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열린 음악회' 할리우드 보울을 가다 반바지·샌들 차림 관객, 와인 마시며 공연 즐겨 분주한 삶에 쉼표 찍기…콘서트 고정관념 깨져
단돈 5달러의 버스 승차비로 마음껏 LA 거리풍경을 즐겼다는 이들이 이번엔 LA 공연문화의 상징인 할리우드 보울을 찾았다.
입구에서부터 상상도 못했던 '문화 충격'에 휩싸였다고 한다. 과거의 내 모습일수도 또 앞으로의 내 경험일지로 모를 LA 새내기들의 두번째 이야기가 시작된다.
"드디어 오늘 할리우드 보울에서 LA 필하모닉 연주를 듣는 거야?"
"드레스하고 구두도 없는데 괜찮을까?"
"공연이 저녁 8시 반이라는데 그 전에 밥은 먹고 가야겠지?"
지난 11일 저녁 할리우드 보올 방문을 앞두고 들뜬 마음에 고민이 꼬리를 물었다. 나중에야 알았다. 다 'LA 초짜'들의 촌스런 걱정이었다.
부푼 가슴을 끌어안고 공연 시작을 1시간 반 정도 앞둔 7시쯤 공연장 앞에 도착했다.
'어라 이게 아닌데?'
'LA생활대학' 신입생들로서 이해못할 광경이 눈앞에 펼쳐졌다.
반바지에 샌들 차림을 한 사람들의 행렬은 이곳이 공연장인지 의심이 들만큼 생경했다. 나비 넥타이에 정장을 기대한 건 아니지만 이게 뭔가 싶다.
저마다 손에 들려있는 피크닉 바구니와 와인은 차라리 소풍 나왔다고 하는 것이 더 그럴듯 한 풍경이다.
'정숙해야 할 공연장에 먹으러 왔나'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커다란 아이스 박스를 들고 온 사람도 눈에 띄었다.
LA필처럼 명성 있는 오케스트라의 공연에 갈 때는 모름지기 우아한 레스토랑에도 들려 '스테이크'라도 하나 썰어야 한다는 지극히 한국적인 사고로는 상상하기 어려운 모습이다.
관객들의 차림은 공연장 내부에 비하면 충격의 서막에 불과했다.
"미국은 역시 맥도널드 콜라만 큰 게 아니야!"
야외 원형 극장 그것도 1만 7000여석이나 될 정도로 큰 규모의 극장에 처음 가 보는 우리들은 입을 다물지 못했다.
이날 공연은 유명한 영화음악 작곡가 헨리 멘시니를 기념하기 위해 마련된 무대.
비록 기자들과 무대 사이의 거리는 멀었지만 심적인 거리는 한층 가깝게 느껴졌다.
'핑크팬더' '문 리버'등 귀에 익은 곡들 때문이기도 했겠지만 지휘자가 직접 지휘대를 오르내리며 연주곡을 설명했기에 더욱 그러했다.
한국의 KBS '열린 음악회'에서처럼 낭랑하고 차분한 목소리의 여자 아나운서의 설명에 길들여져 있던 우리로서는 마치 관객에게 말을 거는 듯 지휘자 빌 콘티의 친근한 말투 자체가 '사건'이었다.
하지만 가장 우리를 매료시킨 것은 꼭 집어 말할 수 없는 할리우드 보올의 편안한 '분위기'였다.
공연장과 음악이 빚어내는 화음이 가슴을 적시면서 그제서야 샌들 차림의 관객들이 이해가기 시작했다.
가족 친구 연인끼리 잔디밭이나 근처 벤치에 앉아 샌드위치와 음식을 먹으며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모습이 그렇게 편안하고 자연스럽게 보일 수 없었다.
모두들 와인을 손에 들고 음악을 안주 삼아 한 여름 밤의 낭만을 제대로 만끽하고 있었다. 그러면서도 떠들거나 공연 규칙을 어기는 관객은 찾을 수 가 없었다.
한순간 기자들의 빈 손이 허전하고 민망해졌다. 어색한 건 우리였다.
잠시 고개를 들어 밤하늘을 올려다 봤다. 머리 위엔 북두칠성이 빛나고 있었다. 뒷산에선 선선한 여름 밤바람도 불어왔다.
사랑을 시작하는 연인들이 조용히 어깨를 기댄 채 어둠 속 반짝이는 서로의 눈을 마주치는 영화 속 한 장면이 떠올랐다.
두 달 동안 낯선 땅에서 새로운 직장에 적응하느라 어깨에 힘이 들어간 모양이었다. 자유로운 분위기에 젖자 웅크려졌던 마음이 조금 말랑말랑해졌다.
이 곳에 있는 동안 이곳도 가고 저곳도 가봐야 한다며 조급해 하기도 했다. 마음의 문을 꽁꽁 닫은 채 쉼 없이 앞만 보고 달려온 걸까?
한국인의 무의식 속에는 연주회에 왔으면 마땅히 음악에 집중해야 하고 여행지에 가면 무리해서라도 관광 명소는 꼭 다 돌아봐야 하는 일종의 '사명감'이 있는 것 같다.
딱히 무엇을 해야 한다는 생각없이 마음 맞는 사람들과 함께 할리우드 보울에서는 와인을 또 야구장에서는 핫도그와 맥주를 먹으며 순간을 즐기는 그들의 모습이 부러웠다.
할리우드 보올은 굳이 보고 싶은 공연 때문만이 아니라 별빛 바람 음식이 어우러진 운치를 맛보기 위해 다시 찾아가고 싶어졌다.
"다음에 다시 올 때는 꼭 와인하고 음식 담요도 챙겨오자!"
"어깨를 기댈 수 있는 좋은 사람도 같이!"
■할리우드보울 가려면 ▷티켓 구입 티켓 가격은 공연과 좌석마다 다소 차이가 있다. 보통 10~152달러 선이다. 10달러 좌석은 무대에서는 가장 멀지만 잘 설치된 스크린과 음향시스템 덕택에 공연 감상에 별 무리가 없다. 오히려 무대를 한 눈에 내려다 볼 수 있는 멋도 있다. 한편 할리우드 보울에서 특별 기획한 경우 1달러 또는 무료 공연도 있으니 놓치지 말 것. www.hollywoodbowl.com ▷메트로버스 타고 가기 메트로 레드라인을 이용하면 트래픽과 주차 걱정 없이 할리우드 보올에 갈 수 있다. 메트로 레드라인을 타고 할리우드/하이랜드(Hollywood/Highland)역에서 하차해 흰색 셔틀버스를 이용한다. 할리우드 불러바드와 오렌지 드라이브에서 프랭클린 애비뉴 쪽으로 걸어 올라가면 D 셔틀 버스 정류장을 발견할 수 있다. 버스는 매 15분마다 운행하며 메트로 레드 라인 티켓을 보여주면 콘서트 당일에 한해 왕복 모두 무료다. www.metro.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