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윌셔 플레이스] 돼지독감과 '폰티액'
박용필/객원 논설위원
250년 전 폰티액에겐 무슨 일이 벌어졌을까.
폰티액은 당시 동북부 지역을 식민통치하고 있던 영군군에 반기를 들었던 인디언 추장이다. 인근 부족과 함께 연합군을 편성한 폰티액은 '백인들의 숫자가 불어나기 전에' 침략군을 대륙에서 몰아내려 했던 인물. 말하자면 북미 최초의 독립전쟁을 벌였던 셈이다.
그가 이끈 2000여 명의 인디언 전사들은 지금의 디트로이트를 포위 공격에 나섰다. 함락 직전의 위기에 내몰린 영국군 기지. 이때 군의관 하나가 싸우지 않고도 이길 수 있는 '비책'을 사령관에게 귀띔했다. 담요 두장에 홍역균을 묻혀 인디언들에게 선물로 주자는 것. 사령관은 반신반의했으나 워낙 다급한 상황이어서 군의관의 아이디어를 받아들였다.
담요를 건네 받은 폰티액의 인디언 병사들. 대자연과 함께 호흡하며 살아 온 원주민들에게 홍역에 대한 면역성이 있을리 없었다. 전염병이 삽시간에 퍼져 인디언들은 전투력을 상실하고 만 것. 영국군이 벌인 세균전에 그대로 당했다.
승리를 코앞에 두고 물러나야 했던 폰티액. 얼마 후 영국군의 사주를 받은 동료 전사에 의해 암살당하는 비운을 맞는다.
유럽인들이 오기 전 북.남미 대륙엔 원주민들의 숫자가 적게는 8000만 명에서 많게는 1억1000만 명을 헤아렸다. 백인들의 박해와 토벌 등으로 많은 인디언들이 목숨을 잃었지만 치명적인 살상무기는 홍역과 천연두 독감 등 전염성이 강한 질병이었다.
한때 찬란한 문화를 꽃피웠던 아즈텍(멕시코 중북부)과 마야(멕시코 남부.과테말라) 잉카제국(페루)이 갑자기 지도에서 사라진 것도 이 때문이다. 16세기 말 스페인 원정군이 몰려오자 인구가 80%나 줄어든 것. 백인들의 질병에 감염돼 제대로 싸워보지도 못한 채 쓰러지고 말았다.
라틴 아메리카가 예전의 인구를 되찾은 건 20세기에 들어와서. 그동안 웬만한 전염병에도 이겨낼 수 있는 내성이 생긴 탓이다.
하와이가 미국의 50번째 주가 된 것도 알고 보면 비극이다. 사탕수수밭에 눈독을 들인 본토의 백인들로부터 홍역에 감염돼 전인구의 30% 가량이 사망한 것. 미국은 총 한방 안 쏘고도 하와이를 접수 진주만에 해군기지를 설치할 수 있었다.
이처럼 한순간에 정치지도를 새로 쓰게 만든 전염병. 요즘 멕시코에서 발생한 돼지 독감이 확산추세를 보이고 있어 온세계가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아즈텍의 참상이 떠올라서인지 멕시코에선 온갖 흉흉한 소문이 나돌고 있다고 한다.
돼지 독감으로 인한 사망자가 멕시코에서만 150명이 넘어섰다. 미국에서도 28일 숨진 어린이가 이 독감에 감염된 것이 확인돼 연방정부가 멕시코 국경 폐쇄까지 고려하고 있는 실정이다.
이 뿐만이 아니다. 월드컵 예선전 등 대규모 인파가 몰리는 스포츠 대회도 무기한 연기되거나 취소돼 사태는 일파만파로 번지고 있다. 신문들은 연일 마스크를 쓴 주민들을 1면에 보도해 사태의 심각성을 전하고 있고.
가뜩이나 어려운 경제에 먹구름을 드리우고 있는 돼지 인플루엔자. '21세기의 홍역'으로까지 불리는 이 독감이 이번엔 어떤 경제지도를 그려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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