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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린 광장] 어머니 장례식에 온 낯선 손님

어머니가 돌아가신 지 십수 년이 지났지만 어머니가 떠난 빈자리는 여전히 크게 남아 있다. 뒤늦게 신학 공부를 하고 목사 안수를 받은 어머니는 50대 초반에 미국에 이민 오셔서 LA에 정착했다.

처음에는 자동차도 없이 걸어서 출퇴근하면서 맡은 사역을 감당해야 했지만 이민 생활의 햇수가 늘면서 조금씩 안정이 찾아왔다. 자동차도 생기고, 영주권도 받고, 아이들은 결혼해서 손주들을 안겨주었다. 이제 조금 살만하다고 생각할 때 갑자기 찾아온 암은 6개월 만에 어머니를 하나님의 품으로 가게 했다.

어머니의 장례식 날이 되었다. 어머니는 여자 목사로서 LA의 여러 단체에서 활발하게 활동하신 덕에 많은 조문객이 찾아왔다. 물론 모두 한국 사람이었다. 아무리 미국에서 자리 잡고 살아도 어머니 삶의 영역은 어쩔 수 없었다.

어머니의 장례식이 막 시작되려고 하는데, 키가 2m는 족히 될만한 백인 남성이 장례식장으로 들어섰다. 마침 그 앞을 지나던 내가 혹시 장례식장을 잘못 찾은 것은 아닌지 물었다.

그런데 이 키 큰 아저씨는 어머니 이름을 대면서 위로의 말을 전했다. 장례식 내내 그 백인 남성의 정체가 궁금했다. 어머니가 아는 사람은 내가 거의 다 아는 사람인데, 더구나 장례식장에 찾아올 만큼 가까이 지냈던 다른 인종은 없었기에 더욱 궁금했다.

장례식을 마치고 그 백인 남성의 정체를 알아냈다. 그분은 어머니의 영어 과외 선생님이었다. 어머니는 매일 새벽기도회를 마치면 그 백인 선생님을 찾아가서 한 시간씩 영어를 배우고 출근을 하셨다고 했다. 자식들에게도 말하지 않고 그렇게 몇 년을 몰래 영어를 배우러 다니셨다.

그렇다고 어머니가 영어를 잘했던 것도 아니다. 여느 이민 1세들처럼 배짱과 눈치로 미국 생활을 버텼을 뿐이다. 예순이 넘어 영어를 배우면 또 얼마나 배웠겠는가? 그런데도 어머니는 매일 아침 영어를 배우러 다녔다.

장례식을 마치고 어머니 생각을 하다가 ‘왜 어머니는 그렇게 안 되는 영어를 배우려고 애쓰셨을까?’하는 질문을 했다. 어차피 답할 사람이 없는 질문이기에 속으로 삭이는데 어머니의 호통 소리가 들려오는 것 같았다. “야 나이 든 나도 이렇게 배우는데, 너희들은 어떻게 살 건데?”

그때 깨달았다. 어머니는 자신의 영어 실력을 늘리기 위해 배우러 다닌 게 아니었다. 자식들에게, 주변 사람들에게 끊임없이 배우는 자세로 살아야 한다는 교훈을 삶으로 보여주기 위해 아침마다 영어 선생님을 찾았던 것이다.

사람은 나이가 들어서 늙는 것이 아니라 배움을 멈추면 늙는다. 이 나이에 무슨 배움이 필요하냐고 말하기 전에, 배울 수 있는 것을 찾아보자.

비록 배움은 더딜지 모르지만 배움의 열정만큼은 다음 세대에 물려 줄 수 있을 것이다.


이창민 / 목사·LA연합감리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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