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자가 한때 사목하던 지역은 대부분 히스패닉인들이 거주하는 지역이라 수시로 그들을 만날 기회가 있었고 자주 대하다 보니 가까운 이웃이 되어 지내는 이들도 있었다. 스페인어가 이딸리아어와 비슷하여 떠듬떠듬 대화도 나누게 되어 재미있기도 했다.
어느 날은 커피를 끓여 병에 가득 담아 길 건너 영감님이 늘 앉아있던 평상에 가서 석 잔을 만들어 부인과 함께 나누어 마시면서 한참 시간을 보낸 다음부터는 더 친해지는 것 같았고 아침이나 저녁마다 만나면서 영어나 스페인어로 인사를 나누는 사이가 되어 아예 친구가 된 듯했다.
정이 많은 사람들이라 토요일이면 주일 성당 제단에 꽂으라고 정원에서 가꾸던 아름다운 꽃을 꺾어 오기도 했다.
걸어서 10분 정도 걸리는 본당으로 가는 길에서 자주 이들을 만나게 되었는데 "hola"라고 먼저 인사를 하면 거의 천주교 신자인지라 내 복장을 보고는 친근감을 보이곤 했다.
그들 중에는 젊은 부인들이 종종 눈에 띄었는데 머리모양이 신기했다. 어릴 때 자주 본 것으로 우리나라에서는 시집 안 간 처녀들이 머리를 댕기로 땋곤 했는데 거기서는 시집 간 젊은 여성들이나 아가씨들이 머리를 땋은 것을 볼 수 있었다. 과달루뻬회 신부님이 멕시코인들 중 상당수가 태어날 때 몽골 반점을 띄고 있다고 하니 분명 인디안들 후손들이다.
한 때 미국에서는 아메리칸 인디언들이 베링 해협을 통해 시베리아로 건너갔을 것이라는 아메리카 중심의 가설이 있었는데 10여년 전부터 이 가설은 사라지고 이제는 아시아에서 이곳으로 건너왔다는 학설이 정설이 되었다. 역사를 왜곡하여 정치적 수단으로 이용하면 진실과는 거리가 멀어진다.
아즈텍이나 마야 문명의 조상이 시베리아인들이었다고 하니 이들에게 더욱 친근감이 갔다. 그들의 언어에서 우리 민족의 고어와 유사한 단어들을 찾아내는 교수들도 있다고 하니 반가운 일이다.
이와 연관된 글들을 좀 읽었는데 그 중 하나를 소개하면 "네바다"라는 주는 바다가 넷이라는 뜻이라는데 바다가 아니라 실제로 큰 호수가 넷이 있다고 하는 주라고 하니 옛날에 우리 선조들이 큰 바다나 호수를 구별하지 못하여 호수를 바다로 불렀는지도 모르겠다.
인류의 문화는 가정에서 가정으로 전수된다. 말 음식 의복 예절 등 모든 것이 가정에서 부모로부터 자녀로 그리고 손자 손녀들에게 전수되니 가정에서 일어나는 것치고 문화 아닌 것은 아무것도 없다.
여성들이 머리를 땋는 것도 문화다. 이들을 보면서 이웃에 살았기 때문에 이웃사촌만이 아니라 우리와 같은 시베리아인들의 후손이니 형질적으로나 문화적으로 같은 민족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단지 그들의 고유 언어가 침략자들의 강압에 의해 모두 사라지고 우리와 다른 언어를 사용하게 되어 소통에 문제가 있으나 조상의 반은 같은 선조이니 더욱 친근감이 갔다. 매일 딸기밭이나 농장에서 일을 하는 이들 그래도 조금의 여유만 있으면 먹고 마시며 노래하고 인생을 여유 있게 살아가는 이들!
이들도 자본주의의 영향을 받아 황금만능 사상에 물들어 가고 있지만 그래도 여유롭게 보였다.
"하늘의 새들을 눈여겨보아라. 그것들은 씨를 뿌리지도 않고 거두지도 않을 뿐 아니라 곳간에 모아들이지도 않는다."(마태오 626)라고 하신 예수님의 말씀을 실천하려는 듯이 낙천적으로 살아가는 이들! 조금의 여유도 없이 일만 하고 모으고 쌓아두면서 인생을 빡빡하게 살아가는 이들에게는 인생의 다른 면을 보여주는 참 지혜로운 사람들로 보였다.
# 090203_종교칼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