쓸모없던 현수막…에코백(친환경 가방)으로 재탄생···20대 여성 4명이 만든 재활용 사업
자원낭비·환경오염 부르는 폐현수막의 변신
질기고 가볍고 잘 마르고…숄더백·지갑으로
수익금 일부는 저소득층 아토피환자 치료에
16.5㎡(5평) 넓이의 이곳 사무실을 기자가 최근 방문했더니 쓸모를 다한 폐현수막을 닦고 오리는 데 여념이 없었다. 이를 모아 친환경 가방 ‘에코백’을 만드는 사회적 기업 ‘터치포굿(touch4good.com)’ 사람들이다. 이 회사는 지난달 노동부가 주최한 ‘소셜벤처 전국경연대회’에서 최우수상을 받았다.
박미현(26) 공동대표는 "재활용품 하면 품질이 조악한 싸구려지만 사주는 것이 도리라는 식으로 생각한다. 하지만 우리는 소비자가 기꺼이 지갑을 여는 물건을 만들겠다"고 말했다.
의무감으로 재활용품을 사기보다 물건이 좋아 사보니 '어 재활용품이네' 하고 놀라게 만들겠다는 것이다. 없애버리거나 기껏해야 포대 낙엽자루 기름때 제거띠 정도로 쓰이던 폐현수막을 에코백으로 재탄생시킨 것이다.
대학에서 국제통상(스토리텔러 이준희.29) 시각디자인(디자이너 박인희.26) 대기과학(공동대표 이화영.26) 정치.심리(박미현 대표) 등 각기 다른 공부를 한 이들은 지난해 한 사회적 기업 양성 교육과정에서 만나 의기투합했다. 취직 문제로 고민하던 이들은 '사회적 기업' 정신을 실천하는 회사를 만들기로 했다.
지난해 10월 초기자본금 1000만원을 들여 개인사업자로 일을 시작한 이들은 지난봄부터 인터넷 쇼핑몰을 구축하고 서울 홍익대 등에서 오프라인 매장을 열었다.
'재활용품'의 싸구려 이미지를 덜려고 전문연구원에서 제품 유해성 검사를 받고 유명 디자이너에게 가방 트렌드에 관해 컨설팅을 받았다. 뉴욕 맨해튼의 명물로 떠오른 '반라'의 남성 거리모델을 섭외해 현지에서 에코백을 들고 있게 해봤다. 현지인 가운데는 "쓰다 남은 현수막으로 이런 것도 만들 수 있나" "새겨진 한글 문양이 독특하다" "가볍고 튼튼한 것 같다"는 등의 호의적인 반응이 적잖았다.
굳이 폐현수막에 주목한 건 왜일까. 박 대표는 "현수막 과용으로 자원낭비와 환경오염이 심하다는 생각을 했다"고 답했다. 게다가 현수막 천의 재질이 훌륭한 원재료의 특성을 고루 지녔다.
눈비를 맞아도 천의 강도를 유지하고 바람에 펄럭일 만큼 가볍고 빨면 금세 말랐다. 그래서 장바구니나 숄더백.노트북 케이스.파우치백.열쇠지갑 등 다양한 상품을 만들 수 있었다.
이 회사는 선거철이 되면 더욱 바빠진다. 4월 10월 재.보궐선거 때 그랬다. 엄청난 양의 현수막이 깔리면 그만큼 재료가 풍부해지기 때문이다.
2006년 지방자치단체 선거 후 나온 폐현수막은 8만여장에 205톤 분량으로 추산됐다. 축구장 25곳을 덮고 남을 정도다.
박 대표는 "상당한 양의 가방을 만들 수 있다. 6월에 폐현수막을 보내준 정당이 한 곳 있었다. 앞으로 각 정당과 선거관리위원회를 통해 현수막 수거방안을 논의해볼 생각"이라고 말했다.
에코백 제작의 첫 공정은 폐현수막을 오염상태와 재질에 따라 분리한 뒤 친환경 세제를 활용해 깨끗이 닦는 것이다. 이후 가방 전문업체에 보내 이미 디자인한 모양대로 천을 재단한다. 이 일은 봉제기술이 있는 저소득층 근로자에게 맡긴다. 사회적 기업이기 때문이다.
가방 판매 수익금 일부는 아토피를 앓는 저소득층 아이들의 치료비로 활용된다. 아토피 역시 인간이 만드는 쓰레기나 폐기물이 한 원인이 될 수 있다는 점에 착안했다.
이렇다 보니 창업자 네 명에겐 집에 가져갈 돈이 없다. 통장 잔고는 자주 바닥난다. "가장 큰 문제는 재정적 어려움이죠. 에코백에 대한 인식 부족으로 아직은 투자가 잘 들어오지 않아요. 하지만 시간이 좀 더 걸릴 거라고 보고 열심히 할 생각입니다."
내년엔 법인 등록을 할 생각이다. 이번에 노동부에서 받은 상금 2000만원과 노동부 지원 3000만원을 자본금으로 충당할 예정이다.
☞사회적 기업: 영리활동을 통해 취약계층에 대한 각종 서비스를 하거나 일자리를 창출해 공공의 이익에 도움을 주는 비즈니스다. 노동부가 인증을 통해 장려하고 있는데 218개 사업이 인증을 받았다. 조세감면·시설융자 등의 지원을 받는다.
이지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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