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학이 있는 사색] 5월은 잔인한 달?
T. S. 엘리엇(Thomas Stearns Eliot /1888-1965)은 시인이며 극작가다. 그는 삶의 터전을 미국에서 영국으로 옮겨 귀화하여 살았던 인물이다. 그가 유명한 시인으로 명성을 날릴 수 있었던 것은 한 편의 시 ‘황무지’ 때문이다.1922년에 쓴 그의 시는 “4월은 잔인한 달/죽은 땅에서 라일락을 키워내고/ 기억과 욕망을 뒤섞고/봄비로 잠든 뿌리를 뒤흔들었다 /차라리 겨울에 우리는 따뜻했다/망각의 눈이 대지를 덮고 /마른 구근으로 가냘픈 생명만 유지했으니….” 로 시작한다.
이 시를 해설하는 사람들은 죽은 땅, 즉 마른 대지에서 어린 새싹이 움을 틔워 올라오는 모습을 잔인할 만큼의 고통으로 이해하는데, 속뜻은 제1차 세계대전 후의 황폐한 세계 속에서 살기 위해 고통스러울 만큼 생명의 꿈틀거림을 표현하는 것이라 해석한다.
엘리엇이 4월을 잔인한 달로 말했다면, 한국인들에게 있어서 잔인한 달은 5월일 수 있다. 40년 전 5.18 민주화 운동에서 수백명이 희생을 당했기 때문이다. 불행은 인간 사회에 사시사철 어느 달을 막론하고 발생하기는 하지만 특히 국가방위에 책임을 가진 특정 그룹이 자국민을 향해 무장폭력을 행사하므로 수백명이 죽음과 상처를 입고, 실종된 비극이 5월에 발생했으니 5월을 잔인한 달이라 말할 수도 있다.
광주 시민들이 국가 지도자들을 적으로 대한 것도 아니고, 정권을 탈취하겠다는 것도 아니었다. 정당한 제도 내에서 민주적으로 국가가 운영되기만을 바랐을 뿐인데, 그런 소망이 무시되고, 오히려 탄압의 대상이 되었다.
어쨌든 5월을 잔인한 달로 부를 수 있는 것은 수 백명의 생명이 희생을 당했기 때문이다. 성경의 예수께서는 온 천하를 얻고도 생명을 잃으면 무슨 소용이 있느냐며, 인간의 생명을 천하보다 귀한 것으로 여긴 것을 생각하면 더욱 그렇다.
사실 잔인성은 4월이든, 5월이든 별 관계가 없다. 자연과 시간이나 환경이 무슨 문제가 될까. 비극을 불러오는 것은 자연이 아니라 인간이다. 다 인간에 의해 발생하고, 인간에 의해 비극이 펼쳐지는 것을 생각하면 인간이 잔인한 것이다. 인간에 의해 야수 같은 잔인성이 나타나고, 그 잔인성에 의해 비극은 발생하기 때문에 인간이 문제인 것이다. 인간은 이처럼 잔인성을 보이는 존재들이다.
특히 큰 잔인성은 정권 탐욕과 상당히 연관되어 있다. 국민 스스로, 또는 자발적으로 대의가 있어 그것을 성취하려 하는 경우는 혁명이라 할 수 있고, 위임받은 권한을 개인 자신의 명예나, 권력을 얻기 위해 불법적으로 사용하는 무력행사는 쿠데타라 부른다. 흔히 쿠데타는 일종의 정변으로 반란을 뜻하는 말이라 할 수 있다. 잔인성은 그렇게 정변을 통해 나타나는 것이 보통이다.
역사적으로 황제나 왕이 되겠다 하여 정변을 일으킨 때는 무고한 휘하 군사들이 동원되어 변을 당하기도 했고, 그런 불법적인 행동에 항거하던 국민 또한 희생자들이 되었던 것을 볼 수 있다. 정변을 주도한 본인 자신도 생명을 잃었던 예는 로마 역사나, 중국역사는 물론 세계역사에 잘 나타나 있다. 결국 정치적 탐욕 때문에 폭력이 자행되는 그런 잔인성은 인간들에 의해 발생하고, 그런 잔인성 가운데서의 희생자는 말할 것도 없이 일반 국민이고 시민들이라는 사실은 분명한 일이다. 문명화로 깨우쳐진 세상에 사는21세기 인류들, 그런 잔인성에 의한 불행은 지금도 미얀마 군부들로부터 볼 수 있는 현상이기도 하다. 앞으로 5월은 미얀마 국민에게도 잔인한 달로 기억될 것으로 보인다.
성경은 이러한 비극을 불러내는 자들에 대한 어리석음을 말하고 있다. 시편 2장 1절에 “어찌하여 열방 나라들이 분노하며, 민족들이 허사를 꾸미는가.” 라고 했다. 비극은 하나님의 역사운행 뜻을 모르고 헛된 일을 꾸미는 어리석은 자들에 의해 발생한다. 그 사이 선량한 시민들만 고통당한다.
생명력이 약동하는 4월도 영국의 엘리엇에 의해 잔인한 달로 불렸고, 계절의 여왕이라 불리는 5월도 한국에서는 잔인한 달의 이미지를 갖게 되었다. 푸르름을 자랑하는 6월도 그 불명예를 가지고 있다. ‘6.25 한국전쟁’이 그것이다. 역사적 참극을 불러일으킨 인간들은 시간과 자연 앞에, 아니 인류에 사죄해야 한다. 자신들이 죄로 인해 월별에 불명예를 붙여야 하는 일을 만들어 놓았으니 말이다.
계절의 여왕 5월은 어디 있나. 있다면, 5월은 잔인한 달인가? 아니다. 5월은 잔인한 달이 아닌, 5월에 발생한 인간의 잔인성을 보는 달일 뿐이다.
장석민 / 허드슨테일러 대학교 기독교윤리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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