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 우리말] 나잇값을 하자
우리나라 사람은 나이를 먹습니다. 언어표현이 그렇다는 말입니다. 제가 요즘 읽고 있는 번역소학을 봐도 나이는 먹는다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오랜 표현이죠. 대부분의 언어에서 나이를 먹는다고 표현하지 않는다는 점을 생각해 보면 특이한 일입니다. 나이를 먹는다고 표현하는 것은 나이가 내 몸속에 들어온다는 의미입니다. 당연히 나이에 따라 몸에 변화가 나타납니다. 갑자기 저의 배 둘레를 살펴보게 되네요. 나이를 먹으면 여러 가지 몸과 마음에 변화가 일어나서 성찰의 시간을 줍니다. 일단 많이 듣는 말대로 어린아이처럼 되기도 합니다. 단순히 말해서 참지 못하는 현상이 생기는 겁니다. 특히 소변은 큰 문제입니다. 나이를 먹으면 소변 생각만 해도 조건 반사로 화장실을 찾게 됩니다. 이때 주변에 화장실이 없으면 그야말로 낭패입니다. 나이를 먹으면 주변 화장실의 위치를 파악하는 버릇을 가져야 합니다. 어릴 때 참지 못하고 옷에 실례를 하던 씁쓸한 기억이 떠오릅니다. 나이를 먹으면 아이처럼 눈물도 많아집니다. 특히 누가 울면 나도 따라 웁니다. 한 아이가 울면 다른 아이들도 따라 울던 풍경이 생각납니다. 아이들에게 우는 이유를 물어보면 ‘다른 아이가 우니까요.’라는 귀여운 대답을 하더군요. 나이 먹어서도 그렇게 대답한다면 더 이상 귀엽지는 않겠지요. 하지만 타인의 슬픔에 내 몸이 공감한다는 건 좋은 일입니다. 남이 울면 나도 울어야 합니다. 남이 슬픈데 나만 행복할 수는 없습니다. 슬픈 드라마가 점점 곤욕이네요. 우는 장면이 나오면 자동입니다. 한편 신체 기능의 약화는 세월 탓이려니 하면서도 서글프기도 합니다. 나이가 들면 가까운 게 안 보이고 먼 게 잘 보입니다. 조금 전의 일은 기억이 안 나고 옛일은 또렷합니다. 눈앞의 일에 연연하지 말고 멀리 보라는 뜻으로 해석하기도 합니다. 빨리 변하는 현실 속의 역할보다는 오랜 지혜를 전하는 사람이어야 할 겁니다. 하지만 우리 모습은 정말 그러한가요? 신체는 그렇게 변했는데, 마음은 여전히 눈앞에 일에 집착합니다. 기억이 나지 않아서 점점 실수가 많습니다. 왜 이렇게 이름이 기억나지 않는지 미안한 사람이 늘어갑니다. 글을 쓰면서 지난번에 기억나지 않았던 이름을 떠올리려고 하니 아직도 망각 속이네요. 답답한 일입니다. 그런데 분명히 안 좋아 보이는 일도 있습니다. 남의 목소리는 잘 안 들리는 반면에 내 목소리는 점점 커집니다. 안 좋은 일이죠. 여기에 대한 해석도 있습니다. 내 말만 하고 남의 말을 안 듣는 겁니다. 나이 들어 가장 경계해야 하는 일은 내가 옳다는 생각과 고집이죠. 집착이 늘어납니다. 사실 이 문제는 좋게 해석할 수도 있습니다. 점점 남에 대한 나쁜 이야기를 적게, 작게 들어야 합니다. 순하게 들어야 하는 겁니다. 귀가 순해져야 하는 겁니다. 이러한 것을 논어에서는 이순(耳順)이라고 했습니다. 60세를 의미하는 나이죠. 만약 나이를 먹었는데 목소리가 커지고 고집이 세어진다면 스스로를 돌아봐야 합니다. 나이 먹어 마음에 들지 않는 사람이 많다면 내가 문제인 겁니다. 자꾸 남에 대한 욕이 나온다면 내 집착이 늘었다고 판단하면 됩니다. 나이가 들었을 때 나를 말려줄 사람이 있어야 한다는 말씀이 참으로 옳습니다. 그 사람 말은 꼭 들어야 합니다. 지금 내 모습이 좋다면 죽은 다음의 내 모습도 좋을 겁니다. 달리 말하자면 지금이 천국이어야 죽어서도 천국입니다. 주변 사람과 못 지내고, 자녀와 못 지내고, 화가 많고, 욕심이 늘어난다면 지옥에서 사는 겁니다. 지금 내 모습이 다른 이들이 기억하는 내 모습일 겁니다. 나이 먹을수록 더 선한 삶을 살아야 합니다. 베푸는 삶을 살아야 하고, 받아들이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그렇게 나이를 먹으면 나잇값을 하게 됩니다. 나잇값은 나이를 먹으면 먹을수록 올라가는 나의 가치입니다. 나이를 먹었는데 값이 떨어졌다면 나는 잘못 산 겁니다. 우리 모두 나잇값을 하고 살기 바랍니다. 저부터 나잇값을 해야겠습니다. 나이를 먹을수록 곱고 맑은 제 모습이기 바랍니다. 조현용 / 경희대학교 교수아름다운 우리말 나잇값 소변 생각 주변 화장실 신체 기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