늘어나는 한인 노숙자···변변한 쉘터없는 타운
자녀도 함께 내몰려 '가족형 노숙자'까지…사각지대서 허우적
지난 봄 박태영(가명.55)씨는 태어나서 처음으로 길거리에서 잠을 청했다. LA한인타운 영사관 뒷골목의 차가운 바닥에 몸을 누인 것이 4개월 홈리스 생활의 시작이었다. LA다운타운에서 운영했던 의류업체는 망했고 19년 이민생활에 남은 것은 아무 것도 없었다. 박씨는 가족을 한국으로 보냈다. 아버지가 남편이 노숙자가 되는 모습을 차마 보여줄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경기침체로 거리로 내몰리는 한인들이 늘고 있다. 타운 윌셔의 길 한모퉁에 어둠이 내리면 홈리스들이 하나 둘 모여든다. 비를 피할 처마가 있고 경비원이 없어 홈리스들에게는 '안식처'다. 처음 이곳을 찾은 노숙자가 '고참' 노숙자의 자리를 차지했다가 싸움이 나기도 한다.
한인 홈리스 중에는 자녀와 함께 홈리스 쉘터에 거주하는 '노숙자 가정'도 늘고 있다.
조갑자(가명)씨 모녀는 6개월째 한인 홈리스 쉘터인 아가페홈미션에 살고 있다. 올해 초 직장을 잃으면서 병을 앓고 있는 딸과 함께 이곳을 찾았다. LA다운타운의 쉘터도 알아봤지만 동양인은 없고 저녁에 잠만 잘 수 있다는 말에 발길을 돌렸다.
아가페홈미션은 마약중독 홈리스를 돕기 위한 곳이지만 실직이나 파산으로 인한 한인 노숙자들도 몰리고 있다.
한인 홈리스에게 쉘터를 제공하고 있는 '소중한 사람들'에도 마약이나 약물중독으로 홈리스가 된 한인들이 대부분이었지만 지금은 파산과 주택차압 등으로 보금자리를 잃은 한인들이 머물고 있다.
또 다른 쉘터인 LA대한민국기도원의 이모세 목사는 많은 시간을 전화기 앞에서 보낸다. '갈데가 없다'며 도움을 청하는 전화를 하루에도 수십통씩 받는다. 이럴 때마다 수용시설이 한정돼 홈리스들을 모두 받아들일 수 없어 안타까운 마음 뿐이다.
한인 노숙자들이 늘고 있지만 정작 이들을 위한 시설은 충분하지 못하다. 이들 대부분은 영어로 의사소통이 되지 않아 주류사회 쉘터를 찾아가는 것을 꺼려하고 있다.
박태영씨는 "정말 배가 고파 한인회를 찾아가 도움 받을 수 있는 곳을 물었다"고 한다. 그러나 그가 받은 것은 전화번호부 한권이었다. 아무런 관심이나 도움도 받지도 못하는 홈리스들은 한인사회의 이방인이다.
"한인타운에서는 아는 사람과 마주칠까봐 거리를 다니기가 무섭습니다. 그렇지만 다운타운에서 다른 인종의 홈리스들과 생활하는 것은 더 두렵습니다."
또다시 밤이 오면 지친 몸을 눕힐 곳을 찾아 거리를 헤매야만 하는 홈리스 송경직(가명)씨의 이 한마디는 그만의 독백일 뿐 세상에는 들리지 않는다.
김기정.서기원.진성철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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