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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종진의 과학 이야기- 조르주 르메트르

역사적인 사건으로 이름이 후세에 길이 남는 사람도 있지만, 큰 나무의 그늘에 가려 빛을 보지 못한 사람도 많다. 그렇게 묻힌 사람 중에 벨기에 출신의 수학자이자 이론물리학자이며 가톨릭 신부였던 조르주 르메트르가 있는데 천체물리학 역사상 엄청나게 중요한 사람이어서 소개한다. 그는 로마 교황청 과학원장을 역임했으며 몬시뇰 칭호를 받기도 했는데 몬시뇰이란 주교는 아니지만, 교회에 큰 공을 세운 나이 든 사제에게 주어지는 명예 칭호다.   아인슈타인 때까지만 하더라도 변함없는 우주가 지배적인 우주론이었다. 천재 아인슈타인의 생각으로 우주는 처음부터 지금까지, 그리고 앞으로도 항상 같은 정적인 우주였다. 그래서 어느 순간 하나님이 우주를 창조했다고 믿는 기독교의 창세기와 마찰을 빚었다. 우주는 그렇게 한순간에 생긴 것이 아니라 예전부터 그대로 있던 정적인 우주라는 것이 소위 과학적 사고였다. 그런데 가톨릭교회 신부라는 사람이 복잡한 수학 계산 끝에 우주는 팽창한다고 했다. 팽창이란 말은 작은 것이 크게 된다는 뜻인데 그렇다면 과거로 거슬러 올라가면 점점 작아지다가 어느 시점에 시작이 있었다는 말이다. 르메트르는 우주도 초고온, 초밀도의 원시 원자 상태부터 시작하여 지금까지 팽창했다고 했다. 인류 최초로 빅뱅을 예견한 것이다.   르메트르가 태어났을 때만 하더라도 뉴턴이 물리학계를 지배하던 시절이어서 학교에서는 뉴턴 역학을 기초로 한 물리학을 가르쳤다. 아인슈타인도 그런 물리학을 배웠지만, 그는 거기서 그치지 않고 눈을 돌려 일반상대성이론을 발표했다. 그 후 르메트르는 아인슈타인의 일반상대성이론을 수학적으로 발전시켜 우주론에 접목했다. 물리학자들은 대체로 고난도 수학에 약했지만, 르메트르는 자신의 전공인 수학을 바탕으로 일반상대성이론을 풀다 보니 우주가 팽창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았다.     30대 초반의 신부님은 당시 물리학계의 샛별로 떠오른 아인슈타인에게 자신의 이론을 설명하려고 솔베이 회의에 참석한 아인슈타인이 회의를 마치고 나오기를 기다렸다. 르메트르는 아인슈타인 앞에서 열변을 토했지만, 당시의 지성 아인슈타인의 반응은 의외로 차가웠다. "신부님의 수학적 전개는 아주 훌륭합니다만 물리학적으로 보면 혐오스러운 내용입니다." 그때까지 정적인 우주를 고집하던 아인슈타인에게 팽창하는 우주의 모습은 역겨웠다.   나중에 우주가 붉은색을 띠는 이유가 바로 팽창하고 있다는 증거라는 것을 맨 처음 알아낸 사람도 르메트르다. 허블이 팽창 우주 이론을 발표하기 2년 전 르메트르가 먼저 같은 이론을 주장했지만, 나중에 허블만 조명을 받은 상황에서도 자기 몫을 챙기지 않았다. 새로운 과학적 사실을 밝힌다는 것이 중요하지 누가 했는지는 상관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1950년대 초 로마 교황이 르메트르의 원시 원자 이론이 창세기 기사와 부합한다고 거들자 그는 공개적으로 항의한 후 자기가 가톨릭 신부이기 때문에 창세기에 어울리는 이론을 주장한다는 오해를 받기 싫어서 세상을 피했다. 평생 신실한 신부로 봉사하며 과학을 억지로 종교에 끼워 맞추는 것을 반대했다. 다행히 임종 직전 우주배경복사가 발견되어 그의 예측과 이론이 옳았다는 것이 증명되자 하나님께 감사하며 선종했다고 한다. (작가)     박종진르메트르 박종진 조르주 르메트르 과학 이야기 천재 아인슈타인

2025-05-16

[박종진의 과학 이야기] 수상한 신부님

자신의 정체를 잊은 채 과학 발전에 큰 획을 그은 수상한 신부님 몇 분을 소개한다.     신학 박사학위를 가진 코페르니쿠스는 폴란드의 한 고장에서 대주교를 지냈는데, 그렇게 신부님까지 했던 사람이 감히 지구가 더는 우주의 중심이 아니라고 선언했다. 코페르니쿠스가 살던 시절에는 세상의 중심이 하나님이 창조하신 지구였고, 세상을 다스릴 권한을 위임 받은 피조물이 바로 우리 인간이었기 때문에 우리가 발붙이고 사는 지구를 중심으로 천체가 에워싸고 있다고 생각했다. 지난 오랜 세월 동안 지구가 우주의 중심이 아니라는 사고는 반기독이며 신성모독이었다. 그런데 코페르니쿠스는 유사 이래 변함없던 프톨레마이오스의 지구 중심 우주관을 하루 아침에 뒤집었다.     오스트리아의 시골에서 농부의 자녀로 태어난 멘델은 어렸을 적부터 농사일을 하며 자랐다. 그는 나중에 가톨릭 사제가 되었지만, 수도원 뒤뜰에 완두콩을 재배하면서 알아낸 것을 토대로 유전 법칙을 확립했다. 그의 업적은 살았을 때는 빛을 보지 못했지만, 그가 죽은 후 그가 이룩한 유전 법칙은 다윈의 진화론에 못지않은 과학적인 성과였기 때문에 그는 인류 최초로 유전학을 시작한 과학자로 자리매김하였다.     멘델 신부는 어렸을 적에 했던 농사와 원예 일에 관심이 많아서 뜨락에 과일나무를 심고 더 많은 수확을 위해서 연구했다. 특히 수도원 뜰에서 가꾼 완두콩을 이리저리 교배시켜서 얻은 수많은 잡종을 분석한 결과 유전에는 어떤 원리가 있다는 결론을 얻었다. 유전 법칙을 발견한 것이다. 그는 생전에 수도원 동료와 그 지방 사람들에게는 존경 받았던 신부님이었지만, 학계에서는 무시당했다. 조르주 르메트르는 벨기에 태생의 사제로 로마 교황청 과학원장을 지냈고 나중에는 몬시뇰 칭호를 받았다. 몬시뇰이란 가톨릭에서 큰 공적이 있는 신부에게 주는 명예 칭호일 뿐 어떤 지위나 직책은 아니지만, 비록 추기경이나 주교 서품은 받지 않았어도 교회에 공을 세운 교황 직속 사제 정도의 호칭이다.     젊은 르메트르 신부가 그 유명한 솔베이 회의에 참관하러 갔을 때 아버지뻘 되는 아인슈타인을 만난 자리에서 자신이 주창한 우주론을 역설했지만, 당시 한창 잘 나가던 아인슈타인의 빈축을 샀다고 한다. 시대의 천재 아인슈타인은 우주는 영원불변이라고 생각했는데 난데없이 나타난 젊은 천주교 신부가 우주는 큰 폭발로 생겨났으며 계속 팽창하고 있다는 말에 화를 냈다. 르메트르 신부는 태초에 우주는 부피가 거의 없는 원시 원자가 폭발해서 생겼으며 그 후 계속해서 팽창하는 중이라고 생각했다. 러시아 출신의 술주정뱅이 천문학자 가모프가 그의 이론을 지지했지만, 르메트르의 생각이 워낙 진취적이어서 누구도 귀담아듣지 않았다. 오죽하면 유명한 천체물리학자 한 사람이 라디오 대담 프로에 나와서 우주가 '꽝' 하는 폭발로 시작했다더라는 비아냥으로 그의 이론은 '빅뱅(Big Bang)'이라는 우스갯소리로 전락했다.    르메트르 신부는 은퇴 후 요양 병원 신세를 지던 중에 벨 연구소 전기 기술자가 인공위성 수신 안테나를 정비하던 중 우주배경복사를 발견하는 바람에 그의 빅뱅 이론은 현재 천체물리학의 대세가 되었다. 임종을 앞둔 르메트르 신부는 자기의 이론이 증명되게 해주신 하나님께 감사 기도를 드렸다. 자신의 믿음을 지키면서 그런 훌륭한 공적을 남기신 수상한 세 분 신부님께 경의를 표한다. (작가)   박종진박종진의 과학 이야기 수상 신부 르메트르 신부 천주교 신부 멘델 신부

2023-12-22

[박종진의 과학 이야기] 허블-르메트르 법칙

과학의 역사를 들여다보면 가톨릭 사제가 종종 눈에 띈다. 지동설의 코페르니쿠스, 유전법칙의 멘델, 그리고 여기 소개하는 조르주 르메트르 신부가 그런 경우다. 코페르니쿠스와 멘델을 모르는 사람은 거의 없는데, 웬만한 것은 아는 사람이라도 르메트르 신부는 잘 모른다.     조르주 르메트르는 19세기가 막 저물 무렵 벨기에서 태어났다. 수학과 물리학에 두각을 나타낸 그였지만 신학대학원에 진학하여 29살에 사제 서품을 받았다. 그 후 로마 교황청 과학원장을 지냈으며, 66세에는 몬시뇰이 되었다. 몬시뇰은 업적이 훌륭한 사제에게 주어지는 권위 있는 명예직이다.   르메트르는 평소 아인슈타인을 존경하여 아인슈타인의 일반상대성이론을 토대로 우주팽창이론을 구상했다. 마침 솔베이 회의 참석차 브뤼셀에 온 아인슈타인을 만날 기회가 있어서 자기 이론을 설명했는데 그때까지만 해도 정적인 우주를 확신하던 아인슈타인은 동의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역겹다는 막말까지 했다.     그 후 두 사람은 이따금 만나기는 했지만 그런 일이 있어서인지 서로 불편해했다고 한다. 솔베이 회의란 벨기에의 부자 사업가 솔베이가 창립한 당시 최고 권위를 가진 물리학-화학 과학자 모임이었다. 1927년에 열렸던 제5차 솔베이 회의는 참석자 29명 중 17명이 노벨상 수상자였는데 거기서 코펜하겐 학파의 양자역학이 아인슈타인을 제쳤다. 어느덧 양자역학이 고전물리학을 대체하려는 전야에 와있었다.     자신의 일반상대성이론에 문제가 생기고, 양자역학을 추종하는 후배들이 대놓고 덤벼들어서 기분이 언짢던 아인슈타인은 새파랗게 젊은 가톨릭 신부가 아버지뻘인 자기에게 팽창하는 우주에 관한 의견을 내자 불편했다. 나중에 아인슈타인은 자기의 실수를 인정하고 르메트르의 이론에 동의했다고 한다.   우주의 팽창을 증명한 사람은 허블이었지만, 정작 그런 생각을 처음으로 한 사람은 사실 르메트르였다. 그는 허블보다 2년 먼저 허블 법칙을 알아냈고, 허블 상수를 추정했다. 가톨릭 신부였지만 그는 과학과 종교를 엄격히 구별하였는데 그는 최초의 우주는 부피는 없지만, 질량이 무한대인 한 점, 그의 표현에 따르면 그런 '원시 원자'가 폭발하고 팽창하여 지금의 우주가 되었다는 이론을 내놓았다. 말하자면 빅뱅 이론의 창시자였다.     허블-르메트르 법칙이란 은하는 거리에 비례해서 서로 멀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그런 공로를 인정받아 2018년 천체물리학 박사학위 소지자만 모인 국제천문연맹 회의에서 '허블 법칙'을 '허블-르메트르 법칙'으로 바꿀 것을 의결했다.     1963년 빅뱅 이론의 결정적인 증거가 미국 AT&T 회사의 기술자들에 의해서 발견되었다. 두 해 후에 논문으로 발표된 우주배경복사 소식은 벨기에 요양원에서 임종을 기다리고 있던 르메트르에게도 전해졌다.     그는 완전무결하신 하나님께 이 우주는 정지 상태인지, 아니면 그 시작부터 팽창하고 있는지 묻고 싶어 했는데 다행히 죽기 직전에 자신의 이론이 증명된 것을 안 르메트르 신부는 하나님께 감사의 기도를 하고 눈을 감았다고 한다.     1978년 노벨물리학상을 받은 빅뱅 이론은 현재 우주론의 대세를 이루고 있지만, 그는 이미 백 년 전에 대폭발로 생긴 이 우주가 계속 팽창한다고 생각했던 진정한 선지자였다. (작가)     박종진박종진의 과학 이야기 르메트르 허블 르메트르 신부 조르주 르메트르 르메트르 법칙

2023-03-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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