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 우리말] 가슴으로 듣는 말
언어를 공부하면서 어떤 단어는 머리가 아니라 가슴으로 듣습니다. 단어만 들어도 왠지 마음이 움직입니다. 감정이 단어를 따라간다고 할까요? 대표적인 단어가 저에게는 ‘울컥하다’입니다. 내 마음 깊은 뿌리에서 아픈 샘이 솟아오르는 느낌이라고나 할까요? 눈물이 눈에서만 나는 게 아니라는 생각을 합니다. 참을 수 없는 감정이 올라올 때 쓰는 표현이 ‘울컥하다’입니다. ‘울컥하다’는 어원적으로 울다와 관련이 있어 보입니다.‘짠하다’라는 말도 저는 가슴으로 듣는 말입니다. 처음에 이 단어를 들었을 때는 전라도 사투리가 아닐까 했습니다. 제가 처음 이 말을 들은 것은 전라도 어머니들이 마음 아픈 장면에서 사용하는 장면이었습니다. 가여운 아이들을 보고 ‘짠하다’라는 말을 하는 모습이었습니다. 짠하다의 ‘짠’은 의태어로 보입니다. 울림이 느껴집니다. 진동이 있는 겁니다. 마음, 가슴에 진동이 옵니다. 그런데 그 진동은 아픈 울림입니다. 그 사람의 아픔이나 힘듦이 그대로 나에게 울려오는 거라는 생각이 듭니다. 나 몰라라 하면 울림은 없습니다. 그러면 짠한 마음도 생기지 않습니다. 짠하다는 말을 하고, 들을 때 우리는 ‘아픈 하나, 위로의 하나’입니다.
‘먹먹하다’라는 말도 가슴으로 듣게 됩니다. 주로 이 단어를 말할 때면 눈을 천천히 껌벅이게 됩니다. 숨을 쉬지 못하여 가슴이 더 답답해 옵니다. 내 몸을 흐르는 기운이 어디선가 꽉 막혀있는 느낌입니다. 먹먹하다는 말은 ‘막막하다’와 관련이 있을 수 있습니다. 막히는 느낌입니다. ‘먹먹’은 갑자기 귀가 막혀서 소리를 듣지 못하는 때도 쓰입니다. 먹먹하면 답답합니다. 나도 고통을 느끼고 있음을 체험하게 됩니다.
오늘 가슴으로 듣는 단어를 이야기하게 된 동기는 바로 ‘뭉클하다’라는 말 때문입니다. 코로나로 힘들어하는 사람들을 보며 가슴이 뭉클했다는 말씀을 듣고, 저도 뭉클해짐을 느꼈습니다. 뭉클하다는 말도 가슴으로 듣는 말입니다. 가슴에 무언가 맺히고 뭉쳐서 남아있는 느낌입니다. 뭉클한 것은 감정이 가슴에 맺혀있는 느낌을 보여줍니다.
뭉클한 순간은 아프지만, 역설적으로 내가 살아있음을 느끼게 합니다. 다른 사람을 걱정할 때도 가슴이 뭉클합니다. 감동적인 이야기를 들었을 때나 오랜 기억이 다시 되살아날 때도 가슴이 뭉클해 옵니다. 내가 살아있는 겁니다. 뭉클한 것은 아프지만, 행복한 감정입니다. 우리의 우울을 해소시키는 감정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그런 의미에서라면 가슴이 뭉클한 일이 많으면 좋겠습니다. 다시 생각해 보니 울컥하다, 짠하다, 먹먹하다 모두 고마운 감정입니다. 내 가슴을 움직이고 나를 살아있게 하는 감정의 말입니다.
요즘 날이 밝아서, 날이 맑아서, 햇볕이 눈이 부셔서 더 외롭고, 힘들다는 사람이 많습니다. 코로나는 우리의 모든 것을 바꾸어 놓았습니다. 봄이 되고 꽃이 피면 즐거워야 하는데 도리어 심리가 가라앉습니다. 따뜻한 세상이 외로움을 달래주는 게 아니라 우리를 외롭게 합니다. 슬픔은 슬픔으로 달래야 한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습니다. 슬플 때 재미있는 생각을 하고 즐거운 노래를 듣거나 부르는 것은 큰 도움이 안 된다는 의견이었습니다. 슬픈 노래를 듣거나 슬픈 영화를 보면 더 우울해지지 않느냐는 의견도 있는데 실제로는 슬픈 노래나 이야기가 오히려 큰 위로가 된다고 합니다.
눈물이 눈물을 닦아냅니다. 힘들지만 주변에서 들려오는 울컥한 이야기, 짠한 이야기, 먹먹한 이야기를 가슴을 열고 들으면서 내 속의 행복한 감정을 찾아보면 어떨까요? 가슴 뭉클함을 느낄 수 있을 겁니다.
조현용 / 경희대학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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