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아침에] 시월을 다시 맞으며
‘오, 고요하고 부드러운 시월의 아침이여/ 너의 잎새들은 곱게 단풍 들어 곧 떨어질 듯하구나/ 만일 내일 바람이 세차게 분다면/ 너의 잎새는 모두 떨어지고 말겠지/ 까마귀들은 숲에서 울고/ 내일이면 무리 지어 날아가겠지/ 오, 고요하고 부드러운 시월의 아침이여/ 제발 오늘 시간은 천천히 지나가려무나.’(로버트 프로스트의 ‘시월’)잔인한 코로나19 속에서도 오곡백과가 무르익었다. 모든 계절이 다 그렇겠지만 10월처럼 자기의 역할을 알차게 수행하는 달도 없다. 이런 조건 없는 자연의 풍요로움은 농부의 몫만은 아니다. 자연 스스로의 재생과 부활도 크게 한몫 했다. 형형색색의 시월은 세상살이에 지친 사람들의 근심을 어루만지고 희망을 안겨준다. 코로나는 인간만 겨냥했을 뿐 이처럼 작은 풀잎 가까이에는 아예 접근조차 하지 못했다.
시인은 ‘이 고요하고 부드러운 시월의 아침에’ 제발 시간이 천천히 지나가 주기를 바라고 있다. 그러니까 시인은 물질과 영원의 연속성, 즉 조화에 따라 조율되는 시월을 보며 우수에 한껏 젖어 있는 상태다.
12개월 중 10월을 가장 뚜렷하게 나타내 주는 것엔 두 가지가 있다. 바로 수확(收穫)과 낙하(落下)이다.
이 시는 만물을 숙성시킨 수확을 노래한 것이 아닌 쇠퇴해져 금방 사라져 버릴 낙하를 보여주고 있다. 이를테면, 시인은 곧 떨어질 것 같은 잎새를 바라보며 생과 사에 편재에 있는 내면의 소리를 들은 것이다. 말하자면 10월이 제공해 주는 시각적 이미지를 통해 통제할 수 없는 시간의 잔인함을 암암리에 느낀 것이다.
이 시를 쓴 미국 시인 로버트 프로스트는 샌프란시스코에서 태어났지만 뉴햄프셔의 농장에서 오랫동안 생활했다. 그래서 그런지 그는 그 지방의 아름다운 자연을 시에 자주 인용했다. 그는 변화무쌍한 자연의 흐름 속에서 인생의 상징적인 의미를 찾으려고 노력한 시인이었다.
또한 20세기 미국 최고의 국민 시인으로서 4회에 걸쳐서 퓰리처상을 받기도 했다. 그를 가장 유명하게 만든 시 ‘가지 않은 길’은 많은 사람들이 애송하는 시다. 그런 시를 그는 한 평론가와의 인터뷰에서 “그거 그냥 산책한 거 끄적인 거예요”라고 말해서 이 시를 높이 평가한 평론가를 당황시켰다는 건 널리 알려진 이야기다.
우리는 대책 없는 장벽을 뚫고 벼랑 끝을 지나 여기까지 왔다. 외부와의 접촉이 없어지면서 정신적으로 많이 피폐해졌지만 그럼에도 우리는 이 고요하고 부드러운 시월의 아침을 희망으로 또 맞는다. 세상은 어차피 ‘알 수 없음’의 장벽이다. 생로병사에 자유롭지 못한 인간은 비록 나약하지만 우리는 태초의 위대한 유전자로 태어났다. 하여, 여태껏 그래왔듯이 창문으로 들어오는 오곡백과의 숨결을 공손하고 겸손하게 맞아들여야겠다.
정국희 / 시인
with the Korea JoongAng Daily
To write comments, please log in to one of the accounts.
Standards Board Policy (0/250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