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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이야기] 더 레슬러(The Wrestler)

레슬러가 되어 돌아온 미키 루크

<더 레슬러> (The Wrestler)는 1980년대에 최고의 프로 레슬러로 명성을 떨쳤으나 이제는 한물간 랜디 더 램 로빈슨(미키 루크 분)의 이야기다.

나이가 들어 보청기를 끼고, 진통제와 근육강화제에 의존하며 근근히 시합에 나서던 중 심장 발작으로 위험한 상황에 빠진 후 더 이상의 시합은 생명을 위협한다는 의사의 판정을 받게 된다.

혼자 지내던 랜디는 가끔 찾는 바의 스트리퍼인 캐시디(마리사 토메이 분)의 제안에 따라 연락도 않고 지내던 외동딸 스테파니(에반 레이첼 우드 분)를 만나러 간다. 그러나 딸과의 화해가 좌절되고 캐시디와의 교제도 진전이 없는 데다 일하던 슈퍼마켓 마저 그만두게 되면서 링으로의 복귀를 결심하고, 생명을 건 빅 매치에 나서게 된다.

이 영화가 영화팬들의 관심을 한껏 모으게 된 데는 영화의 내용도 좋지만 주인공 역을 맡은 미키 루크의 실제 삶의 역정이 극중 랜디의 삶과 너무나 닮았다는 점이 기여한 바 또한 크다.

미키 루크는 1980년대에 <바디 히트> , <나인 하프 위크> , <앤젤 하트> , <와일드 오키드> 등에서 섹시 스타로 명성을 떨쳤던 꽃미남 배우다. 그가 1990년대에 배우보다 복싱 선수로서의 활동에 열을 올리며 8전6승2무4KO승(통계마다 다소 차이가 있으나 무패라는 사실은 일치)이라는 탁월한 성적을 거두나 많은 부상으로 1995년에 선수 생활을 중단한다. 와중에 폭행, 음주 운전, 마약, 스캔들로 생활이 엉망이 돼 회복이 어려운 지경인 것으로 보였다. 다행히 2005년 <씬 시티> 로 재기의 발판을 삼고, <더 레슬러> 로 재기에 완전히 성공했다. 골든글로브에서 남우주연상을 수상했고, 아카데미에는 남우주연상 후보로 이름을 올렸다. 그러나 영화를 보면 알듯이 얼굴 모양이 얼마나 일그러졌는지 과거 섹시 가이의 모습은 찾아볼 수 없다.

영화 속에서 두 주요 인물들이 이름에 집착하는 모습을 발견하게 된다. 프로 레슬링계에선 한때 대성공을 거두었으나 실생활에서는 제대로 해놓은 게 없는 랜디는 본명인 로빈 람진스키로 불리우는 걸 거부하고 링 네임인 랜디로 불리우길 원했다. 그에겐 링에서 얻은 명예가 인생의 전부였기 때문이다.

그가 심장 수술 후 세상이라는 새로운 링으로 들어서기로 결심할 때는 그에게 희망이 생겼으니, 캐시디와 딸 스테파니였다. 세상에의 적응을 위해 비로소 본명인 로빈을 이름표에 적고 슈퍼마켓의 샐러드 바로 들어서는 그의 모습은 레슬링 시합장에 들어설 때의 모습과 흡사하다. 이 때 랜디와 관객의 귀에는 링의 환호성이 환청처럼 들린다.

캐시디는 바에서 춤을 추는 스트리퍼로서의 이름은 캐시디지만, 아홉살 난 아들을 둔 엄마로서의 이름은 팸이다. 원하는 정체성에 따라 다른 이름으로 불리우길 원하는 것이다. 나이가 많아 손님들에게 퇴짜 맞기 일쑤인 그녀도 주위에 살붙이가 없는 외로운 사람이다. 그러나 랜디의 호감을 선뜻 받아들이지 못한다.

보통 프로 레슬링을 완전 쇼라고 비난을 하는데, 영화 중에 자세히 묘사된 대로 레슬러들이 시합을 앞두고 사전에 시나리오를 짜고, 링에 올라가서는 관객들에게 최대한의 즐거움을 주기 위해 자기들 몸에 면도날로 피를 내고, 유리나 철조망을 찌르고, 스테이플 핀을 박는 등의 모습을 보면 도저히 쇼라고 비난할 수가 없다. 랜디의 상처를 보며 설명을 듣던 캐시디는 그를 패션 오브 크라이스트의 예수에 비견하는 발언을 한다. 그의 등에는 예수의 얼굴이 문신으로 새겨져 있고, 그의 별명이 숫양 (the Ram)인 것도 전혀 무의미하지는 않은 것 같다. 어린양이란 뜻의 Lamb과 발음도 비슷해, 프로 레슬러의 피와 고통을 은근히 예수의 희생에 견주고 있는 듯하다. 그만큼 힘든 일이라는 걸 강조하기 위한 표현이겠지만 지나친 감은 든다.

또 영화 중에 은퇴한 레슬러들이 사인회를 열어 자신들의 기념품을 파는 자리를 마련했는데 찾아오는 팬들이 별로 없어 서로 멀뚱하게 바라보고 앉아있는 장면은 너무 안쓰러움을 자아낸다. 그렇지 않아도 프로 레슬링의 인기가 많이 떨어져 있는데 더욱 초라한 모습을 보여주는 이유를 잘 모르겠다. 글쎄, 사정이 딱하니 프로 레슬링에 좀더 많은 성원을 보내주자는 뜻일까?

중간에 괜히 한국인의 미용실이 등장해 랜디가 당신 남편은 잘 지내냐?고 묻자 한국인 미용사가 한국말로“바빠요. 나보다 더 바빠요”라고 대답하는 장면이 나온다. <파이> , <레퀴엠> , <천 년을 흐르는 사랑> 등을 통해 또 한 명의 천재적인 감독으로 꼽히는 대런 애로노프스키 감독이 무슨 의도로 이런 장면을 삽입했는지 알고 싶다.

<나의 사촌 비니> (1993)로 아카데미 조연여우상을 받은 바 있는 마리사 토메이가 40대 중반의 나이임에도 여전히 싱싱한 연기를 보여 준다.


최인화 (영화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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