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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홍기의 시카고 에세이]모래 장미(Sand Rose)

모래 장미를 내가 처음 접한 것은 1970년대 후반 사우디아라비아 건설현장 시절이다. 당시 몇몇 현장 간부들은 마치 훈장이나 기념품처럼 크고 작은 모래 장미를 숙소에 비치하거나 혹은 귀국하여 집에 가보처럼 모셔 놓는 경우가 있었는데 이 우아한 장미는 사막에 평생 살더라도 아무 데서나 구할 수 있는 장미가 아니다. 전설에 의하면 몇 억년 전 바닷물이 고였던 사막에 물이 증발하면서 소금 결정체가 크리스탈화 되어 뭉친 거라고 한다. 그렇다고 지상에 노출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모래를 사람 키 하나 정도는 파 들어 가야 겨우 발견 되는데 허허벌판 사막에 무슨 표시가 있는 것도 아니다. 단지 옛날에 이쯤에서 발견 됐다는 구전을 믿고 무작정 파 들어 가야 한다. 섭씨 50도 되는 햇볕 아래서 서너 시간 삽질하다 보면 기절하기 일쑤다.

내가 있던 현장은 사우디 수도 리야드에서도 어지간히 떨어진 외진 곳이다. 위도상 그 나라 한복판이다. 나는 모처럼 휴일이 되면 하루 종일 트럭을 몰고 돌을 찾아다니는 취미를 가졌다. 여기서 가질 수 있는 유일한 낙이다. 다니다 보면 여기는 육지였고 저기는 바다였다는 머릿속 지도가 그려진다. 나무 화석과 조개 화석으로 구분한다. 육지에서는 어느 날 거대한 나무가 마디마디 부러진 채로 그대로 대자로 쓰러져 있는 것을 발견하기도 하였다. 온통 진한 초코렛 색으로 삽자루로 두들기면 쇳소리가 울리고, 부러진 작은 나뭇가지 하나의 무게는 들기가 힘들 정도다. 밑둥 큰 줄기 부분 골이 파인 데는 벌레 파먹은 자리가 역력했다. 수억년 습도가 전혀 없는 건조한 날씨 때문이다.

[중앙포토]

[중앙포토]

거기서 서쪽으로 한 나절 떨어진 바닷가에는 아기자기한 조개가 지천으로 깔려 있고 해안가를 따라 좀 더 한시진 올라가면 주먹만한 대합 조개가 겹겹이 쌓여 거대한 화석산을 만들었다. 근처의 고속도로 현장에서는 이를 발파하여 절벽 길을 내느라 부산하다.
그렇게 돌에 미쳐 지내던 어느 날, 500km 떨어진 서쪽 해변 현장으로부터 주문 한 대형 굴착기가 막 도착했으니 인수해 가라는 연락이 와 그곳에서 하루를 지냈다. 자연히 돌 이야기가 오가던 중 그쪽 지방의 전설의 모래 장미(Sand Rose) 이야기를 처음 들었다. 현장 요원들에 의하면 그들은 아무런 장비 없이 그냥 가 많이 캐 보지는 못했으나 선배들이 남기고 간 것과 함께 몇 개 보관하고 있다며 보여 주었다. 색깔은 젖은 모래 색으로 매끈하지 않고 아직도 모래가 묻어 있으나 꽃 이파리는 모두가 단단하다. 큰 놈은 주먹만한 꽃이 팔뚝 만하게 덩어리져 신비롭던 게 기억난다. 그들에 의하면 이번에 내가 굴착기를 싣고 그곳을 통과하는 것은 정말 큰 행운이라며 특별히 그곳에 같이 갔었던 운전사를 붙여줄 테니 한번 탐사를 해 보라는 것이다.

이튿날 사우디의 유일한 동서를 잇는 실낱 같은 도로를 따라 순전한 모래 사막이 끝 나갈 즈음 트레일러에서 굴착기를 내려 아무런 표시도 없는 허허벌판을 운전사와 둘이서 무작정 굴착한 끝에 드디어 샌드 로즈 밭을 발견했다. 뜨거운 태양 아래 걷어 올린 장미 꽃은 더욱 단단한 우윳빛 크리스탈이었으며 가장 큰 놈은 허리 키 하나는 될 만큼 장대했다. 주먹만한 잔잔한 것을 포함해 우리 현장에 수십개를 쏟아 놓으니 나는 돌이킬 수 없는 완전 돌광이 되었다. 서쪽 현장에는 제일 큰 놈을 골라 나무상자로 잘 포장해 트레일러 운전사 편에 보냈다. 최근 소식에 의하면 현대건설이 동쪽 해변의 조그마한 국가 카타르에 이 모래 장미로 디자인한 박물관을 건립하였다고 한다. 격세지감(隔世之感)이다.


한홍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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