다하다.
하지만 우리가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우리의 삶의 부분 부분을 만지시며 어려운 상황에서 손을 내밀어 주신 우리의 기도에 놀랍게 응답해 주신 하나님의 은혜와 능력은 얼마나 많은 경우에 잊고 살 때가 많은지 모른다.
이게 뒤바꾸면 참 좋을 텐데 말이다. 염려는 내 생각에 못 들어오게 조금이라도 망각하고 살고 하나님의 은혜는 언제나 기억하고 살면 좋겠다. 'I need thee. Oh I need thee. Every hour I need thee' 이런 고백이 내 삶이 되길.
# 090203_종교칼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