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원 다음으로 가기 싫은 곳이 경찰서다. 죄 지은 것이 없어도 왠지 주눅이 드는 곳이기 때문이다. 밤에 들리는 경찰 사이렌 소리도 이젠 제법 익숙해 졌지만 아직도 철렁한다. ‘미국의 경찰서 안은 어떤 모습일까?’ LA한인타운의 불침번이라는 올림픽경찰서를 직접 찾아가 봤다.
한인 타운 관할 경찰서는 역시 달랐다. 외부 모습은 타 경찰서와 별반 차이가 없는 듯 했지만 내부엔 '타운냄새'가 물씬 풍겼다.
안내는 젊고 친절한 인상의 매튜 블레이크 서장이 직접 나섰다.
친근함은 입구에서 부터 묻어났다. 로비에 들어서자 첫 눈에 들어오는 것이 2층 난간을 두르고 있는 대형 타운 야경사진. 남가주 한인사진작가 협회에서 기증한 것이라고 한다. 지금까지 타운을 일구고 가꿔온 한인 이민사의 애환이 그 속에 녹아있는 듯 했다.
1층 로비를 지나 왼쪽에 자리한 커뮤니티 룸에 들어서자 '타운냄새'는 더 진해진다. 벽면을 따라 한국 전통 보석함과 공예품 도자기 등 30여점이 전시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매튜 블레이크 서장이 경찰서 오픈 기념으로 직접 한국문화원에 요청해 전시된 작품들이라고 한다. 경찰서가 아니라 한국 문화 홍보실에 들어와 있는 듯한 착각마저 들었다.
1층은 주로 서류 업무가 진행되는 공간이라고 한다. 그중 가장 눈길이 가는 곳은 로비 정면의 프론트. 그곳에는 하루 24시간 한인경관이 배치되어 있다는 것이 경찰서 관계자의 설명이다. 한인들이 언제라도 신속하고 편리하게 범죄 신고 및 민원 접수를 할 수 있도록 한 배려다. 직접 방문 외에도 전화를 통해서도 한국어 서비스를 받을 수 있다고 했다. 과연 한인타운 관할 경찰서 다웠다.
24시간 한인경관 배치해 ‘한국어 서비스’
커뮤니티룸엔 전통 보석함·도자기등 전시
또 한 켠에 마련된 사무실에는 올림픽 경찰서에 근무하는 경찰관들의 사진이 깔끔하게 배열되어 있었다. 이곳은 서장과 각 부서 책임자들이 모여 지난 밤 접수된 사건과 진행중인 사건의 현재 상황 등에 관해 점검한다. 벽면에 놓인 담당 배치표에는 타운 지역의 지도와 담당 구역이 표시되어 있었다.
그리고 이곳 저곳을 안내하던 서장은 올림픽 경찰서에서 9~13세 13~20세 사이의 어린이와 청소년 그룹을 대상으로 보이스카우트 형식의 서비스도 제공된다고 설명했다. 이 서비스는 경찰 업무 안내와 인성 교육 모임 등을 제공해 미래의 경찰 꿈나무를 육성하기 위한 것이라고 했다.
블레이크 서장은 이어 2층으로 사람들을 안내했다. 투명한 유리창 뒤로 타운의 거리와 건물들이 한눈에 들어왔다. 2층 복도에는 과거 적십자 건물이었던 이 곳에 경찰서가 준공되기 까지의 과정을 담은 사진과 LAPD의 역사가 담긴 사진들이 전시되어 있었다.
앞장섰던 블레이크 서장이 갑자기 한 사진 앞에 멈췄다. 그 사진은 60년대에 희대의 살인마로 악명이 높았던 찰스 맨슨의 검거 당시 모습이었다. 그리고 사진 속의 경관 한명을 지목하며 자신의 아버지라고 소개했다.
블레이크 서장은 대를 이어 범죄와의 전쟁에 나선 경찰 집안 출신이었다. 아버지를 소개하는 그의 눈빛에서 강한 의지와 자부심이 느껴졌다. 블레이크 서장은 "한인들의 편의를 위해 최대한 노력하겠다"는 말을 거듭 강조했다.
2층에는 부서별 데스크와 운동시설 그리고 유치장과 무기고가 있었다. 비로소 경찰서에 온 것이 실감났다. 서장의 특별 배려로 유치장 내부까지 슬쩍 방문(?)해 보는 기회도 얻었다.
무기고에는 한 명의 경관이 상주하고 있었다. 경관들은 모두 평상시에도 총기를 소지하고 있지만 사건으로 인해 추가 총기류가 필요할 때에는 이곳에서 지급받아 출동하게 된다고 했다. 영화에서만 볼 수 있었던 다양한 종류의 장총들이 즐비하게 비치되어 있어 놀라웠다.
이어 수사 살인 갱 폭행 강도 자동차절도범죄 순찰 등으로 세분화된 부서 사무실들을 차례로 둘러 볼 수 있었다.
그 때 였다. 각 유닛에 대한 간략한 설명을 듣는 도중 급한 안내방송이 경찰서 내에 울렸다. '한국어 안내가 가능한 경관을 찾는다'는 내용이었다. 프론트에 대기하던 한인 경관이 자리를 비울 경우를 대비해 마련한 후속 시스템이 작동한 것이다.
사실 그동안 밤에는 절대 도보로 돌아다니지 말라는 주변의 경고(?)로 인해 'LA 한인타운의 밤거리는 위험하다'는 인식에 사로잡혀 있었다. 큰 덩치에 날카로운 인상의 경찰들도 왠지 '민중의 지팡이'라는 친근함 보다는 무서운 느낌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