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주언의 맛세상<7> 떼루아] 흙 내음 나는 와인을 마시자!
유럽산은 과일향보다 미네랄 향기 나
좋은 와인이 되기 위한 가장 결정적인 조건은 무엇일까? 양조법일까, 포도종일까. 나의 생각으로는 좋은 포도다. 물론 훌륭한 양조법도 중요하지만, 일단 좋은 포도가 없이 좋은 와인을 만들기는 어렵다.
그러면 좋은 포도를 재배하기 위해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일까? 내가 생각하기엔 포도를 키우는 곳의 토질, 기후 그리고 지형이다. 이 세 가지를 합친 것이 바로 떼루아다.
왜 떼루아가 중요할까? 일단 와인을 만들기 위한 포도나무에 일반 포도와 달리 물을 많이 주지 않는다. 물을 많이 주면 포도에 수분이 많아지고, 수분이 많아지면 포도의 맛은 엷어진다. 또한 나무 뿌리는 게을러지고, 게을러지면 뿌리는 깊게 내리지 않는다.
그리하여 포도 나무 뿌리를 ‘스트레스(stress) 준다’고 한다. 즉 물을 죽지 않을 정도로만 주면 뿌리는 좀 더 많은 양의 수분을 흡수하기 위해 좀더 깊게 파고 든다. 그러면 뿌리는 깊숙이 있는 와인밭의 캐릭터(character)를 섭취하게 되는 것이다.
그리하면 그 포도는 그 곳의 테루아 즉 그 토질의 성질을 섭취해 그 곳만의 특징을 갖고 있는 흙내음의 와인을 만들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프랑스·이탈리아·스페인 등지에서는 오래 전부터 와인을 마셔왔고, 나무를 길렀기 때문에 과일 향보단 흙 냄새나 미네랄 같은 땅에서 많이 접할 수 있는 향기가 많이 난다.
반면 캘리포니아·호주·아르헨티나 등지 와인들은 흙 냄새보다는 과일 향이 좀 더 우세하다. 바로 뉴월드 와인(New world wine)과 올드월드 와인(Old world wine)의 차이다. 올드월드 와인 중 비싼 와인들은 폭발적인 과실 맛과 향보다는 테루아의 향과 맛도 같이 완벽하게 조화를 이룬다.
떼루아는 토질 뿐 아니라 기후와 지형 즉 주변의 환경까지도 포함된다. 그 곳의 기후에 따라 와인의 성격과 맛이 달라진다. 즉 아무리 같은 포도 종류이며, 같은 동네에서 생산한 와인이라고 하지만 언덕에서 키운 포도와 평지에서 키운 와인 맛은 다르기 마련이다.
예전에 와인 선생님이 말했다. “내가 이 와인을 마실 때마다 느끼는 건데 이 와인에는 장미 향이 가득하다. 그래서 이 와인성을 직접 방문했을 때 깜짝 놀랐다. 와인성의 벽이 벽돌 대신 장미나무로 둘러 싸여 있었기 때문이다.”
와이너리 인근에 장미를 많이 기르는 이유는 장미가 수분을 많이 빼앗아가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선생님은 “두 나무의 커넥션이 있다고 본다”고 강조했다.
테루아는 와인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커피나 티 등에서도 떼루아를 경험할 수 있다. 토질, 기후, 지형은 떼루아의 요소다. 떼루아가 좋다고 해서 좋은 와인이 만들어지는 것은 아니다.
양조법과 포도종의 선택도 와인의 품질을 결정한다. 토질의 성격과 그 곳의 기후 또는 지형을 잘 알아서 선택한 포도종과 자신이 내고 싶은 성격의 양조법 등 모든 것이 조화가 이루어져야 훌륭한 와인이 탄생한다고 본다.
이제까지 경험에 따르면, 와인을 처음 접하신 분들이 대부분 과일 향과 맛이 풍부한 뉴월드 와인을 좋아한다. 내가 처음 와인을 시작하게 된 동기도 캘리포니아 와인였고 지금도 가끔은 많은 생각이 필요없는 캘리 와인을 즐겨 마신다.
와인에서 정체를 알 수 없는 토질 냄새 풍기는 와인을 맛보게 된다면 잠시나마 “난 텁텁해 이 와인 싫어”라기 보다 떼루아의 중요성을 한번쯤 생각하길 바란다.
요리사·푸드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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