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달 한국에 잠시 가는 길에 한 노인을 모시고 가야만 했다. 공항에 나갔더니 할머니는 발을 동동 구르고 있었다.
강아지 두 마리를 데리고 가야하는데 케이지가 너무 작아서 규정상 비행기에 태울 수 없다는 직원의 말을 듣고 나서였다. 일 년 전에도 똑같은 것으로 미국에 왔었는데 그 사이에 자랐는가보다. 할머니도 그동안 많이 달라지셨다. 오실 때만해도 강아지가 든 케이지를 손으로 들고 나오셨는데 이제는 휠체어를 타야만 했다.
할머니는 독거노인이시다. 조카들을 어렸을 때부터 키워주신 인연으로 동생가족에게는 친할머니 이상이다. 동생가족이 미국에 오면서 같이 오셨다. 그 이유는 가족이란 끈도 있었지만 한편으로는 수십년 전에 미국으로 간 딸을 혹시나 만날 수 있을까 하는 실낱같은 희망을 가지고 왔었다.
할머니는 6.25 사변 때 이북에서 피난 나와 가족을 잃는 통에 숱한 고생을 하셨다. 그래도 시장에서 부모를 잃은 고아를 데려다가 키운 딸이 그분의 유일한 위안이었다. 딸은 공부도 잘했다.
일류대학에 들어간 딸은 그분에게는 소망이고 자랑이었다. 그것도 잠시 대학졸업과 함께 말도 없이 미국으로 떠난 딸을 오매불망 기다리가다가 이곳에 오면 만날 수 있을 거라는 기대감을 가지고 왔었다.
그런데 지난 일 년은 전보다 더 어려운 세월이었다. 모든 것이 다 벽이었다. 말도 안통하고 자유롭게 왕래도 못하고 거기에다가 지병까지 심해졌는데도 병원에 가기도 힘들었고 허리는 서서 걷지도 못할 정도가 되었다. 유일한 낙이 한국에서 데리고 온 강아지 두 마리였다.
심방을 가서 "할머니! 할머니는 예수님을 모시고 가시고 강아지는 다른 주인을 찾아 주십시다"는 말이 입 밖까지 나올 뻔했지만 강아지를 자신의 생명처럼 여기는 마음을 보면서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다. 예방주사를 맞히고 케이지에 넣어 공항에 나갔는데 비행기에 태울 수 없다는 것이다.
사정이 딱한 것을 인식한 직원이 어렵게 허락을 해주었다. 휠체어에 앉아 강아지가 든 케이지를 무릎위에 올려놓고는 "목사님 난 미국에 다시는 안 올래요"하시면서 먼 허공을 쳐다보셨다.
할머니는 한국에도 갈 곳이 없으셨다. 고향에 계신 어머니가 계실 곳을 마련해 놓으셨다. 이른 새벽에 서울에 내리니 기온이 영하 8도였다. 공항에서 시골로 가는 리무진 버스를 탔다.
이번에는 버스에서 문제가 생겼다. 비행기만 규정이 있는게 아니라 버스도 규정이 있었다. 규정상 동물은 케이지 안에 있어도 태울 수가 없다는 것이다. 버스 하단인 짐 싣는 곳에 넣으라는 것이다. 기사에게 사정을 했다. "살아있는 생명"임을 강조했다.
차는 시간이 없다고 그냥 출발을 했다. 나도 멍하니 창밖을 바라보고 있었다. 조국이 너무나 차갑게만 느껴졌다. 차밑에서 떨며 얼어 죽어가고 있을 강아지들을 생각하니 마음이 쓰렸다.
여기까지 와서 이렇게 허무하게 죽는 경우도 있구나 죽음이라는 것이 이런 것이구나 생각하니 마치 인생의 비참함을 보는 것 같았다. 그 때 갑자기 십자가가 떠올랐다. 십자가가 예수님이 지켜야만 하는 규정이었다고 생각이 들었다.
이렇게 허무하고 비참한 나같은 사람을 위해서 대신 죽으시려고 그 험한 십자가를 지신 것이 주님의 길이셨다고 생각하자 내 가슴이 뜨거워졌다. 십자가를 지신 주님의 은혜로 뜨거워졌다. 차가 김포공항에 잠시 섰다. 앞에서 기사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할머니 강아지 어떻게 하실 거예요?"
# 090203_종교칼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