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과학자의 세상보기] 다윈과 링컨의 생일
지난 12일에 아이가 12살이 되었다. 한쪽팔에 가뿐히 안고 머리도 감겨주고 등도 토닥이고 해주던 게 엊그제일 같은데 슬그머니 키가 내 어깨높이를 넘어섰다. 앞으로 키가 본격적으로 클 모양인지 요즘들어 굉장히 먹어댄다. 아이가 좋아하는 연어회 초밥을 큰 접시로 두접시나 해놓고 다른 찬을 들고 와보니 자기 앞의 접시는 벌써 깨끗이 비웠고 두번째 접시를 해치우는 중이었다. 원래는 한접시씩 먹자는 것이었는데 하도 먹어대는 기세가 엄청나서 필자는 그냥 찬밥을 퍼다 먹고 말았다.
2009년 2월12일은 애이브러햄 링컨 대통령(1809-1865)과 챨스 다윈(1809-1882)의 200회 생일이기도 했다. 지구상에 살았던 모든 사람들의 365명중 한명은 우리 애와 생일이 같겠지만, 링컨, 다윈과 생일이 같다는 것은 기억해 둘만한 일인 것 같아서 아이한테도 말해주었다. 미국의 16대 대통령이었던 링컨에 대해서는 아시는 분이 많을 것이지만 같은 날 영국에서 태어난 찰스 다윈은 생소하다는 분이 많지 않을까 싶다.
찰스 다윈은 인류역사상 가장 큰 논란을 일으킨 과학자중 하나이다. 진화론 혹은 자연선택설의 주창자였던 그는 1859년에 출간된 ‘종의 기원’이라는 책으로 당시 사회에 커다란 파문을 일으키게 된다. 지금부터 200년 전, 찰스 다윈은 할아버지, 아버지 모두 의사였던 비교적 유복한 환경에서 태어났다. 할아버지는 노예제도에 반대하였던 진보적 지식인이었으며, 비록 어려서 모친을 잃었지만 다정하게 자식들을 돌봐준 아버지 덕에 다윈은 어진 성품과 비교적 개방적인 신앙을 가지고 자라나게 된다.
어려서부터 자연에 관심이 많아 수집과 관찰이 취미였던 다윈은 부친의 권유에 따라 1825년 의과대학에 진학을 하였다. 그러나 소독이나 마취도 하지 않고 환자들의 팔다리를 잘라내는 당시 외과 의사들의 수술방식에 질려버린 다윈은 2년만에 학교를 그만두었다. 이후 케임브리지대학에 진학하고서야 다윈은 본격적으로 자연과학에 몰두할 수 있게 되었다.
1831년에 다윈은 은사인 헨슬로 교수의 추천으로 남아메리카와 태평양에 있는 섬들을 조사하는 영국해군의 탐사선 ‘비이글’호에 자연과학자 자격으로 승선하게 되었다. 다윈의 부친은 몇년이 걸릴 이 모험을 반대했지만 외삼촌의 이해와 지원으로 간신히 배에 올랐던 젊은 과학자가 5년후 고국으로 돌아왔을 때 그의 손에는 무려 18권의 귀중한 관찰일지가 들려 있었다. 이 때의 연구결과를 정리한 것이 1839년에 출간된 유명한 ‘비이글호 항해기’였고 이책이 장차 진화론의 기초가 된다.
이후 무려 20년 동안이나 심사숙고를 거듭하고 친지와 동료들의 격려를 받은 후에야 다윈은 1859년 그 유명한 ‘종의 기원’이란 책을 완성하여 발표한다. 이 책은 출간되자마자 큰 관심을 끌었지만 동시에 사회 전체에 격렬한 논쟁을 불러일으키고 말았다. 이 책에서 다윈은 오랜 기간에 걸친 자연선택을 통한 진화의 개념을 제시했는데, 그의 의견에 반대하는 이들은 그의 학설을 19세기 중반 당시의 창조론, 즉 우주만물이 조물주에 의해 창조되었으며 인간도 신께서 자신의 모습을 따서 만든 고귀한 존재라는 종교적 믿음에 정면도전하는 것으로 몰아갔으니 그 파문의 크기를 쉽게 상상할 수 있다.
다윈은 비글호의 항해 중에 들른 갈라파고스 섬에서 본 큰거북과 핀치새에 대해 상세한 기록을 남겼었다. 갈라파고스 제도는 약 100만년 전에 있었던 화산활동의 결과로 생겨난 섬들인데 다른 대륙과는 연결된 적이 없고 각 섬들도 완전히 분리되어져 있다. 다윈은 각 섬에서 관찰한 거북과 새들이 매우 다른 모습을 하고 있는데 주목을 하였고 이들이 각각 다른 환경에 오랜 세월동안 적응하느라 서로 다르게 변한 것이라는 결론을 내렸다.
다윈이 진화의 원동력으로 제시한 자연선택설의 예로 기린을 들어보자. 기린이란 이름 자체는 중국 명나라 때 정화라는 관리가 동아프리카에서 실어온 동물에 중국설화속의 동물이름을 붙인 것이다. 순하고 여유있어 보이는 동물이지만 이 기린도 알고 보면 300∼500만년에 걸친 생존경쟁을 이겨낸 엄연한 서바이버이다. 원래 기린은 사슴, 소와 생물학적으로 가까우며 예전부터 초원에서 목초에 의존하여 살아가는 동물이었다.
원래는 키가 작은 녀석도, 키가 좀더 큰 녀석도 있었을텐데 가뭄처럼 갑자기 환경이 바뀌었거나 하는 경우 높은 곳의 나뭇잎을 따먹을 수 있었던 키 큰 기린이 아무래도 살아남을 가능성이 높았을 것이다. 결과적으로 키가 큰 기린의 자손들이 대대로 살아남다보니 수백만년이 지난 후에는 기린이 보통 5미터가 넘는 동물이 된 것이다. 공작새의 화려한 꼬리깃도, 수킬로미터 상공에서도 지상의 병아리를 볼 수있는 매의 시력도, 자신이 태어난 강 상류를 찾아가는 연어의 놀라운 능력도 수백만년 심지어는 수억년 동안에 걸친 자연선택의 맥락에 비추어보면 신비로우면서도 동시에 지극히 합리적인 자연섭리의 결과인 것이다.
창조론과 진화론이 정면으로 배치되는 것이라는 생각이나 인간이 원숭이로부터 진화했다는 식의 터무니없는 오해는 아무래도 진화론에 대한 이해가 부족한데서 기인하는 것이다. 앞으로 기회가 되는대로 이 두 주제를 좀 더 다루어 볼 예정이다. 한편 폭풍의 중심에 있었던 다윈 자신도 본인이 사려가 깊고 경건하며 자상한 사람이었던 만큼 자신의 학설이 일으켰던 파문에 대해 많은 고심을 한 기록을 남겼다. 73세로 숨을 거두면서도 오히려 사랑했던 아내와 자녀들에게 위로의 말을 남겼다는 찰스 다윈은 과학사에 실로 큰 족적을 남긴 거인이었다.
최영출(캐탈리스트 생물공학 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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