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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뜨락에서] 사슴-노루-DEER

여름날 아침 산책을 마치고 돌아오다가 가까운 이웃을 만났다. 방금 우리 동네로 들어오는 길에서 사슴 두 마리를 봤어요. 아주 큰 암사슴이었어요. 그는 내 말을 듣더니 “이 동네에 노루가 다니는 것은 알지만 본 적이 없어요. 왜 내가 지나갈 때는 안 나타나지.”

사슴과 노루는 엄밀하게 말하면 조금 다르지만 보통 구별이 쉽지 않다. 우리 주변에 보이는 것은 대부분이 사슴이다. 모두 이름다운 우리 말이다. 그런데 ‘사슴’이 어감이 더 좋다. 노천명의 시 ‘모가지가 길어서 슬픈 짐승’은 사슴이다. ‘노루’ 하면 어쩐지 ‘노르께한’ 느낌을 주고 산에서 내려와 힘들게 가꾸어 놓은 작물을 해치는 존재로 생각하게 된다. Deer도 산뜻한 느낌을 주는 말이다. 사냥할 때는 Deer Hunt라고 표현해야 스릴이 있을 것 같다.

나는 언어 사용에 민감하다. 요즘 흔히 사용하는 ‘집콕’ ‘넘’ ‘선샘(선생님)’ ‘목욜(목요일)’ ‘ㅋㅋ’ ‘ㅎㅎ’ 등 ‘카톡 언어’를 가능한 피한다. 고전은 오래된 말로 쓰인 작품들이다. 읽기는 힘들지만, 언어의 발달과정을 이해하는 데 많은 도움을 받는다.

얼마 전 제인 오스틴의 ‘Sense and Sensibility’를 보다가 재미있는 표현을 발견했다. 여자 나이 스물다섯을 Five and twenty, 일 년을 Twelvemonth라고 쓰고 있었다. 대니얼 디포의 ‘Robinson Crusoe’에서 본 I know not (I don‘t know)라는 고어를 다시 만났다. 이밖에 150~200년 전 영어를 읽으면서 어휘의 근본을 발견한 것은 바닷가에서 파도에 깎인 예쁜 조약돌을 찾는 것만큼 신기했다. 우리가 한국에서 배운 영어가 얼마나 어설펐던가를 알았다. Harbor는 항구, School은 학교, Magazine은 잡지라는 한 가지 의미로 알았다. Harbor가 무엇을 품다(harbor the hatred). School은 고기떼, 혹은 학파, Magazine은 여러 가지를 묶은 것의 의미가 있는지는 대부분 몰랐을 것이다.

(나는 연속극을 안 보지만) 영화나 TV 드라마를 보면 요즘 쓰는 말을 배울 수 있다. 30~40년 전보다 한국말 표준 억양도 많이 달라지고, 합성어도 많아진 것 같다. 현대 영어를 배우려면 최근 출판된 책이나 신문을 많이 읽을 필요가 있다. 좋은 글을 쓸 필요가 있는 사람들은 항상 옆에 메모지를 준비하고 문장 분석을 하면서 정독할 필요가 있다. 인터넷이 여러 가지 유용한 정보를 제공하지만, 글을 대신 써 주지는 못한다. 어떤 분야든 높이 올라갈수록 수준 있는 글을 요구한다. 고전이든 현대작품이든 많이 읽지 않고는 좋은 글을 쓰기 힘들다.

자고 일어나면 그룹 카톡에 많은 메시지가 올라와 있다. 나도 4~5개 단체 방에 들어가 있는데 가끔 개인적인 글이나 사진, 어디서 퍼온 정보들을 만난다. 그룹 방에 올리는 것도 짧지만, 충분히 생각해서, 문법에 맞고, 표현에 무리가 없고, 산뜻한 글을 올려 주었으면 한다. ‘글은 사람’이라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될 것 같다.

날씨가 추워져 집에 있는 시간이 많아지면서 (글 같지 않지만) 글을 쓰고 싶은 욕구를 더 느낀다. 신문에 나가는 글은 최소한 며칠 밤 새우면서 수정, 개정한다. 요즘 세 번째 시집 출간을 고려하면서 오래된 내 시들을 다시 읽고 있는데 낯 뜨거운 졸작(실수)을 발견하고 있다. 설익은 글, 모자라는 글이 얼마나 무서운 건가를 느낀다. A Three- Strike- Out, 첫 시집, 두 번째 시집에 이어 세 번째까지 실패작으로 끝나면 더는 시집을 내지 말아야 할 것이다.


최복림 /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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