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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며 생각하며] 아미쉬(Amish) 마을에서 하룻밤

노동절을 끼고 1박 2일로 펜실바니아 주에 있는 아미쉬(Amish) 마을에 다녀왔다. 가는 날은 비가 오락가락 했다. 해리스버그(Harrisburg)라는 펜실바니아 주도를 지나고 이름은 벌써 까먹은 작은 마을에서 아주 늦은 점심을 먹었다.

숙소는 제법 큰길 옆에 위치한 “Bed and Breakfast‘였다. 농장만이 주변을 둘러싸고 있는 곳에서 딱히 별로 할 일도 없어서 옥수수 밭 옆을 따라서 인근에 있는 아미쉬 그로서리(Amish Grocery) 가게에 다녀왔다. 제법 규모가 있는 가게는 문이 닫혀 있었다. 아미쉬 마을에서는 일요일에 종교적 행위 이외에는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 ’주일을 거룩히 지내라‘는 십계명 때문일 것이다. 그런데 아무 것도 하지 않는다고 해서 주일을 거룩하게 지내는 것은 아닐 것이다. 내 마음과 정신이 어디를 가리키고 있는가가 중요한 것이지.

낯이 선 옥수수 밭 사이에서 잠시 내 마음의 좌표를 잃었다. -나는 지금 어디 있는 것일까?-

새벽에 닭이 울기도 전에 눈을 떴다. 우리가 묵은 곳에는 마당에 닭이며, 오리, 칠면조와 염소들도 함께 거주하고 있었다. 날이 밝기 전에 집을 나섰다. 주인 할머니가 전 날 가르쳐준 산책길을 탐험하기 위해서였다. 산책길에 막 어둠이 걷히기 시작했다. 키를 넘게 자란 옥수수나무엔 빼곡하게 옥수수가 달려 있었고, 하루하루 말라가고 있었다. 아내의 말로는 씨를 받기 위한 용도라고 했다. 옥수수 밭에서는 가을 풀벌레 소리가 들려왔다.

길 가엔 노란 사과와 붉은 사과나무가 열을 지어 서 있었다. 아내는 이브가 되어 사과를 하나 땄다. 집에 돌아오는 차 안에서 나는 아내가 훔친(?) 사과를 한 입 베어 물었다. 예쁜 것과는 거리가 먼 투박스러운 사과는 달콤 새콤한 과즙을 품고 있었다. ’사과의 참 맛‘. 요즘 사과는 신 맛을 빼고 단 맛만 강조한 품종이 대세이다. 삶 속에서도 대단한 속도로 신 맛은 사라지고 단 맛만 추구하는 방향으로 사회적 추세가 흘러가고 있다. 자꾸 원형이 사라지는 시대에 나는 살고 있는 것이다. 삶에도 단 맛뿐 아니라 신 맛도 필요한 것인데...

아미쉬는 자신들의 종교와 삶의 태도를 지키며 살아가는 사람들이다. 아주 소박한 옷을 입고, 삶은 단순하며, 종교적인 평화주의를 지향하며 살아간다. 빨래도 손으로 해서 햇볕과 바람으로 말린다. 아미쉬 마을에서 빨래를 해서 걸어 놓은 풍경은 아주 자연스럽다. 쉽고 자동화된 방식이 아니라 손을 쓰는 노동을 통해서 삶을 엮어간다. 사과의 단 맛뿐 아니라 신 맛까지도 함께 간직한 삶을 살고 있는 것이다. 자동화를 통해서 얻을 수 있는 단 맛, 신 맛을 멀리하는 삶의 태도에서 우리는 무엇을 얻고 무엇을 잃었을까? 아직도 무언가를 잃어가며 살고 있는 걸까?

새벽안개 깔린 아미쉬 마을에서 옥수수 밭에서 흘러나오는 풀벌레 소리를 들으며 나의 머릿속은 한결 투명해졌고, 마음은 완전히 평화로움을 느낄 수 있었다. 효율성과 편리함만을 따르는 삶이 남겨 놓은 숙제. 신 맛을 거부하지 않아야 할 것이다. 완전한 삶은 단 맛과 신 맛이 공존할 때 더 선명해지는 것이 아닐까? 하룻밤을 아미쉬 마을에서 묵고 서둘러 빠른 속도로 도시를 향해 차를 몰았다. 그런데 달리는 차에서 말발굽 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다.


김학선 / 자유기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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