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한국어는 어려운 언어가 아니다

기 도이처(Guy Deutscher)의‘언어로 보는 문화(2010), 윤영삼 역(2011)’에는 언어의 복잡성에 대한 흥미로운 관점이 담겨있습니다. 간단히 내용을 소개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1921년 에드워드 사피어는 언어의 복잡성에 관해 다음과 같은 유명한 말을 남겼습니다. ‘플라톤은 마케도니아 돼지치기와 함께 걸었고, 공자는 아쌈 식인 야만족과 함께 걸었다.’ 이 말은 모든 언어가 복잡하다는 근거로 이야기됩니다. 또한 빅토리아 르롬킨과 로버트 로드먼이 쓴 언어학 개론서인‘우리가 언어에 대해 아는 것’에는 언어에 관한 명제로 ‘모든 언어의 복잡성은 동일하다’는 내용을 들고 있습니다. 한 언어가 다른 언어에 비해서 미개하다는 주장 혹은 생각이 오랜 인류의 역사와 함께 해왔습니다. 하지만 이런 주장은 사실이 아님이 밝혀졌습니다. 반대로 모든 언어가 동등하게 복잡하다는 주장도 받아들이기 힘든 부분이 있습니다.

언어의 복잡성에 대한 논의를 살펴보면 언어의 복잡성이 동등하다는 논의는 증명되지 않은 가설 정도임을 알 수 있습니다. 실제로 기 도이처에 따르면 이러한 주장을 펼친 찰스 호켓(1958)의‘현대언어학강의’에도 언어의 동일한 복잡성을 발견한 것이 아니라 인상(印象)이라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어쩌면 인간의 언어는 모두 등등하게 복잡하다는 것은 언어학자의 인상이나 믿음이라고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언어의 동등성에 대한 주장은 언어습득의 보편성과도 연관되는 개념입니다. 인간은 어떤 언어라도 배울 수 있습니다. 특히 선천적으로는 어떤 언어권에 태어나도 누구나 습득이 가능합니다. 이런 관점에서 인간의 언어습득장치에 대해서 논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다른 언어를 배울 때 더 쉬운 언어가 있는 것 또한 사실입니다. 언어를 학습의 난이도에 따라 구분하기도 하죠. 어떤 언어가 더 쉬운 언어이고, 어떤 언어가 더 어려운 언어일까요? 하지만 외국어 학습의 난이도는 언어 간 유사성에 의해서도 달라지므로 엄밀한 기준이라고 보기에는 어려운 점도 있습니다. 한국인에게는 일본어가 가장 배우기 쉬운 언어로 알려졌지만 그렇다고 해서 일본어가 가장 쉬운 언어라고 할 수는 없습니다. 반대로도 마찬가지입니다. 일본인에게 한국어가 쉽다고 해서 한국어가 쉽다고는 절대로 이야기할 수 없을 겁니다.

언어의 복잡성은 주로 체계의 복잡성과 연결됩니다. 예를 들어 우리가 알고 있는 언어 사이에는 무엇이 있고, 무엇이 없는 경우가 많습니다. 인도 유럽어와 한국어의 대조를 보면 차이점이 명확합니다. 성(性)에 따는 구별, 주어의 단수 복수 구별, 인칭에 따는 구별은 유럽어의 주요 특징입니다. 한국어에서는 성, 수, 인칭은 중요한 개념이 아닙니다. 반대로 한국어에서는 높임법은 중요한 개념입니다. 특히 상대에 따른 높임의 구별이 매우 체계적이며 복잡합니다. 한국어에 나타나는 조사와 어미의 미세한 발달은 이러한 체계를 갖지 않은 언어권의 사람이 보기에는 복잡성으로 작용할 수밖에 없습니다.

어려운 언어는 절대적인 개념은 아닐 수 있습니다. 어휘의 양으로 언어의 난이도를 결정하기도 하지만 어휘의 양이 많다고 해서 반드시 언어가 어려운 것은 아닙니다. 어휘가 적다는 말은 한 어휘가 담당하는 정보의 양이 많다는 의미도 되기 때문입니다. 오히려 의미의 부정확성이 나타날 수도 있습니다. 시(詩)의 의미 파악이 어려운 것처럼 적은 어휘로 구성된 언어는 해석이 오히려 더 복잡할 수도 있습니다. 문법도 마찬가지입니다. 세밀한 문법적 구별이 어려울 수도 있고, 반대로 쉬울 수도 있는 것입니다.

한국어가 세계에서 가장 어려운 언어에 속한다는 주장이 있습니다. 일부분은 맞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객관적으로 어려운 것은 아닙니다. 그리고 모든 언어권의 사람에게 어려운 것도 아닙니다. 한국어가 가장 어려운 언어라는 인상에서 벗어나는 게 한국어 공부의 시작이라고 봅니다. 특히 재외동포에게 한국어는 가까운 언어입니다.


조현용 / 경희대학교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