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칼럼] ‘군인들이 교회를 선호하는 이유’
일명‘종교행사’로 불리는 일요일 아침 군인들의‘경건생활’은 각 부대마다 조금씩 그 모습이 다르지만 보통은 성당, 교회, 절, 이렇게 세 분류로 줄을 서서 연병장에 있는 트럭에 나눠 타는 것으로 시작됩니다. 가끔은 종교행사 지원을 위한 운송계획이 원활치 못하면 교회로 가려고 성경들고 나왔다가 절간으로 가는 경우도 있습니다. 황당한 일이지만 ‘안되면 되게하라’는 군인 정신으로 이런 일이 가능합니다. 심한 경우 논산에서 군종으로 주특기를 받은 신학생이 배정받은 부대에 교회가 없다는 이유로 절에서 스님을 보필하는 경우도 있습니다.열심으로 ‘예배’가 아닌 ‘종교행사’에 참여하는 장병들의 속사정은 따로 있습니다. 잠시라도 고참의 눈에서 벗어날 수 있고 일단 부대에서 조금 먼 곳으로 가면 국방부시계가 조금이나마 안전하게 흘러갈 수 있다는 계산이 서있기 때문이지요. 이처럼 각별한 신앙심 없이‘종교행사 '로 몰려다니다 보니 매주 마다 다른 곳으로‘종교쇼핑’을 가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 중 성당으로 찾아가는 사람의 경우 위문품으로‘담배’를 받아 올 수 있기 때문이고 교회를 선호하는 이유는 성당의 미사와는 달리 기독교의 예배는 중간에 일어섰다 앉았다 할 필요가 없기 때문입니다. 일단 설교에 앞서 20-30분간 찬양시간이 있고 설교가 시작되면 한 30여분은 영혼과 육체가 쉼을 누리는 ‘피로회복’의 시간을 가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해, 실컷 노래하고 쭉 ~ 잘 수 있단 말씀이지요. 물론‘쵸코파이’를 얼만큼 많이 제공해 줄 수 있느냐가 성도 동원에 최고 으뜸요인이긴 합니다.
종파마다 약간의 모습이 다르긴 하지만 종교개혁을 이루었던 개신교 일수록 예배에서 상징적인 물건과 행동들이 사라져가고 있습니다. 최근 개신교 예배는 더욱 단순화 되어 그 형식은 찬양과 설교만으로 이등분 되고 있습니다. 이런 모습이 꼭 정죄 받아야 할 이유는 없지만 사람에 따라 군인 생활하던 버릇이 예비군으로 이어지는 건지 가끔은 찬양을 너무 열심히 하다가 피곤해져서 설교시간에는 내리 졸고 있는 모습을 보기도 합니다.
예배시간에 성도들이 앉고 일어서며 무릎을 꿇고 손을 들고 교독, 교창하며 평화의 인사를 나누는 등의 모습들은 예전으로서 큰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성경봉독하는 시간에는 그 말씀이 하나님의 말씀임으로 다같이 일어서서 봉독하는 것, 참회의 기도를 드리는 시간에는 무릎을 꿇거나 일어서서 기도하는 것이 좋습니다. 최근 현대예배 형식에서 느껴지는 상업적 분위기 때문에 경건성을 이유로 전통예배로의 귀향을 외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물론 형식만으로 경건성이나 상업성을 논한다는 것은 옳은 일은 아니겠습니다만 찬양을 많이 하는 것만이 경건을 지키는 오직 한 방법이라고 생각하는 것도 옳은 생각은 아닐 것입니다.
예배를 생각할 때에 찬양을 경건의 무아지경에 빠지는 단 하나의 수단으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찬양을 제외한 다른 요소들을 그저 설교를 준비하기 위한 필요수단으로만 여깁니다. 말씀 봉독도 설교 본문 이외에는 읽혀지지 않습니다. 마치 설교를 위해 예배가 있고 설교를 위해 예배에 참석한 것처럼 보입니다. 그렇기에 찬양시간에는 좀 늦어도 전혀 문제가 되지 않는 것처럼 생각됩니다.
예배는 무언가를 배우기 위해 듣는 강의시간이 아닙니다. 듣고, 보고, 느끼는 모든 감각을 이용하여 예배를 체험해야 합니다. 예배의 순서 하나 하나를 의미있게 설계하고 또 참여하지 않는다면 듣는 내용이 만족스럽지 못할 때에 그저 부족한 수면을 해결하는 시간으로 밖에는 지켜지기 힘들어질 것입니다. 예배는 반응입니다. 반응을 염두에 두지 않은 단순한 설계와 기대없는 참여는 예배를 지루하게만 만들 것입니다. 하나님께 올려드리는 것도 예배를 통해 주님의 뜻을 발견하는 데에도 상징적이며 효과적인 접근이 이루어질 수 있도록 세심한 배려와 관심이 있어야 할 것입니다.
윤진현 목사
with the Korea JoongAng Daily
To write comments, please log in to one of the accounts.
Standards Board Policy (0/250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