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 에세이] 암 세포 전이 막는 전갈독
김현영/산칼로스대학 초빙교수
모기를 비롯해서 여러 종류의 벌레들도 수시로 드나드는데 자고 일어나면 몸 전체가 밤새도록 벌레들에게 물려 피부가 붓고 가려우며 아플 때가 많다. 그런데 더 큰 문제는 보기만 해도 소름 끼치는 전갈이 천정이나 벽에 가끔식 나타나는 것이다.
전갈은 예로부터 인간에게 무서움을 주는 동물로서 특히 열대지역에서는 대단히 위험한 독충으로 취급되었다. 이미 수 천 년 전에도 불뱀과 전갈이 있는 광야는 위험한 곳이라고 성경 신명기에 기록된 것을 볼 수 있을 정도.
전갈은 야행성으로 낮에는 바위 밑이나 갈라진 틈 사이에 숨어 있다가 날이 어두워지기 시작하면 곧잘 사람이 사는 집안으로 침입하여 천장이나 부엌, 화장실의 틈바구니 또는 신발·의류·가방 속에 잠입한다.
전갈의 독은 신경독이다. 꼬리에 달린 독침에 한 번 쏘이면 신경조직에 침투하여 심한 고통을 느끼게 하며 몸을 마비시키거나 심하면 목숨까지 앗아간다. 대부분의 전갈이 목숨을 앗아갈 정도의 독성을 갖고 있지는 않지만 어린이나 노약자는 생명을 빼앗길만큼 치명적인 피해를 입을 수가 있기에 물리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
지난 수 년 간 과학자들은 인간에게 이처럼 치명적인 전갈의 독을 이용하여 뇌종양을 치료하는 방법을 연구해 왔다. 그 결과 전갈 독은 뇌종양을 치료하거나 전이를 늦추는 생화학 물질임이 입증되고 있다. 전갈의 독에서 추출한 단백질로 합성한 TM-601을 이용한 연구를 예로 들어보자.
수술로 암 덩어리를 제거한 뒤 아직도 주위에 남아 있는 암세포를 방사성 요드로 파괴하는데 이때 TM-601을 방사성 요드와 융합, 함께 주사한 결과 뇌 암세포에 선택적으로 직접 전달되어 암세포를 파괴하고 억제하였다는 보고가 있다.
또 지난 4월 워싱턴대학교 연구팀은 조직배양한 마우스의 뇌 암세포를 이용한 실험을 시행한 바 있다. 전갈 독에서 분리한 클로로톡신(Chlorotoxin)과 나노파티클(Nanoparticle)을 함께 융합하여 치료하였을 때 암세포의 전이를 98%까지 막을 수 있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반면 나노파티클과 결합시키지 않고 전갈 독 하나만을 사용했을 때는 45% 정도의 효과 밖에 없었다는 것이다.
뇌에는 혈뇌장벽이라는 특별한 방어장치가 있어서 전갈의 독만으로는 혈관을 통해 뇌 암세포까지 모두 통과하지 못하지만 나노파티클과 융합하면 혈뇌장벽을 용이하게 통과하여 암세포까지 전달될 수 있다는 이야기다.
이때 전갈의 독은 선택적으로 뇌종양 세포에만 접촉되는 특성을 갖고 있다고 한다.
나노파티클은10억분의 1 미터 크기의 아주 작은 분자로 전자현미경을 통해서 겨우 볼 수 있을 정도다. 사람의 혈액 속에 있는 적혈구도 아주 작은 세포이지만 그 속에는 수 천 개의 나노파티클이 들어갈 수 있다.
이때 나노파티클이 전갈 독인 클로로톡신을 감싸 혈뇌장벽을 무난히 통과시킨 후 암세포에 침입하여 이를 공격, 파괴하는 한편 다른 정상 세포에 침윤하는 것을 막아주어 결과적으로 뇌암을 치료하게 되는 원리다.
오늘날 의약으로 상용되는 대부분의 물질들은 고농도에서 독성을 갖고 있어 잘못 이용하면 치명적인 손상을 입을 수 있다.
최근 유행하는 진통제 또는 주름살을 없애주는 보톡스도 보툴리눔이란 무서운 세균이 분비하는 독소로 만든 의학적 제품이지만 낮은 농도에서, 그리고 전문가에 의해 주의깊게 사용될 때 인간에게 유익한 결과를 가져다 준다.
인류가 자연에 존재하는 독성물질을 발견하여 질병을 치료하기 위해 사용할 수 있다는 사실이야말로 창조주의 비밀스러운 섭리가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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