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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며 배우며] 고마운 이끼

집 가까운 공원을 한 시간 정도 자주 아내와 걷기 시작했다. 코로나 바이러스로집콕명령 때문에 방구석에만 있는 것보다 햇볕도 쬐고, 숲도 보고, 봄꽃도 보고, 걷기도 하며 면역력도 높이자고 공원의 숲속을 걸었다.

공원 산책로 아스팔트 길가 맨땅에 이끼가 덮은 부분은 봉긋하고 밟으니 폭신하다. 이끼 밑에는 흙들이 봉긋하게 보전되었다. 이끼가 안 덮인 땅은 빗물에 흙이 씻겨 고랑이 생기고 자갈들이 들어났다. 허, 이끼가 흙을 빗물에 씻겨나가지 않게 하는구나!

정말 이끼가 흙 유실을 막는지 관심을 가지고 숲길 걸으며 이끼를 찾아본다. 길가 가파른 언덕에 이끼가 덮였고, 바로 옆자리, 이끼가 안 덮인 자리는 흙이 파여있다. 개울가 작은 토사가 나서 무너져 내린 가장자리가 아직도 붙어있는 것은 이끼가 흙을 방석처럼 잡고 있기 때문이다. 개울가 홍수로 풀과 나무들이 파헤쳐져 나간 빈자리에 재빨리 자리 잡은 이끼들이 작은 들판을 만들었다.

물의 증발–구름–비-흐르는 물-바다로 연결되는 물의 순환 과정에서 물은 흙을 씻어내려, 땅이 파이고, 사태가 나고, 계곡이 깊어지고, 수만 년만 년 동안그랜드캐년도 만들었다.

사람은 집을 짓고 마당에 풀을 심어 흙이 빗물에 씻겨가지 않게 한다. 산에 나무를 심어 사태를 방지한다. 언덕배기의 계단을 만들어 흙의 유실을 막는다. 토사방지 도랑을 산비탈에 만든다. 우리가 사는 콘도 단지에는 홍수예방 연못 (storm-water-management pond)을 만들어 카운티 홍수를 막는 데 일조한다.

식물 중에서도 가장 작은 이끼들이, 사람들의 그런 노력에 동참하고, 비탈에 선 나무들, 풀들과 협력하여, 인간들이 생각하기 전부터 흙의 유실을 막고 있지 않은가!

공원길을 걸으며 가파른 급경사의 맨땅에 덮인 이끼들을 본다. 풀씨나 나무 씨가 급경사에 떨어진다면 굴러서 뿌리를 못 내릴 척박한 조건에선, 이끼의 작은 포자가 바람에 날려 벼랑에 붙어살아간다. 큰 홍수에 떠내려간 냇가 언덕 맨땅에 풀씨나 나무 씨가 떨어지려면 기다려야 할 시간에 이끼 포자가 응급대처를 한다.

삶의 경쟁에서 작고 약해서 척박한 벼랑에나 불모지에 사는 불쌍한 작은 것, 과거에는 그렇게 생각했다. 다시 보니 이끼는 나무들 풀들이 못하는 부분, 씨를 만드는 시간이 길어 즉시 대응 못 하는 부분을 담당하며, 경쟁이 아니라 보완 협력하며 사는 것이 아닌가!

초록으로 봉긋한 이끼 한 줌을 뽑아다 집에 와서 확대경으로 보니, 이끼는 1센티 정도 높은 줄기에 여러 개의 잎이 달렸다. 뿌리는 흙 속에 얽혀있다. 아주 작은 보리대궁 같은 포자 주머니도 보인다.

인터넷에 찾아보니, 이끼에 관한 많은 연구 논문, 쓰임새, 기르는 방법, 포자매매 등 정보가 있다. 이끼는 그 종류만도 만여 종이 넘고 번식은 포자를 통해서, 그리고 이끼의 뿌리나 줄기 어느 부분에서나 새순을 만들어 번식한다고 한다.

독일 도시에 있는 “나무 275 벤치”라는 이끼 벤치 사진도 보인다. 도시 여기저기 나무를 심는 대신 세로 3 미터, 가로 2미터 벽을 세우고 이끼를 벽에 키우고, 이끼 판 밑에 의자를 만들어 시민들이 쉬게 하는데, 그 한 판의 이끼들이 275그루의 나무 몫의 공기청정을 한다고 한다. 미세먼지, 이산화탄소, 오존 가스를 흡수하고 산소를 내보낸다고 한다.

삼국지에 나오는 화태라는 명의가 벌에 쏘인 거미가 이끼에 몸을 굴리더니 해독하고 나서 벌을 공격하여 이기는 모습을 보고 이끼의 벌 해독 효능을 알았다는 이야기도 있다. 이끼가 공기 청정뿐 아니라, 알러지, 비염, 아토피에 효과가 있다고도 한다. 인테리어 소품으로 이끼가 인기 있고, 이끼와 이끼 포자의 거래도 많아졌다.

이끼가 이 공원에서 빗물에 씻기는 흙을 막는 양이 일 년에 얼마나 될까? 미국 전역에선? 지구 전 표면에선? 일 년이 아니고 천 년, 만 년 동안 얼마나 될까? 나무들, 풀들, 그리고 사람들이 토사를 막고 흙의 유실을 막으려는 노력에 동참하는 이끼들, 아니, 이끼들이 해오던 일을 사람들이 늦게 알고 동참하는 협동, 길가 봉긋하게 흙을 안고 있는 이끼 방석을 다시 보니, 고맙고 다정해 보인다.

자연 속 적자생존의 무한경쟁 속에서 약하고 작기에 보잘것없고 슬퍼 보이던 이끼가, 큰 것들이 못하는 부분을 보완하고 협력하는 소중한 존재로 새롭게 보인다. 작고 약하고 초라해서 나무와 풀들과 경쟁에 밀려 불쌍하게 토박한 조건에 살아가는 줄 알았다. 작지만, 우리들 공동이익을 위해 작은 것이 할 수 있는 제 몫을 담당하는 이끼들, 협력하는 이끼들, 내 속에서 소리가 들린다. 이끼처럼 작은 생명도, 초라한 어느 누구도존경을 가지고 다시 보자고. 살아 있는 모든 생물들이 아름다울 수 있다고.


김홍영 / 전 오하이오 영스타운 주립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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