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별 뉴스를 확인하세요.

많이 본 뉴스

광고닫기

기사공유

  • 페이스북
  • 트위터
  • 카카오톡
  • 카카오스토리
  • 네이버
  • 공유

[WJ 수필] 사랑하고 싶어요

진홍빛 장미를 살까? 노란색 튜울립이 더 나을까?
아니면 핑크빛 화사한 카네이션에 하얀 안개꽃이 더 예쁠까?
꽃집 앞에서의 들뜬 망설임에 난 시간 가는 줄 모른다. 새초롬이 수줍은 듯 봉우리를 내민 초롱꽃은
봄내음이 향기롭고 민트향의 허브는 코 끝을 간지럽히며 야생화가 만발한 들녘으로 날 이끈다.
보라색 엉겅퀴와 털복숭이 할미꽃, 그리고 귀여운 제비꽃으로 뒤덮힌 들언덕에 함박웃음 활짝 웃고 있는 얼굴이 떠오르면서 단숨에 달려가 안아 주고 싶은, 생각 만 해도 눈물이 날 것 같은 그리운 냄새가 밀물처럼 내게 다가온다.
보고 싶고 또 보고 싶어서 병이 날 것만 같아 난 지체 없이 빨간색 장미 두 다즌을 집어 든다.
난 알고 있다. 그 사람은 한 아름 가득 꽃 선물을 받을 때마다 한올 한올 뜨개질을 하듯 향 짙은 꽃잎들을 채반에 말려 꿈결같은 꽃벼게를 만들어 내게 되돌려 준다는 것을....
한시간을 만나기 위해 열 시간을 운전해 가도 억울하지 않을 사람, 보고 있어도 보고 싶은 그리움으로 가슴이 설레는 사람, 산천이 변하고 강산이 바뀌어도 바위처럼 요동함이 없을 믿음을 나누던 그 사람을 만나러 가는 길엔 엑셀을 힘주어 밟지 않아도 얼음 지치듯 미끄러져 간다.
내가 그녀를 만난 것은 2 년 전, 지금처럼 버들강아지에 물이 오르고 있는 봄날이었다.
위암선고를 받고 항암치료를 받고 있던 가엾은 소녀 한나는 기진맥진하여 차라리 지구를 떠나는 게 낫다고 울부짖었다.
가시나무처럼 앙상한 그녀의 몸은 덤불처럼 가벼워 어느 순간 새의 깃털처럼 공중으로 흩어질것 만 같아 마음이 늘 쓰라렸다. 하고 싶은 것도 많고 가고 싶은 곳도 많은 한나는 귀여운 욕심꾸러기 예쁜 아가씨였다.
아직도 솜털이 보송보송한 귓볼과 앵두 같은 입술, 아무것도 아닌 일에도 꺄르르 웃어 제끼던 해맑은 소녀!
그녀와의 만남은 봄볓이 따스하던 햇살 좋은 산책로에서였다.
연두빛 털모자를 꾹 눌러 쓰고 겨울 파카를 꼼꼼이 여민 한나는 산책로 언덕길 풀섶에 쪼그리고 앉아 무언가 열심히 찾고 있었다.
조심스럽게 다가간 내게 “이것 보세요. 드디어 찾아 냈다구요. 네 잎 크로바예요."
하지만 그건 분명 네 잎 크로바가 아닌. 네 쪽으로 갈라져 있는 이름 모를 들풀이었다.
"어머 그러게, 이걸 어떻게 찾았어? 내 평생에 지금 처음 보는 걸..."
우린 노다지를 캔 것 마냥 들떠서 또 다른 네 잎 크로바를 찾기 위해 그 넓은 들판을 온통 쑥대밭으로 만들며 돌아 다녔다.
그렇게 우린 친구가 되었고 오늘처럼 내일을 또 다시 맞이할 수 있기를 갈망하는 마음으로 하나가 되었다.
일찌기 고아가 돼버린 한나는 외삼촌의 따뜻한 배려로 어린 나이에 미국으로 건너왔고 세상의 숨소리를 화폭에 담아내는 화가 지망생이었다.
한나가 그린 화폭안의 씨줄과 날줄 사이로 뿜어 나오는 푸르름은 언제나 씩씩한 소나무 같았다.
그 희망과 소망의 파아란 물감으로 세상의 모든 것을 살맛나게 하고 싶다는 게 한나의 꿈이었다.
시간이 감에 따라 점점 가누기 힘들어 하는 그녀의 몸을 깨끗이 닦아주고, 손톱엔 흰색 메니큐어를 발톱엔 진홍빛 패티큐어로 단장해 줄 때면 한나는 살포시 내 품에 안겨오며 혼잣말로 속삭였다.
"엄마 냄새가 나요. 여섯살 때 그때랑 똑 같은 엄마냄새 인걸요..."
"그래 그렇구나 한나야..."
전처럼 그녀의 건강하고 아름다운 머릿결을 쓰다듬어줄 수만 있다면. 들국화 향기 나는 그녀의 길고 까만 머리를 어루만지지 못하는 아픔이 오래도록 내 세포를 파고 들었다.
작년에 타계한 영화배우 고 장진영의 이별의 아림이 이토록 깊었을까?
너무나 보고 싶은 한나를 그리워할 때마다 난 문득 장씨를 끝까지 지켜주던 그 연인을 떠 올린다.
사랑하는 사람이 돌아 올 수 없는 강을 건너야 함을 알면서도 마음을 다해 사랑을 쏟아 부었던 그 사람의 사랑이 한나가 그린 한 폭의 그림으로 내 가슴 끝에 와 닿는다.
송곳으로 찔린 것 마냥 쓰라린 따가움이 손 마디마디까지 전해진다.
장씨가 세상을 떠나기 몇 달 전 "이제 가면 다시는 내 사랑하는 님에게 면사포를 씌울 줄 기회가 없어서 마지막 선물을 해야 한다" 며 결혼식을 올린 두 사람의 숭고한 사랑! 그리고 마지막 3일을 남겨두고 결혼신고까지 하면서 영원토록 둘이 부부됨을 선포한 실천적인 그의 사랑에 난 경의를 표하지 않을 수 없다.
참 사랑이란 이처럼 가치를 추구하는 것이 아닌, 가치를 부여하는 것이라고 본다.
준 것 만큼 댓가를 계산하는 에로스가 아니라 아무런 요구사항이 없는 무작정 베푸는 아가페 사랑 말이다.
빠른 정보의 컴퓨터 시대에 살고 있는 우리네 삶이 전자계산기처럼 찍어 내는 인스턴트 사랑이 아닌, 줄 수 있다는 것 하나만으로도 행복한 삶이 되었으면 하는 바램이다.

발렌타인 데이!
초코렛 처럼 달콤하고 캔디보다 더 알찬 사랑이 되길 세상의 모든 연인들에게 축복하고 싶다.






최민애 기자 [email protected]



Log in to Twitter or Facebook account to connect
with the Korea JoongAng Daily
help-image Social comment?
lock icon

To write comments, please log in to one of the accounts.

Standards Board Policy (0/250자)


많이 본 뉴스





실시간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