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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아침에] 시리다는 말

조 현 용 / 경희대 교수·한국어교육 전공

'손이 시리다 발이 시리다'는 말처럼 '시리다'는 감각적으로 차갑다는 의미를 갖고 있다. 이가 '시리다'라고 하는 것도 이에 차가운 느낌이 통증처럼 다가오기 때문이다. 반면 '눈이 시리다'라고 할 때는 감각이 하나 더 추가된다. 통증에 눈이 부셔서 뜨기 어려운 느낌이 있다. 겨울의 맑고 푸른 하늘은 눈이 시리다. 눈이 시리게 푸르른 날의 느낌은 단순히 눈이 부신 느낌은 아니다. 눈물이 날 듯 차가우면서도 맑은 기운이 느껴지는 아픔이다.

또한 '시리다'는 '시다'와 관계가 있어 보인다. '시리다'를 '시다'와 비슷한 감각으로 사용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눈꼴이 시다'라고 표현하기도 하는데 이는 절로 눈이 찌푸려진다는 의미이다. '이가 시리다'라는 말도 '이가 시다'라고 표현하기도 한다. 음식의 신맛을 표현하는 '시다[酸]'와 눈이 부시는 '시다'를 동음이의어로 설명되고 있는데 신 음식을 먹으면 눈이 찌푸려지는 것에서 유추된 감각이 아닐까 한다.

또한 시다는 뼈에 느껴지는 통증을 나타내기도 한다. '무릎이 시다 시리다'라고 표현할 수 있다. 관절이 아플 때 쓰는 말로 발목이 삐었을 때도 사용하는 표현이다. '시다'와 관계있는 말로 '시큰거리다'를 들 수 있다. 이는 주로 관절이 통증을 수반하고 아프다는 의미로 쓰인다. 이의 통증을 나타내는 '시리다'와 '시다'는 눈이 찌푸려지는 느낌 차가운 느낌 뼈에 느껴지는 통증의 복합적인 감각 상태를 나타내는 것이 아닐까 한다. 손이 시린 것과도 다르고 눈이 시린 것과도 다른 감각이다.

중세 국어를 살펴보면 '시리다'는 '스리다 슬이다 슬히다'의 형태로 나타난다. '스 즈 츠'가 '시 지 치'로 바뀌는 것은 일반적인 현상이다. 우리말 '슳다'가 '싫다'가 되었고 '즘승'이 '짐승'이 되었고 '츰'이 '침'이 되었다. 따라서 형태로 미루어 봐서는 우리말 '쓰리다'와도 연관이 있을 것으로 보인다. 쓰린 것은 '콕 쑤시는' 것 같이 아픈 느낌이 있다. 우리가 자주 쓰는 '쓰라리다'는 '쓰리다'와 '아리다'가 합쳐진 말이다.



우리말은 이처럼 한 감각이 여러 감각을 나타내기도 한다. 한국어에서 공감각적인 표현이 당연한 것처럼 느껴지는 것도 그러한 이유에서이다. 시각과 촉각이 하나로 느껴지고 이런 감각은 다시 우리 마음의 느낌을 나타내게 된다. 눈이 시리고 이가 시리고 뼈가 시리고 맛이 시고 마음이 시리고 쓰라려 온다.

살아가면서 시린 일들이 점점 많아진다. 이도 뼈도 시릴 때가 많아진다. 맑은 하늘만 봐도 눈이 시리고 아픈 사람을 봐도 눈이 시려 온다. 슬픈 장면을 보면 마음이 먹먹해지고 가슴 한 편이 시린 느낌이 난다. 우리는 이럴 때 가슴에 구멍이 뻥 뚫린 것 같다고 표현한다. 시원하다는 의미로 쓰는 경우도 있지만 일반적으로는 허전하다는 의미이고 마음을 둘 데 없다는 의미이다. '구멍 난 가슴에'라는 노래가사의 느낌을 생각해 보라.

얼마 전에 경희대학교 치과대학에 계시는 가까운 교수께서 '시리다'의 의미에 대해서 물어 오셨다. 앞의 이야기가 충분한 답변이 되지 못할 수도 있겠다. 하지만 나는 덕분에 시린 감각에 대해서 생각해 볼 기회를 가졌다. 앞으로 이가 시린 것을 치유하는 것이 가능한 것처럼 사람의 시린 마음도 치유할 수 있었으면 하는 바람을 가져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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